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바뀌는 모습이 보고 싶은 이북 출신 선거 전략가 서창대(이선균). 어떻게 이기느냐가 아니라 왜 이겨야 하는가가 더 중요한 신념의 정치가 김운범(설경구).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전혀 없었지만, 1961년 인제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는 묘사와 전라도 억양이라면 그 실제 모델이 누구인지 짐작하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여당인 민주공화당의 금권 부정선거와 중앙정보부를 중심으로 한 선거공작, 지역 감정의 설정과 확산이라는 사실과 실존 인물들의 야사에 가까운 이야기를 현실감있게 절묘하게 버무린 시나리오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또한 이 이야기가 설득력있게 느껴지게끔 하는 주, 조연 배우들의 연기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 기관으로부터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고, 빨갱이라고 누명쓰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말 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을 함께 꿈꾸었지만, 그래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모호하지만 기상천외한 전략들로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운범에게 번번이 승리를 가져다주는 서창대. 그만큼 공이 큼에도 불구하고 다른 비서관들과는 달리 어둠 속에서만 활동함으로써 '그림자'라는 별명까지 얻게 된다. 그 과정에서 서창대는 진짜 세상을 바꾸고 싶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림자가 아니라 빛 속에서 활보하며 스스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인지를 고민한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서창대의 변모를 짐작하게 하는 우화로 영화는 시작하지만 그것은 김운범과 서창대가 결국 갈 길이 다를 수밖에 없었을 알려주는 장치로 영화 후반에 다시 한번 활용된다.
"우리집 닭장에서 밤마다 달걀을 훔쳐가는 놈이 있소. 내가 몰래 지켜보다 잡아보니 아 이놈이 이장의 친척이네. 그래서 이장에게 말해봤자 이게 해결이 안 돼요. 어떡하면 좋겠소?"
서창대 : (붉은 실을 내어주며) 이걸 그 닭들 발목에다 매어두고, 새벽에 몰래 당신에 닭 한 마리를 그놈 집 닭장에 넣어두시오. 그리고 다음날 날이 밝은 뒤 이장을 데리고 그 집으로 갑니다. 네놈이 이제 달걀이 아니라 닭까지 훔치느냐! 우리집 닭에는 발목에 다 붉은 실이 매어져 있는데 이걸 어떻게 설명할 셈이냐? 이래도 되냐고요? 좀 그렇지 않냐고요? 그럼 평생 호구로 사시든가.
김운범 : 음. 다음날에 그 양반한테 달걀을 더 선물하지. 아 그 사람도 양심이란 게 있을 것 아닌가. 그럼 훔쳐가는 걸 그만하겠지.
그 우화의 내용과 각자의 대답을 재구성해보면 위와 같다. 올해 2022년에는 대통령 선거와 지방 총선거가 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상대 후보에 대한 비방이 난무한다. 거대 양당의 대선 후보들만 봐도 부인에 장모에 가족에 형제에 대한 낯뜨거운 비난들이 쏟아지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1960년대에도 비방 대신 비전과 공약 선거를 내세웠던 이가 있었다. 권력이 아니라 국민, 양심, 가치, 비전을 말하던 그 거인의 모습이 그립다. 자신에 대한 상대의 비방을 부정하거나 거짓이라고 매도하지 않으면서도 유머로 청중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고 자신의 가치체계로 끌어들이면서 누구도 다치지 않게 하는 화법과 헤아림의 깊이. 될 수 없겠지만 닮고 싶은 인격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빛 속에서 환히 빛나는 사람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사람을 자신이 만들어냈다고 생각하는 이의 변모(흑화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를 보면서 여러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목적이 수단을 합리화할 수 있는가. 너는 옳지 않고 나만 옳다는 독선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불의하고 부정한 이들이 '너에게도 대의가 있듯 나에게도 나만의 대의가 있다'라는 말에는 무엇으로 반박할 수 있는가.
막장으로 치닫는 선거판을 보며, 그리움만 쌓이게 한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