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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영화] 강릉

개봉일 : 2021년 11월

윤영빈

한국 / 액션,범죄,느와르 / 청소년 관람불가

2021제작 / 20211110 개봉

출연 : 유오성,장혁

내용 평점 3점

미국의 서부 개척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을 서부 영화라고 부르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마치 무협지처럼 조직폭력배들의 세계관을 갖춘, 흔히 조폭물이라고 불리는 장르가 있다고 할까. 이들은 그들의 범죄 유형에 따라 분류되기 보다는, 마치 프로야구처럼 그들의 출신지와 사용하는 언어를 바탕으로 각인되는 경우가 많다. 부산하면 <친구>, 전라도에 <가문의 영광>, 충청도의 <짝패>. 그 외에도 무수한 영화에서 등장하는 깡패들은 주로 표준어보다는 지역 방언을 사용한다.

이러다보니 남쪽 사투리가 마치 그들의 사회적 신분을 규정하는 외적인 조건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사투리를 쓰는 사람은 주로 깡패를 비롯한 사회적 하층민들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원도 사투리는 개중에서도 무척이나 외면받는 편이었다. 오히려 '감자'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어수룩하고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 심심산골에서 나타난 현실부적응자같은 사람으로 묘사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그 강원도 사투리가 배우 유오성이라는 와꾸(?)를 입고 나타나자, 순박한 말씨 속에 서늘한 칼을 숨기고 있는 양면적인 깡패의 성격에 딱 맞는 외피로 활용되는 모습을 이 영화 <강릉>에서 보았다. 

영화 상에서도 그렇지만 실제로도, 평창 올림픽 특수 뿐만 아니라 각종 도로의 개통으로 수도권과의 접근성이 향상되면서 영동 지역의 경기도 좋아졌고, 부동산 가격도 많이 올랐다. 돈이 모이는 곳에는 역시나 이권을 노린 독버섯이 자라게 마련이다. 리조트 건설과 운영이라는 큰 떡을 놓고 강릉의 터줏대감인 유오성의 조직과 서울에서 이를 노리고 내려온 장혁의 조직이 갈등과 배신을 거듭한다는 것이 이 영화의 주요 줄거리다. 사실, 줄거리만 놓고 보면 굳이 배경이 강릉일 필요도 없다. 양양이어도 되고, 속초여도 되고, 인천이어도 되고, 여수여도 되고, 서울이어도 된다. 다시 말하면,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 외에는 딱히 강릉이라는 배경과 이야기의 접점이 딱히 없었다는 말이다. 

속세에 미련을 버리고 고추 농사에서 삶의 보람을 느끼는 듯한 큰형님이 갑자기 수억 되는 스포츠카를 몰고 도인처럼 나타난다거나, 그렇게 사람많은 경포대 해변도로에서 깡패들 수십 명이 칼부림을 부리는데 아무렇지 않게 뒷수습이 된다거나, 평생 깡패질로 살아온 남자를 여리여리한 여자가 죽였다는데 조사도 제대로 안 하고 감옥에 가둬버린다거나, 빌런 장혁이 왜 중국 어선 지하에서 생사람을 뜯어먹고 살고 있었는지... 불친절한 설명과 어처구니없는 상황 설정은 다시 한 번 이 영화의 배경이 굳이 강릉일 필요가 없으며, 감독이 설정한 허구의 조폭 세계임을 생각하게 한다. 

모든 전투가 끝나고 나서 자신을 책망하는 친구 경찰에게 던진 유오성의 대답이 걸작이다. "내가 말해잔니. 이제 낭만은 씨가 말랐다니.(내가 말했잖아. 이제 낭만은 씨가 말랐다니까.)" 돈이면 평생 같이 해 온 동료의 등에 칼도 꽂고 복수를 돕겠다고 자신에게 손을 빌려준 상대 조직도 제거하는 마당에 낭만? 낭마안? 흔히, 내 손에 피 묻히기 싫고 자기는 고고하고 인격적인 리더인 체 하는 비겁한 관리자들이 하는 전형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대사랄까. 장혁이야 어디 나오든 장혁같이 혀짧고 숨짧은 대사로 보는 사람을 갑갑하게 만드는 이름값을 해 냈다면, 그래도 유오성은 언제나 수트를 입으면 <친구>의 준석이처럼 보이는 효과를 극복하고 제대로 강릉 깡패같은 느낌(실제로 유오성의 고향이 강원도 영월이다. 영월 사투리와 강릉 사투리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다르지만 아무래도 적응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을 내는 역량을 발휘했음에도, 이 영화가 <강릉>이라는 이름을 달기에는 조금 아까운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어느 도시에 가든 'I LOVE 홍콩', 'I LOVE 뉴욕'같은 티셔츠가 있고, 전국 어디를 가든 '00 방문 기념'이라고 새긴 수건을 팔듯 강릉으로 대표되는 강원도의 지역색을 전면에 드러낸 그럴 듯한 깡패 영화 하나가 등장했다는 의의 정도로도 한번쯤 볼 만한 가치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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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유사랑

    올초에 갑자기 영화 '친구'가 자꾸 생각나서 여러번 다시 봤습니다. 냉철한 이성으로 객관적으로 평가해보면 '친구'가 요즘 개봉했다면 오히려 악평이 많았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심장은 20년 지나 다시 본 지금 오히려 먹먹하게 다가오더군요. 왜 그리 대사 하나, 장면 하나가 가슴에 꽂히는지.. 그런 학창시절을 보낸 적도, 조폭 친구도 없고, 부산 산 적도 없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삶님의 이 영화 리뷰를 보니 비로소 알 것 같습니다. 이 영화에서 ‘낭만은 씨가 말랐다’고 말하는 유오성.. 20년 전 영화 ‘친구’에서는 참 낭만적이었죠....

    2022.01.25 09:53 댓글쓰기
    • 저는 고향이 부산이니, <친구>는 제 고향의 한 시절을 스크린에 박제, 영구보존한 듯한 느낌이랄까요. 저도 그 영활 다시 보면 오직 돈, 돈 그것 말고 '가치'에 목숨을 걸던 시절(미화하는 건 아닙니다만...)이 있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2022.01.25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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