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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트

[도서] 페인트

이희영 저

내용 평점 3점

구성 평점 3점

오늘 오전, 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 만든 부모의 형량이 감형되었다는 뉴스 기사를 보았다. 원래 무기징역이 선고되었는데 반성문을 32회 제출한 점 등을 고려해 35년으로 감형되었다고 한다. 물론, 어린 아이를 학대해 죽게 한 것은 용서받기 힘든 범죄이지만 35년이면 상상할 수 없을만큼 긴 시간인데 사람들은 '감형'이라는 말에 꽂힌 것 같다. 죽은 아이 앞에서 35년의 세월로 그 고통을 갚을 수 있느냐는 것도 섣불리 대답할 수 없는 문제이긴 하다. 양형 기준이라는 게 있고, 법률로 운영되는 법치국가에서 감정만으로 범죄의 형량을 판단해서는 안 되지만 법제도 이전에 사람들이 사회 유지를 위해서 대체적으로 합의한 '부모의 역할'이라는 근원적인 부분을 저버린 데에서 오는 본능적인 분노, 그것은 다스리기가 무척이나 힘든 것 같다. 

이런 비정한 부모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혼자 생각하는 게 있다. 준비와 교육. 아무런 준비 없이 부부가 되고 부모가 되는 이들이 많다. 부부 사이의 대화는 어떻게 해 나가야 하는지, 아이에게 내 시간을 어떤 마음으로 내어주어야 하는지 모른다. 집을 어디다 잡고 혼수는 어떻게 하고 통근은 어떻게 할지 고민하면서 서로의 관계와 마음을 어떻게 채울지 고민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뜻하지 않은 임신으로 가정을 꾸리게 되었거나, 주변으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채 둘이서만 가정생활과 육아를 꾸려가야하는 상황이라면 좋은 부모가 되겠다는 생각은커녕 삶을 유지하는데만 허덕일 수밖에 없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희망이 있다면, 내가 도와줄 사람을 비굴하게 또는 절박하게 찾아다니지 않아도 전화 한 통이면 나를 도와줄 사람들이 사회에 있다는 걸 안다면 마음들이 좀 순해지지 않을까, 좀 더 좋은 남편과 아내 그리고 부모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혼인신고와 출생신고를 하는 이들에게 부부교육, 부모교육을 의무화하는 거다. 그래서 거주지 주민센터에서 그들의 상황을 파악, 공유하게 하고 가정생활에서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을 미리 연습시키는 거다. 각각 심리검사를 받게끔 해서 서로의 인간형을 파악하게 하고, 갈등 상황을 예시로 들어 해결을 실습하게 한다. 친족의 호칭, 관계 맺기, 재무 설계 등등을 전문가로부터 학습하게 한다. 소정의 시험을 통해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면 혼인 인증을 해 주고, 보상도 빵빵하게 해 준다. 에이스 침대를 사주거나, 빨래 건조기를 사주거나 뭐 그런. 출생 신고에 앞서서도 임신 초기부터 태교하는 법, 기저귀 가는 법, 아이 건강 상태 파악하는 법, 가사 분담하는 법 등 서로의 역할에 대한 이해와 공동체의식을 함양 아니 주입해서라도 그들이 '함께'해야 하는 사이임을 각인시키는 것이다. 그러고나면, 국가에서 바우처를 준다. 일정 금액의 돈이 아니라, 한달치 기저귀 사용량을 전기요금처럼 산정하고 국가에 청구하는 것이다. 분유도 사멕이고 싶은 걸로 사멕이고(고급 분유라고 누구에게나 다 맞는 게 아니니까) 국가에 쓴 만큼 청구하는 식으로 말이다.

가정 상황이 다르고, 근무 여건이 다르고, 생각도 성격도 다 다르지만, 결국 관계를 지속하는 근본은 같다. 서로에 대한 존중과 이해, 사랑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배움과 노력과 연습이 없으면 지속될 수 없다. 아이디어의 단계니까 구멍이 많겠지만 저출산 시대의 국가에서 반드시 생각해봐야 되는 일이 아닌가 한다. 

소설 <페인트>는 출산 후 양육을 부모가 선택할 수 있게 된 시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자신이 낳은 아이의 양육권을 포기하면 그 아이는 국가에서 관리하는 NC센터로 간다. 18세가 될 때까지 국가가 아이들을 키우는데 비용도 물론 당연히 국가 부담이다. 적절한 수준의 교육과 양육이 이루어진다. 18세가 되기 전에 입양이 성사되면 이들은 과거를 지우고 새로운 이름을 받아 사회로 나가게 된다. NC는 양육 기관, 교육 기관이면서 입양 주선 기관도 되는 셈이다. 입양을 하는 부모들에게는 양육 수당과 연금도 지급되는데 입양 절차와 자격 조건이 까다롭다. 개인 입양이라는 절차가 개입되었지만 사실 국가가 모든 아이들의 양육을 책임진다는 발상은 마치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세스쿠의 사례를 떠오르게 한다. 스킨십을 통해 애착 인형을 엄마로 인식했다던 침팬지의 실험도 생각난다. 

결국 가족은 '사랑'과 '애정'에 근거해 구성되는 집단이라는 생각이 저변에 깔린 셈인데 이 소설은 그 생각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는 것이다. 부모가 되면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사랑이 충만하게 되는 것인가. 무조건적인 희생이 그 순간부터 가능하게 되는 것인가. 물론, 동물 중 유일하게 인간만이 인생 초기에 부모가 그렇게 해야만 하나의 개체로 키워낼 수 있다. 그러나 일정 기간이 지나면 부모든 자식이든 함께 살기 위해서는 서로의 노력이 필요하다. 부모에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입양을 희망하는 부모들과의 면접인 '페인트'는 바로 이런 생각을 형상화한 절차이다. 페인트에 응하는 아이들 역시 부모가 자신에게 요구하는 모습과 조건,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부모와의 삶을 끊임없이 객관적으로 성찰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청소년과 어른들이 함께 읽으면 좋을 법하다. 부모는 부모로 자식은 자식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서로에 대해 양보하고 배려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평범하지만 누구도 잘 모르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 말이다. 부모와 갈등을 겪는 아이에게는 부모에 대한 이해를, 자녀와 갈등을 겪는 부모에게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당연하다는 위로를 줄 수 있는 소설로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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