깊어가는 가을, 형형색색 곱게 물들어가는 단풍을 보며 공원에서 클래식 책 한 권을 읽었습니다. 책 표지에는 1960년대 역사적 밴드 비틀스 하면 떠오르는 앨범 자켓인 '애비로드'의 비틀스 멤버들처럼 6명의 작곡가들이 나란히 길을 건너고 있습니다. 왼쪽부터 비발디, 바흐, 헨델,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이 길을 건너고 있고 길 건너편에서 그들을 반기듯 파가니니가 바이올린을 켜고 있습니다.
책 표지의 주인공들은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바로크 고전시대 대표 작곡가 7명입니다. 그들의 삶과 음악 이야기를 재미있고 생동감 넘치게 다룬 책이 안인모의 <클래식이 알고 싶다-고전의 전당편>입니다. 1권 <클래식이 알고 싶다-낭만살롱편> 이후 3년 만에 나온 2권은 1권의 기본 포맷은 유지하면서 재미와 정보를 더욱 알차게 담아 '전편만한 속편은 없다'는 속설을 깨는 책입니다.
그 이유는 저자의 이력에서 볼 수 있는데요. 국내에서 음악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해외에서 피아노 연주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음악 팟캐스트 부동의 1위 <클래식이 알고 싶다>를 진행하고 있는 피아니스트이자 클래식 연구자입니다. 저도 유튜브 음악 방송인 <클래식이 알고 싶다>의 구독자지만 매번 새롭고 흥미로운 클래식 이야기로 대중들과 소통하려는 저자 덕분에 클래식과 친해지고 있는 중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저자가 작곡가들의 초상화를 깊이 살핀 부분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고 친숙한 클래식 음악이 비발디의 <사계>인데 비발디 하면 떠오르는 초상화가 바이올린과 펜을 들고 셔츠를 풀어헤친 모습일 것입니다. 그런데 비발디의 초상화로 널리 알려진 이 초상화가 현재 전해지고 있는 2점의 초상화 속 비발디와는 다르다고 합니다. 초상화를 비교해 보니 콧날과 얼굴 형이 다르긴 하네요. 모차르트의 경우 초상화의 대부분 왼쪽 귀가 가발에 가려져 있는데 그 이유가 태내에서 생성돼야 할 귓바퀴와 귓불이 거의 없어 평평하고 독특하다 보니 일부러 가발로 가린거라고 합니다. 이 외 바흐, 헨델, 하이든, 베토벤의 초상화도 책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바흐와 헨델의 평행 이론을 아시나요? 음악의 아버지 '바흐'와 음악의 어머니 '헨델'은 바로크 시대 대표 음악가입니다. 학창시절 음악시간에도 둘을 함께 배운 기억이 떠오르는데 둘은 1685년 독일의 옆 동네에서 나란히 태어났지만 한 번도 만나지 못 했다고 합니다. 바흐는 평생 독일에 머물며 20명의 자식들을 낳고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교회 음악가로서 종교음악을 주로 만들었지만 헨델은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자유롭게 유럽을 돌아다니며 종교음악이 아닌 화려하고 밝은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둘이 독일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아쉽게도 바흐가 당시 몸이 안 좋았고, 헨델도 어머니의 임종을 앞둔 상황이라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같은 해에 독일 옆 동네에서 태어난 것 외에는 연관성이 없을 것 같던 둘의 인생은 말년에 이르러서 비슷하게 살이 찌더니 돌팔이 의사 테일러에게 똑같이 수술을 받고 실명을 하면서 평행 이론을 완성합니다.
여기에 결혼 전 바흐와 헨델이 각각 거장 오르가니스트 북스테후데의 사위가 될 뻔한 일화도 평행 이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모닝 커피가 없으면 나는 말라비틀어진 염소 고기일뿐이다. - 바흐
책 속에 다루고 있는 작곡가들의 사랑이야기는 또다른 재미를 주고 있습니다. '빨강머리의 사제'로 불리는 비발디는 현대판 엘 시스테마라는 피에타 여학교 오케스트라를 맡아 큰 인기를 누리고 오페라 제작자로서도 실력을 발휘합니다. 비발디는 스무살이나 어린 안나를 데뷔 때부터 12년 동안 오페라를 함께 하며 프리 마돈나로 만드는데요. 사제 신분으로 종교음악보다는 세속음악을 하고 안나와의 관계에 선을 그었지만 안나와의 염문으로 교회에 찍힌 비발디는 고향 베니스를 떠나 빈에서 새로운 시작을 꿈꿉니다. 그러나 믿었던 샤를 6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일이 꼬이는 바람에 일자리도 제대로 구하지 못한 체 빈곤하게 살다가 빈에서 63세의 나이에 숨을 거둡니다. 비발디가 죽는 순간 안나가 곁에 있었다고 하니 둘의 관계를 의심할만 합니다.
안토니오 비발디, 세속신부 - 비발디의 사망 기록
저는 수많은 작곡가들 중 슈만과 클라라, 말러와 알마의 사랑이야기가 기억에 남지만 <클래식이 알고 싶다-고전의 전당편>에서 만날 수 있는 베토벤의 "불멸의 연인" 찾기가 가장 인상 깊은 사랑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물론 신분과 나이 차이 등으로 인해 베토벤은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하지만요.
베토벤은 교회나 귀족에 얽매여 종속 음악가로 살았던 이전 음악가들과 달리 스스로 삶을 개척해나간 자유 음악가로 살았기 때문에 음악가도 귀족과 동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피아노 레슨을 해 주던 귀족의 자제들과도 사랑에 빠지는데요. 요제핀 브룬스빅, 줄리에타 귀차르디, 테레제 브룬스빅, 테레제 말파티 등과 사랑을 나누지만 신분 차이와 성격, 베토벤의 귓병 문제 때문에 헤어지고 맙니다. 저희 두 딸도 종종 집에서 피아노로 연주하는 <엘리제를 위하여>의 주인공이 누군인지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고, 베토벤 사후 그의 서랍에서 발견된 연필로 쓴 3통의 편지 속 '불멸의 연인'이 누구인지도 후대 연구가들의 관심거리라고 합니다.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베토벤은 안정된 결혼 생활을 꿈꾸지만 신분의 차이를 떠나 애인이 있거나 이미 결혼한 여인들을 사랑합니다.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을 했기에 그에 따른 고통도 필연적으로 뒤따랐는데요. 그런 내재적 갈등들을 음악에 풀어냈기에 우리가 지금 베토벤의 빛나는 명곡들을 만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불멸의 연인'이 누구인지는 하늘에 있는 베토벤만이 알고 있겠죠.
언제나 당신의, 언제나 나의, 언제나 우리의,
루트비히 - 베토벤의 편지 중에서
요즘은 클래식 책 속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QR코드가 없으면 아쉬울 정도입니다. <클래식이 알고 싶다-고전의 전당편>에서도 QR코드를 통해 작곡가들의 주요 음악을 감상할 수 있어서 독서를 하며 클래식 음악을 들을 수 있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작곡가의 이야기가 끝나는 마지막 장마다 클래식 대화가 가능해지는 작곡가의 키워드 10과 저자가 엄선한 꼭 들어야 할 작곡가 추천 명곡 플레이리스트를 통해 책 속 내용을 되짚어 보며 작곡가의 대표 명곡들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책 중간 중간에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알찬 음악 정보들을 알려주는 "래알깨알"은 클알못 탈출에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이 진부한 표현이지만 깊어가는 가을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에서 형형색색 물들어 가는 단풍을 틈틈이 바라보며 <클래식이 알고 싶다-고전의 전당편>을 읽으니 클래식 세계에 더욱 깊게 물드는 시간이었습니다.
클래식에 관심이 있지만 왠지 어렵다는 생각을 가진 이 땅의 수많은 클알못들이 <클래식이 알고 싶다-고전의 전당편>을 통해 클래식 음악과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3년 전 클알못이었던 제가 1편 <클래식이 알고 싶다-낭만살롱편>을 만나 클래식과 친해진 것처럼 말이죠.
내게 있어 죽음이란, 더 이상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지 못하는 것이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