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와의 사별. 43년 동안 다니던 직장에서의 해고. 친하게 지내는 이웃 없음. 원칙, 약속대로 되지 않는 것을 참지 못하는 성격. 성격의 표현 역시 괴팍함. 친구, 친척 없음. 이 영화의 주인공 '오베'에 대한 설명이다. 충분히 절망에 빠져 스스로 생을 마감하겠다는 선택을 할 법한 상황이기는 하다. OECD국가 중 부동의 1위 자살국임을 자랑(?)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그 행복한 복지국가에서 무슨 배부른 소리냐고도 할 수 있겠지만 자기의 마음을 이해해 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자신이 스스로 벌어서 삶을 꾸릴 수 없고 국가의 신세를 져야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괴팍한 노인은 한 술 더 뜨는데, 생의 마지막은 무척이나 정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영화 포스터에 나온 것처럼 멀끔한 수트에 셔츠, 넥타이까지 갖춰 매고서 거사(?)를 준비한다. 하지만 거사의 순간마다 -다소 작위적이긴 하지만- 목 매달 줄이 끊어지는 걸 시작으로 끊임없이 사람들이 찾아온다. 무엇보다 파르바네라는 페르시아 여인의 가족이 이사오면서 거사(?)는커녕 집수리 장비 대여, 운전 도로연수, 길고양이 돌보기, 심지어는 어린 자매의 보모 역할까지 직장을 다닐 때보다 더 바쁜 삶이 펼쳐진다. 오베는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이 살아온 지난 삶의 여정을 돌아보고, 외톨이인 괴팍한 노인에서 삶의 지혜와 곁을 기꺼이 내주는 이웃의 정겨운 할아버지로 거듭나게 된다. 거사에 대한 생각을 접었음은 물론이다.
"인간은 좋은 인간의 씨앗"이라는 가스통 바슐라르의 말처럼 단절의 경험으로부터 스스로의 생을 마감하려는 상황까지 갔지만 그를 살린 것은 결국 이웃과의 인간적인 교감, 그를 통한 스스로에 대한 용서였다. 인간은 이렇게 고립되어 살 수 없고 여럿이 어울려 살아야만 하는 존재임을 오베의 이야기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가족을 비롯한 모두와 생이별한 자가격리 기간에 이 영화를 보게 되어 더 뭉클했던 오베의 변모를 설득력있게 보여주었던 이 스웨덴 할아버지 배우(롤프 라스가드)는 분명 연기를 무지 잘하는 거다. 우리나라 배우 중 이 역할에 어울릴 만한 사람을 찾는다면...
김진태?
김상순?
어찌되었건, 영화를 보고 원작 소설은 어떨지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한 몇 안되는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