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화초가 죽어가고 있다. 화초에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라.
일단, 화초가 내 말을 알아 듣는다고 가정한다.
넌, 내 책상에 있는 화초다. 모니터 오른쪽 아래 얌전히 앉아서 내가 먹을 전자파를 나눠먹는다. 전자파가 유발할 수 있는 질병이 있다면 내가 거기 다가가는 걸 네가 좀 늦춰주고 있다. 일단 무채색이 많은 책상 위에 너는 색채를 더해줘서 일 하는 게 좀 덜 지루하도록 해 줘. 그래서 너의 생명을 꺼트려선 안된다는 책임감이 생겨. 분명히 네가 내뱉는 산소는 내가 숨 쉬는 데 도움을 줄 거고, 내가 내뱉는 한숨을 니가 빨아들여 사는데 도움이 될테니 나 역시 너를 살아가게 하는데 도움을 주는 셈이다. 네가 내게 와서 내 책상에 놓인 순간 너와 나의 생(生)은 연결되고 말았구나. 또한 너는 너를 내게 준 이를 생각나게 하고, 그의 일상과 너를 내게 보냈을 때의 그 마음을 생각하게 하며 그의 안부 또한 궁금하게 한다.
너의 그 작은 몸통은 네가 원래 있었어야 할 사막을 생각하게 한다. 붉은 모래와 돌 뿐인 북미 혹은 남미의 황무지에서 너를 구속하는 화분이 없었더라면 한두 방울의 물로도 1, 2미터 씩 키가 자랐을 너의 생명력을. 그 옆에 그늘막 텐트를 치고 하루 종일 너를 보노라면 그 옆을 지나쳤을 도마뱀과 전갈과 이따금 하늘을 가로질러 갔을 콘도르를 생각한다. 차갑게 식어버린 대지 위로 쏟아지는 푸른 밤 하늘 속 무수한 별들을 떠올린다. 너와 나를 만나기 위해 수억 년, 수십 억년 전부터 출발한 작은 기별들. 너를 통해 이렇게 나는 우주와 연결된다. 내 몸을 구성한 원소들을 지구로 실어왔을 그 별조각들이 이 대지 어딘가에 흩어져 있을 거라 생각하고, 내가 죽어 땅에 묻히면 다시 그 원소 상태로 돌아갈테니 사람이 죽어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결코 비유가 아님을 생각한다.
한두 방울의 물만 있어도 새 몸통을 뻗어내는 너를 보며 나는 사는데 결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음을 새삼 느낀다. 타인에게 주는 나의 따뜻하고 물같은 한 마디가 그 사람의 뿌리를 적셔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말글을 가르치고 배우며 자라나는 아이들 곁에서 살아가는 나의 삶의 태도를 가다듬게 한다. 네가 없으면 나는 컴퓨터 모니터만을 하루 종일 바라볼 것이다. 전기 공급이 끊기면 사라질 그 세상. 결국 허상일 뿐인 그 세상에 갇혀 거짓으로 나를 꾸미다 갈색으로 말라갈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사는 것이, 나도 사는 일이다. 그러니 부디 화초여. 네가 짊어진 생명의 무게가 얼마인지 알 수 없으니,
부디 화초여, 그대도 살라. 살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