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다큐멘터리를 시청하셨다는 동료 선생님의 호들갑 때문에 '우리 아이들의 문해력은 잘 갖춰지고 있는 건가?!!'하는 불안감이 마구 자극을 받아 이 책을 사 읽어보게 되었다. 문해력이라니. 쉽게 말하면 글을 읽고 해독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12년 전 임용시험 공부할 때나 들었던 리터러시(literacy)라는 단어가 지금 문득 내 삶과 현실의 문제로 부메랑처럼 날아온 느낌이었다. 기초 문해가 안 되는 문맹의 문제는 언제나 있어 왔겠지만 이것이 요즘(서점가, 방송가) 문제가 되는 것은 그만큼 심각해지고 가시화되었다는 뜻일테니 우리 아이는 어떤지도 점검해 보고 싶어졌다.
우선, 7살, 5살 두 녀석 모두 사건의 인과관계를 잘 갖추어 진술할 수 있고, 본인의 감정 표현도 적절하게 잘 한다. 막연히 내가 거의 매일밤 거르지 않고 책을 읽어주고 재운 것이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다행이다 싶기도 하지만, 큰아이는 둘째에 비해 상상력과 창의력이 다소 부족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막내에게도 이제 슬슬 한글 자모와 그 음가를 익히게 하고 싶으나 그건 빨리 한글을 익히게 해서 다른 아이와의 비교 우위에 서게끔 하고 싶다는 부모의 욕심인 것 같아서 시작하지 않기로 한다.
<당신의 문해력>이라는 이 책은 영유아 뿐만 아니라 초등학생, 청소년들의 문해력 실태와 그 향상을 위한 프로젝트의 경과 및 결과를 보여준다. 영상을 책으로 압축한 것이어서 생생함은 다소 떨어지지만 자녀나 학생들의 문해력을 향상시켜주고자 하는 어른들에게 하나의 방향성을 제시해주기에는 충분하다. 나는 '만 4세 아이들과 함께 한 소리내어 읽어주기'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읽는다.
'문해력'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주변인들과 적절하게 의사소통을 하고 자신의 삶을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기본 조건 중 하나이다. 그 중요성을 미래경쟁력, 권력, 공부자신감, 직장생활, 성적, 지위, 사회적 위치 등 외부적인 조건 달성의 필요조건들만을 중심으로 접근한 것이 이 책 서술의 가장 아쉬운 점이기는 하다.
아이들 문해력의 뿌리는 영아기에서부터 형성된다. 그래서, 소리내어 읽어주는 것이 문해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면 그 시작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생후 48개월을 전후로 해 뇌의 언어 담당 영역인 베르니케(단어 사용 관장) 영역과 브로카(문법 사용 관장) 영역이 발달한다. 그러므로 어린 자녀가 똑같은 질문을 반복하더라도 정확한 발음과 표현으로 대답하며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한글 공부를 자모와 특정 단어를 반복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하면 학습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요즘 사교육 기관에서 하듯 통글자로 가르치는 것보다는 자모의 음가를 아는 것부터다 본질적인 학습이다. 그 기본이 되는 훈련이 그림책 소리내어 읽기와 말놀이다. 유용하고 재미있는 말놀이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거꾸로 말하기. 잰 말놀이(간장공장공장장은...), 의성어-의태어 말놀이(엄마 아빠가 의성어 의태어를 말하면 거기에 어울리는 사물이나 동물, 동작을 아이가 맞히기) 등이다. 이러한 놀이들은 언어 감각을 길러줄 뿐만 아니라 이미지를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을 향상시켜줄 수 있다.
앞서 소리내어 읽어주기는 그 시작이 빠르면 빠를 수록 좋다고 했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읽어주기만 하는 것보다는 아이와 상호작용을 어떻게 해 주느냐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책 표지로 내용 예측하기, 그림만 보고 제목 알아맞히기와 같은 발산적 대화를 통해 정해진 답이 없는 대화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가는 식의 활동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언제든지 책을 집어들 수 있도록 책은 표지가 보이게 여기저기 놓아두는 것이 좋다.
특히 부모들은 책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확하게 읽어주는 데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보다는 오히려 아이가 어느 부분에 집중하는지 관찰하고 글보다 그림에 집중해서 그것에 대해 이야기나누는 것이 바람직하다. 부모가 들려준 내용과 자신의 해석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인지적 성장이 더욱 많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글만 집중해서 읽으면 아이의 흥미는 점점 떨어지지만 부모가 생각하는 속도보다 아이의 속도에 맞추어 대화하면서 읽으면 읽어주는 사람도 즐거울 수 있다.
"책 읽기는 양보다 질이다. 특히 유아기에는 몇 권을 읽어주느냐보다 좋은 책을 어떻게 읽어주냐가 더 중요하다"는 서울대 최나야 교수의 조언이 아이들과 책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어떻게 써야하지를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