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을 좋아합니다.
빈티지 연필 수집까지는 아니지만 종종 들리는 문구숍 필기구 부스에서 마음에 드는 연필이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구입을 합니다. 성능 좋은 필기류들이 많지만 사무실에서 주로 연필을 사용하고 가끔 지인들에게 모아둔 연필 몇 자루를 선물하곤 합니다. 여기에 즐겨 이용하는 온라인 서점에서 연필 관련 도서가 출간하면 관심을 갖고 구입을 하거나 장바구니에 넣어두기도 합니다.
오래 전 재미있게 관람한 홍콩영화 <폴리스 스토리>에서 주연배우 성룡이 라면을 먹으려다가 젓가락이 없어서 연필을 젓가락 대용으로 사용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동안 제게 연필은 주로 쓰는 도구였습니다.
그런 제게 연필은 단순히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도구만이 아니라 다양한 사용법이 있다는 것을 알려 준 책이 40년간 연필과 더불어 살아온 일러스트레이터 피터 그레이의 <연필의 101가지 사용법>입니다.
<연필의 101가지 사용법>에는 저자가 일러스트레이터답게 스케치, 드로잉, 쇼묘, 캐리커처 등 다양한 그림들과 함께 기준선 긋기, 질감 표현하기, 머리 그리기, 트레이싱, 동작선 그리기 등 미술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도움이 될만한 연필 사용법이 많이 들어있습니다. 물론 저는 미술을 전공한 사람도, 미술 관련 직종에서 일하는 사람도 아니기에 제게는 쓸모 없는 방법들이었지만 연필 한자루를 들고 저자가 알려주는대로 스케치북이나 빈 종이에 선을 긋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가지 패턴으로 명암 그리기]
[동작선 그리기]
[어두운 풍경 그리기]
<연필의 101가지 사용법>이 그림 그리기의 기본과 원리에 관한 사용법만 알려주고 있다면 그저 평범한 미술교재 정도밖에 되지 않았을텐데요. 이 책의 묘미는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TV 프로그램 <알쓸신잡>처럼 알아두면 쓸데가 없지만 신비하게 도움이 되는 연필 사용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겁니다.
책에서 알려주는 연필 사용법은 기발하면서 재치가 넘칩니다. 연필로 할 수 있는 간단한 마술부터 심심할 때 무료함을 달래줄 수 있는 연필 돌리기, 점 잇기 퍼즐, 가끔 위험을 동반한 연필 사용법까지 다양한데요. 책에서 알려주는 연필 사용법 101가지를 리뷰에 모두 담을 수 없으니 몇 가지 사용법만 엄선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섬어라운드 기술로 연필 돌리기]
학창시절 연필 돌리기를 잘 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능숙하게 연필을 돌리는 친구의 모습이 부러워 수업이 끝나면 집에 와서 몰래 연습을 하기도 했는데요. 부단한 연습에도 불구하고 연필이 여기 저기 날아 다니는 바람에 가족의 안전을 위해서 중도에 포기를 했습니다. 만약 이 책이 학창시절 출간했다면 저자가 알려주는 사용법을 배워서 능숙하게 연필을 돌릴 수 있었을텐데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아무튼 요즘 학창시절 실패한 연필 돌리기를 성공하기 위해 사무실에서 열심히 연습 하고 있습니다.
[공중 부양 마술, 출처: 둘째 딸 손]
원리만 알면 연필로 쉽게 할 수 있는 간단한 마술입니다. 자연스럽고 유연하게 하는 것이 이 마술의 성공 관건인데요. 능청스런 연기로 두 딸을 속였습니다. 처음에는 신기하게 공중 부양 마술을 봤던 둘째 딸아이가 방법을 알고 나서는 어이없어 했는데요. 자기도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공중 부양 마술을 보여주겠다고 연습을 하면서 이렇게 인증샷도 찍었습니다(방법은 책에서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연필 부스러기로 그림 그리기, 출처: 직접 그림]
예전에 제 블로그에 연필 부스러기로 그린 꽃을 올린 적이 있었는데요. 연필깎이를 사용한 후 생기는 부스러기들을(물결 모양으로 예쁘게 돌돌 말린 부스러기) 바탕으로 다양한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저는 책에서 소개한 부스러기 그림 중 발레하는 소녀를 따라 그려봤는데요. 제 부족한 그림 실력이 여실히 드러나서 사진을 올릴까 한동안 고민을 했습니다.
<연필의 101가지 사용법>에서는 이 밖에 등 긁기, 속옷 옮기기, 셀로판 포장지 뜯기, 머리 고정하기 등 실생활에서 의외로 유용한(?) 사용법들이 일러스트레이터인 저자의 세밀한 그림과 함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연필의 역사나 연필과 관련된 방대한 정보는 얻을 수 없으니, 연필에 대한 방대한 정보를 얻고 싶으신 분들은 헨리 페트로스키의 <연필>이나 캐롤라인 위버의 <펜슬 퍼펙트>를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연필 한 자루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기발하고 재치있는 연필 사용법이 궁금하신 독자라면 이 책을 읽어보시길 추천해 봅니다. 특히 미술 전공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아무튼 집에 연필 한 자루씩은 있으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