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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도서]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함민복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외바퀴 휠체어>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에 외바퀴

휠체어 탄 사람이 주차되어 있다


그 위로

장애인 스티커 붙인 차가 진입한다


사각 보호선에 갇혀 비명도 없이

차에 깔리는 휠체어 타고 있는 사람


멈춘 차에서 휠체어가 먼저 내리고

운전자의 상체가 휠체어로 떨어진다


섬뜩하지 않았을까,

마치 자신을 치는 것 같아


일반인들에게는 보호를 받으나

장애인들 차에 반복하여 깔리는 휠체어 탄 사람


장애를 각인시켜주자는 것인가,

국제적으로도 통한다는 저 잔인한 상징은


언젠가 대학 동기 한 녀석이 장애인 주차구역에 아주 잠시 주차를 했는데 그걸 누가 찍어서 신고를 하는 바람에 과태료를 물게 되었다고 성질을 냈었다. 장애인들 평소에 착하다고 생각하고 좋게 봤는데 그게 아니니 어쩌니 하면서 내뱉는 생각없는 소리에 무슨 미친 소리냐고 한마디 하려다 참았다. 서른 일곱이나 된 나이를 어느 구멍으로 처먹었는지 자기 잘못은 생각않고 그걸 신고한 놈도 장애인일 거라 단정지으면서 장애인 운운하는 모습에 한때 마음을 나누었던 것마저 부끄러워지는 것만 같았다. 


<외바퀴 휠체어>를 읽으면서 내가 만난 장애인들을 떠올렸다. 시에서 운영하는 체육시설에 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재활 또는 체육 시설들이 함께 있어서 장애인들을 꽤 많이 만난다. 지적 장애, 자폐, 지체 장애 등 종류도 정도도 다양하다. 본인의 느낌은 당연히 모두 다르겠으나 머리가 희끗희끗한데도 보호자가 없으면 다른 걸 하기 힘든 이들보다는 그래도 다리를 못 쓰지만 운전이라도 해서 스스로 이동할 수 있는 이들이 조금은 더 나아보이기도 했다. 그들의 차는 당연히 다른 시설보다도 더 많이 확보된 장애인 주차구역으로 들어온다. 이 시를 읽고 비로소 거꾸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장애인 주차구역에 주차를 하는 게 아니라 다른 구역에는 주차를 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법규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상상해보자. 만약 일반인들이 주차하는 구역에 장애인 스티커가 붙은 차량이 서 있다면 자연스레 어떤 질문이 나올까? "장애인 차량을 왜 여기다 대놨어?" 국제적으로도 통한다는 그 마크 안에 거꾸로 '갇혀' 버렸다고도 볼 수 있겠다. 


시인은 그 마크를 보호라기보다 각인으로 바라본다. 하반신에 장애가 있는 이들이 주차를 하고 휠체어를 내려 거기에 옮겨타려면 확실히 공간이 더 필요하다. 문콕만 해도 멱살을 잡는 시대에 휠체어가 옆 차를 긁었을 때 벌어질 감정 소모와 불상사는 생각하기도 싫다. 그렇다면, 장애인들만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보다 아예 모든 차의 주차 공간을 휠체어도 내릴 수 있을 만큼, 배 나온 임산부들도 무리없이 내리고 탈 수 있을 만큼 늘려버리는 건 안되는 걸까. 요즘 거의가 1가구 2주택이라 사람이 많은 곳엔 어디나 주차가 고민이다. 하지만 아예 주차장이 그렇다면 아예 처음부터 차를 가지고 나올 생각을 적게 하게 되지 않을까. 장애우라는 명칭이 그들이 바라지도 않은 동정과 차별을 야기한다고 장애인으로 부르는 게 더 바람직하다면 주차 공간 문제에서도 '있는 현실' 뒤에 숨지 말고 '바라는 미래'를 과감하게 만들어가면 안 될까. 나는 장애인이므로 너희보다 배려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보다는 내가 비록 장애가 있지만 당신과 별 차이 없이 누리고 생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들에게 더 도움이 되는 생각이 아닐까 이 시를 읽으며 생각해본다. 


함민복의 시에는 이렇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상을 뒤집어 볼 수 있게 해주는 전환적 발상이 많다. 일상의 시어들을 사용해 소박한 분위기면서도 종종 아! 그렇구나! 하는 깨달음을 주는 작품들이 여럿이다. 어제 교육부에서 전국 학교의 등교 개학을 일주일 미루겠다고 발표했다. 개인적으로는, 아예 좀 장기적으로 계획을 짜서 학교에서도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하지 않고 길게 보고 대안을 마련할 수 있게 해주었으면 좋겠지만 나름의 사정이 있을 거라(근데 이렇게 생각하지 않게 원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는 것이 공무원의 역할 아니냐!!) 십분 양보한다. 그렇게 일정이 연기된 것이 이태원의 클럽에서 터진 코로나 확산 사태 때문인데, 심히 우려스러운 것이 그 클럽이 흔히 '게이'라고 불리는 성소수자들이 주로 모여드는 곳이었으므로 그들에 대한 혐오와 공격이 급속히 확산될지도 모른다는(실제로 내 주변에도 '성경'에 근거해 그들을 격하게 미워하는 이들이 있다.) 것이다. 


장애인도, 성소수자에 대한 문제도 결국 그들이 상대적으로 소수이기 때문에 쉽게 공격받고 내쳐지는 것 아닌가. 반대의 경우라면 사지가 멀쩡한 것에 대해, 이성을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유를 생각해본 적도 없는 본능과 상태에 대해 열변을 토하며 우리의 정당성을 항변했어야 할 것이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한때의 즐거움을 위해 클럽에 모인 이들은 벌을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죄는 죄대로 죄값을 치르면 된다. 그 단죄의 방향이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향해서는 곤란하다. 함민복의 시를 읽으며 그런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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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유사랑

    삶님 글을 읽을 때 늘 감탄하는 것이 끝부분 맺는 문장들이 탁월하다는 것입니다. 이번 글에서도 '죄는 죄대로 죄값을 치르면 된다. 그 단죄의 방향이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향해서는 곤란하다'라는 멋진 문장. 짝짝짝입니다.

    2020.05.14 07:43 댓글쓰기
    • 좋은 마음으로 읽어주셔서 그럴 따름입니다.^^ 짧든 길든 한 편의 완결된 글을 쓸 때마다 마무리는 늘 고민입니다. 글 전체의 주제를 인상적인 문장으로 압축해서 읽는 이에게 오래 남도록 하고 싶다는 강박? 의지? 이런 것들에서 놓여나기 쉽지만은 않습니다.^^

      2020.05.14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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