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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의 위세는 여전히 대단했다. 2018년 이 학교에 함께 들어온 아이들이 3학년이 되어 졸업했다. 책장의 한 페이지를 넘긴 듯했다. 뭐가 될까 싶은 아이들도 어엿한 성인이 되어 제 갈 길을 가는 걸 보면, 나뿐 아니라 그를 둘러싼 모든 세상이 아름다운 조각을 함께 깎아나가는 거라는 생각에 겸손해야 한다고 다짐하게 된다. 

부부의 근무지가 그대로였기 때문에 주말부부를 하면서 주중에 홀로 아이를 돌보는 생활을 한해 더 연장하게 되었다. 배우자의 부재에 너무도 큰 영향을 받지 않게끔, 의지하는 정도를 줄이고 내 속에 흔들리지 않는 나를, 진정한 나를 찾겠다고 다짐하며 한해를 시작했었다. 그렇게 마음 먹는 만큼 아이들도 나름의 모습으로 커왔고 이제는 제법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졌다. 비교적 규칙적인 일과를 지속하고자 했다. 퇴근하고 애들을 씻기고 먹이고 놀아주다 아홉시에 재우면, 화상 영어공부를 좀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요가를 하거나 반신욕을 하고 잠드는 일과다. 책을 읽고 쓰는 글들은 그 자체로 즐겁기도 했지만 수업에도, 외부 기고에도 두루 써먹었다. 반신욕은 좀 더 가벼운 몸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었고 요가를 통해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은 그날의 것을 그날에 내려놓고 다음날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덕분에, 지금의 나는 1년 전의 나보다 바깥의 것들로부터 좀 덜 흔들린다. 

역병이 잦아들기는 커녕 제 모습을 바꾸어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꾸준히 서점과 도서관에 들렀고, 만나야만 할 사람들을 만났고, 백 권 가까이 책을 읽었고 스무 편 넘는 영화를 보았다. 너댓 가지의 정기간행물을 정기구독하고 있고, 조금 무겁지만 남들이 보기에 지나치지 않은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다. 남원, 하동, 서울, 부산, 영월, 정선, 강릉, 여주, 양평, 충주, 제천, 단양, 성남, 용인, 김천, 안동, 홍천 등 다양한 곳을 다니며 우리 땅의 아름다움을 만끽했다.

다음에라는 말 대신 바로 지금이라는 말을 앞에 놓으며 해보지 않은 것들을 해보려 애썼다.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는 '왜 안돼?'를 말하게끔 했고, 우리 아이들에게는 '괜찮아. 할 수 있어'를 말해주고자 했다. 나는 사회인 야구를 시작했고, 감동적으로 읽은 책의 작가를 집으로 초대했고, 이제는 책을 한 권 써 볼지도 모르겠다. 

새해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읽은 책에서 법정 스님께서 하신 말씀이 올해의 삶을 요약하고 내년의 삶을 그려가게끔 한다. 

"보는 자에게는 책임이 따른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함께 사는 기쁨도 누린다."

나는

내 아내를 보았고,

내 자식들을 보았고,

내 학생들을 보았고,

나를 보았다. 

기쁜 한해였다. 기쁜 한해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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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waterelf

    삶님, 건강하고 행복한 2022년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2022.01.01 15:20 댓글쓰기
    • waterelf님, 한결같은 모습으로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역시 행복하고, 건강한 2022년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2022.01.16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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