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주고받는 편지>
쌤!
안녕하세용 저 예령이에요~
선생님 생신 즈음에 편지를 쓴다고 해 놓고 또 엄청나게 늦어버렸네요ㅎ 저번에 시집을 선물로 드렸을 때도 거의 학기 끝날 때쯤에서야 써 간 기억이 나요!
얼마 전 서점에 갔다가 제가 최근 제일 감명깊고 재미있게 읽었던 이 책을 보고 선생님께 선물해드릴 겸 여기에 짧은 편지를 써 봐요. 설마 이 책도 이미 갖고 계신 건 아니겠죠?
이 책은 평소에도 아이들을 좋아하지만 존중하는 법은 잘 몰랐던 저에게 많은 깨달음을 준 책이에요! ‘어린이’는 모두가 겪는 시기이지만 커가면서 어린이의 세계를 잊고 가끔은 어른의 관점에서, 어린이에게 너무 큰 제약을 부여하고선 주의를 기울인다고 생각했고, 그런 점을 많이 반성했어요. 저한테는 사촌 동생이 있는데 동생이 4, 5살일 때 길만 걸어도 너무 위험해 보여서 ‘뛰지 마, 조심해, 그 쪽으로 가지마’라는 말을 계속 했던 게 떠올랐거든요! 제 사촌동생도 나름 안전하게 길을 걸으려고 노력했을 텐데 말이에요! ‘내가 그들의 세계와 생각을 너무 무시하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었고요.
또 여러모로 많은 궁금증이 들고 많은 생각과 답변을 생각할 수 있었어요. 학생들과 가까이에서 소통하고 관찰하시는 선생님께서 고등학생들과 어린이를 대하는 방식에 어떤 차이가 있을지 조금은 궁금해지네요! 지금쯤 자소서 기간이 끝나고 살짝 마음이 놓이실(?) 이 타이밍에 힐링용으로 읽어주세요!
2021. 9.30.
2018~2020 제자 예령 드림
어린이 책 편집자로 일했고 지금은 독서교실에서 어린이들과 책을 읽고 있는 김소영 선생님의 에세이 <어린이라는 세계>를 감명깊게 읽었다며 2018년부터 2020년까지를 함께했던 학생이 책과 함께 편지를 보내왔다. 옛날, 고등학교 때 자신을 스쳐간 어떤 선생이 있었다고 말없이 기억해주는 것만도 고마운데 재미난 책을 읽었다고 지 돈 주고 사서 편지까지 써 질문과 함께 보내주다니, 나는 정말 운 좋은 문학 선생이다. 말은 안 했지만 읽고 홀랑 지나갈 수 없으니 반드시 다 읽고 진지하게 답을 써서 새로운 책과 함께 보내준다고 마음 먹은 것이 어느새 선물을 받은지 반 년이 다 되었다. 새 학교로 옮겨와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시간이 필요했는데 중간고사를 앞두고 조금 여유가 생겨 책을 읽고 답장을 썼다.
예령이에게
뒤늦게 시작한 서울 살이는 어떻니. 인스타로 보는 모습은 여전히 씩씩하고 여러 곳에 도전하는 ‘너다운’ 모습이더라만.
책을 선물받고 고이고이 아껴 읽어야지 생각하다가 새로운 근무지에 적응한다는 핑계로 이제야 읽고 답으로 몇 자 쓴다.
고등학생과 어린이를 대하는 것의 차이를 물었지.
예령아. 우리가 같은 학교의 울타리 안에 있었던 시간 동안 내가 너희에게 조금이라도 다정한 사람으로 느껴졌다면, 아마도 그건 내가 너희도 어른들과 다를 바 없이 존중받아야 할 똑같은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대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다. 다른 이에게 아픔이나 슬픔을 주는 일이 아니라면 나는 너의 생각을 재단할 필요가 없고, 표현이 서툴거나 내 마음과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이 너의 마음과 행동을 제약할 근거가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하려 노력했을 뿐이란다. 너를 포함해서 그걸 느낀 친구들은 아마도 스스로를 더 진지하게 돌아보고, 해 보지 않았던 일들에 용기내 도전했을 것이고, 수업 시간에 쓴 글로 자기 마음을 살짝 열어 내게도 보여주었었겠지. 어린이라는 세계도 그렇지 않을까.
“모습이 달라도 존중하자(p36)”라는 말 대신 “같이 놀자”, “반겨 주자”라고 이미 말할 줄 아는 인격자들에게, 남을 속이고 내 몫을 더 챙기는 데 익숙한 어른이 무슨 자격으로 내 생각을 강요해야 하겠니.(물론, ‘아이’앞에 ‘내’라는 관형어가 붙으면 나는 어른일 뿐만 아니라 아빠도 되므로 실천이 약 만 배쯤 어려워지기는 한다.)
네가 수능 특강에서도 여러 번 만난 윤동주의 시에는 항상 성찰의 태도가 묻어나지. 거울이나 우물 같은 데 자신을 비춰보곤 한단다. 살벌하고 엄혹한 시대에 그렇게 자신을 살피고 의지를 다지면서 죽음의 공포, 불확실한 미래, 거대한 불의에 맞서려 했다.
아이는 어른들의 거울이라고들 한다. 아이들이 아직 그리 착하다는 것은, 아직 그 아이들이 만난 어른들의 모습 속에 착한 모습이 남아 있었다는 말이 아닐까.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살다가도 아이들과 눈을 맞추며 가만가만 대화하다 보면 문득 세상에는 아직 분명히 아름다움이 곳곳에 남아있고 또 마땅히 이 세상은 그리해야 한다는 걸 느끼게 된다. 그것이 나와 이 세상과 아이들을 위해 어린이라는 세계를 온전히 받아들이려 노력해야만 하는 이유가 아닐까.
이제 선생님이 네게 질문을 돌려 줄 차례다.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라는 책을 사서 보낸다. (사인본을 줄 순 없고, 이 책이 많이 팔리길 바라는 마음에) 선생님이 만난, 참 나와 비슷한, 어딘가 엉성하고 유순해 보이지만, 다정하고 좋은 사람들의 느슨한 연대가 세상을 조금 더 살 만하게 만들 거라는 소박한 바람을 가진, 좋아하는 형이자 작가님의 책이야.
얼굴의 절반을 가린 채 사람을 만나는 세상이 된 지 어느새 3년이다. 덕분에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변해도 전혀 문제 없었을 것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 반바지 입고 하는 재택 근무, 하객이 없는 결혼식, 강제 회식과 술자리...... 하지만 그 이상, 아니 측정할 수 없을 만큼 잃어버린 것이 훨씬 많은 것만 같다. 곧 마스크마저 다시 벗게 될 시대가 오겠지만, 코로나 전과 후는 과연 같은 세상일까.
예령아.
너는 어떤 세상을 꿈꾸고 있니.
학점, 영어, 자격증, 취업, 연봉, 부동산 말고.
너는 어떤 이로 살아가고 싶니.
좋은 책을 읽었다고, 날 떠올려주는 것도 모자라
그 책에 편지 적어 보내주는
옛 친구가 있는
세상에서 제일로 보람있는 문학 선생 하나가
너의 답장과 다음 책 이야기를
느슨하게 기다리고 있을게.
2022년 4월 19일
2018년부터 너의 벗인 쌤이 정선골에서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