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재'는 조선 중기 문신인 성현의 호다. 당대에 떠돌던 야담(이야기), 다양한 계층에 걸친 사람들의 이야기, 세상일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다양하게 담았다. 성현은 유학자이고, 유학은 소설을 배격했으니 이 책이 이야기기는 해도 구성이나 성격 면에서 소설과는 거리가 멀고 다만 수필집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글의 길이가 일반적인 수필보다도 짧은 것들이 많으니 메모장 혹은 기록장 정도라고 해도 무리가 없겠다.
고려말에서 조선 초기에 이르는 시간에 걸친 당대인들의 삶과 풍속, 가치관, 사회 양상을 솔직하게 볼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양반 사대부들 특히 관료들의 색욕에 대한 일화들이 가감없이 묘사되어 있어서 저자가 양반이 맞나 싶을 정도다. 전에 <청구야담>을 읽었을 때처럼 지금도 전해지는 이야기들의 원형 또는 모티프를 찾거나, 수업 시간에 심심풀이로 들려줄 이야깃거리를 얻을 수 있을까 싶어 읽었지만 19금이라 수업 시간에 써먹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내가 읽은 <용재총화>는 범우사에서 펴낸 문고판으로, 원전에 수록된 총 324편의 이야기 중 55편만 추려서 문든 축약본이다. 그러나 하나의 주제로 묶인 책이 아니라 백과사전식으로 저자의 박람강기를 보여주는 책이므로 크게 아쉬울 것은 없다. 마치 박태원의 <천변풍경>처럼 다양한 일화들을 통해 당대의 모습을 짐작해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글로 쓴 스냅사진첩이라고 해도 되겠다.
아, 동서고금의 선례나 학문적 근거를 들어 쓴 것도 아니므로 요즘 말로 바꾸면 '썰 모음집'정도가 딱 어울리겠다. 조선시대 썰 푼다. 요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