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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 읽고 울어 봤어?

[도서] 동시 읽고 울어 봤어?

송민화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3점

추천사를 쓴 사람이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 그리고 이 시집을 읽은 이화초등학교 4학년 학생이다. 여섯 살, 네 살배기 아이를 키우는 아빠이자 나름대로 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동시는 언제고 읽히고 싶은 텍스트다. 세상살이가 복잡하고 마음같지 않을 때 나를 잠시 내려놓고 아이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을 때 동시는 또 아주 유용한 성찰의 도구가 된다. 서점 시집 서가에서 서성이다 동시집을 모처럼 사서 돌아온 건 그 때 즈음의 내가 그만치 심란해서였을지도 모른다.


<주름>

엄마, 주름은 왜 생겨?

음......

주름은 훈장이야

기쁜 일 슬픈 일

괴로운 일, 외로운 일까지

다 견디고 온 사람에게만 주는 거야


그럼 할머니는

훈장을 많이 받으신 거야?


그럼 그럼

스무 살에 시집와서 

60년 농사지은 할머니 주름은

금메달보다 값지고

진주보다 아름답고

영화보다 더 슬프지


근데 엄마는 

그 얘기 하면서 

왜 눈이 빨개져?

요즘 어떤 컨텐츠를 접할 때 공중파나 케이블 티비보다도 유튜브 상의 것들이 파급력이나 다양성에 있어서 비교도 안 될만큼 크다. 자신을 꾸미는 방식이라는 의미를 폭넓게 반영하는 뷰티라는 영역도 그 중 큰 줄기에 속한다. 여고에 근무하다보니 거기에 관심이 많은 아이들을 많이 접하고 하니 주워듣는 것도 좀 있는데 유튜브를 보고 배운 이 친구들의 화장술이 그야말로 기기묘묘하다. 예전처럼 떡칠을 하는 게 아니라 자기 피부톤을 잘 분석해서 그에 맞는 화장을 한다. 하지만, 역시 꼰대인 내 눈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얼굴들이 더 예쁘다. 세상 그 어느 화장품으로도 흉내낼 수 없는 싱그러운 천연의 청춘이 그들에게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청춘은 제자리에 머무리지 않으려 하고, 화장품과 약품들의 힘을 빌어 세월이 새긴 주름을 억지로 가리려 하지만 그 모습은 기괴할 따름이다. 최근 <69세>라는 영화에서 성폭행 당한 노인이 용기내서 피해를 고발하고 자신을 찾는 모습에 대해 쏟아진 비난이 나이듦에 대해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를 짐작하게 하여 씁쓸한 적이 있었다. 아이들과 달리 노인들은 또다른 의미로 우리의 미래이자 걸어갈 길이다. 노인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결국 미래의 나를 홀대하는 길이다. 


 <진국이네 할머니>
뚜껑 열리는 빨간 외제차
타고 다니는 진국이네 할머니

손톱도 예쁘고
스카프도 예쁘고
핸드백도 예쁜 진국이네 할머니

부자 할머니 가진 진국이 부러웠는데
얼마전 돌아가셨다

나는 알았다
가장 좋은 할머니는 살아 계신 할머니다

지난 11월 12일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치매로 요양병원 신세를 9년쯤 지다 가셨다. 들기름에 은행을 짭쪼름하게 볶아 입 속에 탁 털어넣어주시던 할머니가 생각난다. 맛있는 걸 가끔 사다 드리면 아랫니를 드러내며 '맛있다'고 말씀하시던 그 특유의 말투가 생생하다. 백여사님, 거기선 옆자리 이웃들하고 안 싸우고 잘 지내시우? 보고 싶어서 오른손가락 둘째마디 안쪽이 찡합니다.


< 숲길>

당신이 오늘 숲길을 걸었다면 지금까지 당신은 참 잘 살아온 거랍니다

당신이 자주 숲길을 걷는다면 당신은 자주 행복한 사람입니다

오늘도, 종종 나는 행복한 사람이었다. 교사와 교사,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때로는 학부모와의 사이에 오가는 부정적인 말들에 지칠 때 나는 학교 앞 생태통로를 걷곤 했다. 아파트 단지 사잇길에 숨은 입구로 걸어올라가면 야트막한 능선이 30분쯤 이어지는 산책로가 있다. 늦봄에는 송홧가루가 날리고 좀 지나면 밤꽃냄새가 나고. 한여름에 들어서도 머리 위를 덮을 만큼 키그게 자란 나무들 덕에 땀이 줄줄 흐르는 등판과 팔뚝을 제외하고는 여름도 잠시 잊을 수 있다. 능선에 들어서기 직전 이백여 개쯤 계단을 오르다가 뒤를 문득 돌아보면 그 속에 있을 때는 눈 앞의 일과 사람들만 보이던 것이, 학교 전체가 우리 딸이 갖고 노는 인형의집 만하게 보인다. 아등바등했던 것들이 우습다. 비로소 내가 어디로 향해 가야 하는지, 어디까지 가다가 말아야 하는지, 어느 길로는 가지 말아야하는지 조망할 수 있게 된다. 지척에 산과 강을 두고 사는 행복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잘 산 거다.


 <학교>
가고 싶을 때만 가는 곳
개그맨보다 웃긴 선생님이 기다리는 곳
무엇을 공부할지 그날그날 내가 정하는 곳
그 누구도 그 무엇으로도 나를 평가하지 않는 곳
온갖 실패와 도전을 즐기며 꿈꾸는 곳
사랑을 배우는 곳

이런 곳이 인류 역사상 있었을까? 사람들은 저마다 학교에 자신이 바라는 모습을 투영한다. 이것 말고도 어떤 사람들은 학교를 졸업장을 주는 곳, 직업 능력을 길러주는 곳, 친구를 만드는 곳, 시험을 보는 곳 등으로 다양하게 정의한다. 실제로 대한민국 정부에서 운영하는 학교들은 위 시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활동을 부분적으로는 할 수 있지만 대부분은 혹은 동시에는 실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저 행복한 일들을 삶에서 포기할 수는 없으니, 학교를 건물로 생각하지 않으면 된다. 가고 싶을 때만 가는 곳을 학교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곳이 도서관일수도, 클럽일수도, 편의점일수도 있다. 백화점에서도 실패와 도전이 있을 수 있고 카페에 가서 내가 메뉴를 보며 무엇을 생각할지 거기에서 무엇을 배울지 결정할 수 있다. 학교의 의미를 결정하는 것은 선생이 아니다. 그렇다고 학생만도 아니다. 내가 누구이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된 '나'이다. 


 <과거>
나 때문에 기죽지 말아요. 누구의 인생이든 
인생이란
후회라는 밥상에
생일 날 먹는 미역국처럼
어쩌다 기쁨 한 그릇 올려지는 법이니까요

날 불러내지 말아요
비 오는 날 짚신 신는 것처럼
멀쩡한 무덤
파헤치는 것처럼
부질없는 법이니까요

과거란
인적 드문 공원 구석에 있는
고장난 화장실 같은 것

이 시가 눈에 띈 건 마지막연의 비유가 무릎을 탁 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과거 없는 삶 없고 지금의 나도 과거가 만들어온 것이겠으나, 때때로 굳이 과거를 떠올리며 현재를 우중충하게 만드는 것은 부질없기도 하다. 그것을, 인적 드문 공원 구석에 있는 고장난 화장실이라고 표현했다. 요즘 공공 서비스가 많이 좋아져서 그런 곳이 적어지긴 했어도, 인적 드문 공원 그것도 누가 왔다 갔는지도 모르는 고장난 화장실이라면 변기 뚜껑을 여는 것이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처럼 두려운 일일 것이다. 그 안에는 아마도 얼마나 묵었을지 모를 무언가가 그득할 확률이 높으니까 말이다. 과거란 그렇게 묵혀놓는 것이니까.


어른이 아이들의 눈으로 세상과 인생을 바라보기 참 어려운 일인데도 작가는 동심이 묻어나는 작품들을 주루룩 늘어놓았다. 그렇지만 다음 구절은 대놓고 어른의 목소리였다.


뒷담하는 사람 멀리하는 사람

나쁜 소문 퍼뜨리지 않는 사람

어린아이의 영혼을 가진 사람

삶이란 결국 시간 관리라는 걸 깨달은 사람

위대한 신념 하나 가슴에 품은 사람


위와 같은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살기 어렵다는 걸 작가 역시 누구보다 잘 알테고, 그래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방법으로 아이들의 눈을 빌리고 있는 것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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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미리내

    정말 오랜만에 읽고 싶은 책이 생겼네요,
    멋진 리뷰 잘 읽고 갑니다_()_

    2020.10.27 14:39 댓글쓰기
    •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2020.10.27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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