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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찾아서

[도서] 왕을 찾아서

성석제 저

내용 평점 3점

구성 평점 3점

주먹 하나로 지역을 지배할 수 있는 지방 소도시. 그곳에서 주먹 하나로 왕으로 군림한 마사오라는 인물이 있다. 성이 마씨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니다. 본명은 있으나 그는 마사오라는 고유명사다. 그 전에도, 그 후에도 그 지역에서 그와 같이 정치, 외교, 국방, 의료, 사회적으로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헌병도 경찰도 때려눕힌 과거의 전력이 있지만 그 위에 수많은 소문이 셀 수 없이 덧칠해진 그는 살아있는 신화이자 전설이다. 그의 주변에 몰려있는 박치기왕, 발차기왕, 아동문학가로 위장한 은둔 주먹 등 마치 주몽을 호위하는 오이, 마리 협부 같은 역할을 하니 신화로서의 구색을 제법 갖추었고, 그의 존재 자체가 살아있는 증거이므로 전설이라 불릴 수 있는 조건도 갖추었다. 


그랬던 마사오가 죽었다. 심지어 자살이라는 풍문도 있다. 왕이었던 이의 부음을 듣고 서술자이자 작품 속 인물인 '장원두'가 고향으로 내려가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마사오가 떠난 그 지역은 원두와 한날한시에 태어난 친구 '박재천'이 장악하고 있다. 어렸을 적부터 타고난 입담으로 주변 분위기를 자기 중심으로 만드는 데 탁월했고, 타고난 덩치까지 갖추었으니 그야말로 건달 맞춤형 인재랄까. 속된 말로 건달세계에서는 '구라'와 '와꾸'를 겸비한 문무겸비의 존재인 셈이다. 사실 싸움 자체는 잘 하지 못하지만 그는 지역사회에서 무엇보다 '소문'이 가지는 힘을 잘 알았기에 그것을 교묘하게 잘 이용했다. 


기존의 왕을 몰아내고 자기가 모든 것을 가지려 했던 조창용에게 날개를 달아주기 위해 마사오를 함정으로 유인하고 옭아맨 것도 재천이었고, 다시 조창용을 제거하기 위해 수작을 꾸민 것도 재천이다. 그리고 마사오의 위명을 기억하는 이들을, 외부 자본에 맞선 지역 수호라는 그럴 듯한 명분으로 결집시켜 자신의 지역 내 경쟁상대인 황포를 제거하는 과정까지를 모두 지켜본 원두는 친구의 기만과 거짓, 허위를 보면서 비로소 권력이라고 부르는 것의 허상을 체감하게 된다. 진정한 왕은 없다. 자신이 상상 속에서, 상상이 덧입혀진 과거 속에서나 존재할 뿐, 사람들은 저마다 필요에 의해 왕을 만들고 스스로 왕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여기에 자신이 평생 사랑해왔지만 재천에게 빼앗겼고, 그에 의해 창용에게 바쳐졌다가, 다시 재천의 차지가 된 세희가 있다. 조폭물에 흔히 등장하는 가녀리고 하얀 비련의 여주인공을 연상할지 모르지만 결코 아니다. 그녀의 눈부신 외모를 탐하며 달려든 모든 남자들이 자신에게 존경을 표하게끔 하기 위해 그녀는 대통령이 되는 것이 꿈이다. 그러자면 자신의 남편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하는 그녀는 그래서 남자들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닌 게 아니라 지역 내 최강이 될 만한 남자를 스스로 선택한 셈이 된다. 황포를 제거하고 피묻은 양복을 입은 재천 옆에서 그에게 어울리는 웃음을 짓고 있는 세희를 보며 '그녀에게는 아무리 많은 사내를 겪어도 곧 복원되는 신비한 처녀성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는 그때까지 자신을 지배하고 있던 유년의 세계에서 분리되어 나온다. 


권력이란 그렇게 위선과 허위로 가득찬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고 고향을 떠나오는 과정을 통해 이 작품이 한편의 성장 소설의 구조를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1996년에 초판된 발표 시점과 작품 곳곳에 숨어 있는 군부독재의 잔재에 대한 냉소를 통해 당대 권력을 풍자하고자 하는 의도 역시 읽어낼 수 있다. 마사오의 신화가 만들어지는 과정, 그 주변을 둘러싼 이들의 거짓 이름, 재천이 한 단계, 한 단계 자신을 왕으로 만들어가는 과정 등에서 읽히는 권력의 허상을 작가 특유의 풍자와 농담으로 버무려 놓은 성장 소설이자 풍자 소설, <왕을 찾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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