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인 가수 부부>
눈 내려 어두워서 길을 잃었네
갈 길은 멀고 길을 잃었네
눈사람도 없는 겨울밤 이 거리를
찾아오는 사람 없어 노래 부르니
눈 맞으며 세상 밖을 돌아가는 사람들뿐
등에 업은 아기의 울음소리를 달래며
갈 길은 먼데 함박눈은 내리는데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기 위하여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을 용서하기 위하여
눈사람을 기다리며 노랠 부르네
세상 모든 기다림의 노랠 부르네
눈 맞으며 어둠속을 떨며 가는 사람들을
노래가 길이 되어 앞질러 가고
돌아올 길 없는 눈길 앞질러 가고
아름다움이 이 세상을 건질 때까지
절망에서 즐거움이 찾아올 때까지
함박눈은 내리는데 갈 길은 먼데
무관심을 사랑하는 노랠 부르며
눈사람을 기다리는 노랠 부르며
이 겨울 밤거리의 눈사람이 되었네
봄이 와도 녹지 않을 눈사람이 되었네
맹인 부부 가수가 노래하고 있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칠흑같은 밤, 내외 중 한 사람이 아니라 둘 다 맹인이다. 거리에서 노래하는 직업이니 수입이 변변찮을 건 당연하다. 칠흑같은 밤 눈사람을 만들 수 있을 만큼 눈이 오니 거리를 지나는 이들도 노래에 귀를 기울이기보단 제 갈 길을 재촉할 것이다. 게다가 등에는 아기도 업혀 있다. 그 어린 것이 얼마나 추울까. 웬만하면 밖이나 다름없이 손시리게 춥더라도 내리는 눈은 막아줄 그들의 보금자리로 들어가는 것이 어땠을까. 하지만 그들은 거기에서 노래를 부르는 이유가 있다.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기 위하여.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을 용서하기 위하여. 평범한 사람의 마음으로는 결코 볼 수 없는 이 세상 저 너머의 세상을 역설적으로 눈 먼 사람들은 보고 있었나보다. 어둠 속을 떨며 가는 사람들을 위해 그들의 노래는 아름다움이 이 세상을 건지도록, 절망에서 즐거움을 찾도록 길을 앞서 가고 있다. 현실에서는 그들의 노래가 어디 가 닿을 데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내리는 눈을 온몸으로 맞으며 스스로 눈사람이 되었다. 봄이 와도 녹지 않을 눈사람.
오늘 저녁 아이들을 재울 때 읽어 준 동화가 하필 성냥팔이 소녀라 이 시의 슬픔이 배가되었다. 동시에 두 내외가 자신들의 품에 아이를 안고 그 목숨을 내어주며 결국 살려냈다는 단편소설 <화수분>이 겹쳐 떠올랐다. 자신을 눈사람으로 내던져 다음 세상의 희망의 온기를 전해주는 맹인 부부 가수의 노래와 마음이 잔잔하게 와닿는다. 앞이 잘 안 보이는 온라인 개학의 국면에서 네이버를 더듬고 단톡방을 헤집으며 꾸역꾸역 무언가를 낳고 있는 지금의 나는 과연 아이들에게 희망의 눈사람으로 서게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