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데리고 서울로 체험학습을 가던 길, 시사IN에서 책 소개 글을 읽었다. 나이보다 고와보이는 할머니인 작가의 사진을 보고 그런가보다 하고 말았는데 몇 시간 지나 들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이 책을 다시 만났다. 인연인가 싶어 아무렇게나 펼친 페이지에서 '순분 할매 바람났네'를 읽고 선 자리에서 찔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예순이 넘어서도 누군가 외로운 이에게 깨꽃처럼 정답고 꼬순 사람이 되어줄 수 있음을, 자신을 이루었던 모든 것을 버린 후 진정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인 글쓰기를 하면서 그 언어들을 진솔하게 꾸밈없이 진실되게, 그래서 묵직하고 분명하게 느껴지도록 써내려간 이 글을 단숨에 읽어 내리며 너무 좋은 책이라고 민섭 형에게 권하며 형을 통해 더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게 되길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자식 다 키운 엄마가 늘그막에 가진 취미생활로서의 글쓰기가 아니라, 진지하게 정진해야 할 삶의 방편이며, 그처럼 삶에서도 처음 겪는 일들과, 익숙지 않은 일들과 '분투'해야 함을, 이순이 넘은 나이에도 그리할 수 있고 그리해야 하는 것이 생(生)임을, 선천적으로 가진 청각 장애와 약한 심장은 말 그대로 장애물이 아니라 그저 나를 구성하는 하나의 속성일 뿐임을 말해주는 이 글. 이 글을 읽어가는 독자에게 그런 태도는 위로가 되고 용기가 되고 희망이 된다.
누구와도 비견하기 힘든 감정의 깊이를 지닌 신인작가인 그가 지병으로 빨리 떠나버린 것이 무척이나 아쉽다. 더불어 글이란, 감동을 주는 글이란 꾸밈과 비유에서 오기보다는, 쓰는 이의 삶과, 그 삶에서 보여주는 삶에 대한 태도와, 그것을 누구나 읽기 쉬운 언어로 내보여주는 데서 온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그래서, 내 짧은 교직 경험을 바탕으로 쓴 원고를 반드시 책으로 출간하지 않아도 괜찮겠다고, 아쉽지 않겠다고 생각을 솔직하게 하게 됐다. 원고를 쓰는 동안 책을 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설레며 즐거웠고 나의 처음과 앞으로를 고민해 보았으면 됐다. 좋은 글을 읽으며 나를 생각하고 남을 생각했다.
시집은 사도 수필이나 소설은 빌려서 읽겠다는 나의 알량한 도서 구입에 대한 원칙을 무너뜨려버린 울림깊은 책이다. 신산했던 과거의 삶이 아니라 지금의 분투하는 삶. 나이에 관계없이 여전히 삶의 의미를 고민하는 삶. 보다 더 나은 내가 되길 바라는 삶. 누구도 아닌 나로서 남기를 긍정하며 꿈꾸는 삶의 기록이었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