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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한 힘

[도서] 말랑말랑한 힘

함민복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3점

- 승리호의 봄 -

 

그물은 다음 사리에 매기로 하고

그물 말뚝 붙잡아 맬

써개말뚝 박고 오는데

벌써 경진 엄마 머리에서

숭어가 하얗게 뛴다

 

그물 매는 것 배우러 나갔던

나도 신이 나서

 

경진 아빠 배 좀 신나게 몰아보지

먼지도 안 나는 길인데 뭐!


내가 시를 읽다가 두 번쨰로 울어본 게 함민복 시인이 쓴 '눈물은 왜 짠가'를 읽고서였다. (첫번째는 서정주의 '신부'를 읽다가 왈칵 눈물이 쏟아지더라.) [말랑말랑한 힘]은 이 함민복 시인이 강화도로 살러 들어가서 보고 듣고 겪은 일들과 사람들을 소재로 쓴 시들이다. 가난 때문에 함께 살 수 없어서 어머니를 이모네 댁에 모셔다 드리는 길에 설렁탕을 먹는 장면을 산문적으로 풀어낸 그 시를 읽을 땐 눈물이 왜 짠지 말로는 설명하기 힘들어도 입 안에 눈물을 삼킬 때 같은 짠맛이 맴돌았었다.

 

그 후 십수년이 지나서 함민복 시인의 이야기를 어느 신문에서 전해들었다. 강화도에 터를 잡고 살기 시작했는데, 거기서 약국인지 한약재상인지를 경영하는 어떤 분과 결혼까지도 하셨다는 소식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이 시집의 제목을 '말랑말랑한 힘'으로 지은 이유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강화도 앞바다에선 망둥어도 많이 나고 숭어도 많이 난다고 한다. 간만의 차가 크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 보기 힘든 고기잡이 방법들을 그의 시 속에서 여럿 찾아볼 수 있다. [승리호의 봄]을 쓴 날은 숭어를 잡으러 나가는 동네 친구의 배를 타고 함께 나갔었던가 보다. 강화도에 봄이 오면 꽃 대신 숭어가 오는가보다. 봄볕을 머금고 제법 포근하지만 아직은 선뜩선뜩 찬 기운이 숨어있는 봄바람을 맞으면서 경진 엄마는 흔히들 생각하는 봄의 꽃밭 대신 숭어가 가득찬 그물을 상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흐뭇한 광경을 보던 시인도 덩달아 신이 나서 선장에게 외친다. '경진아빠! 빨리 좀 달려봐!' 바다 위를 달리는 배를 보고 먼지도 안나는 길을 달린다고 표현한 게 참 재미있다. 주말 부부인 나는 월, 화, 수, 목 자그마치 4일이라는 인고의 시간을 거쳐 아내가 있는 곳으로 간다. 여섯 시간이 걸리는 길이지만 아내를 만나 함께 보낼 즐거운 시간들, 봄의 꽃밭을 생각하면 힘들다는 생각 없이 즐겁게 달려갈 수 있다. 고속도로 위 먼지 폴폴 날리면서 기사 아저씨에게 속으로 외칠지도 모르겠다. 좀 빨리 달려봐요!

 

아.. 그리고 숭어회 먹고 싶다. 숭어회가 먹고 싶은 걸 보니 진짜 봄이 오고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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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아자아자

    함 시인의 결혼 기사를 스크랩한 기억...그리고 나서 시집이던가를 책나눔으로 받았다는...
    이젠 신혼의 삶이 묻어나는 시겠지요.

    2014.03.21 15:41 댓글쓰기
    • 그렇겠죠?^^ 날이 좀 풀리면 강화도로 놀러갈까봐요. 함민복 시인이 낮에 지키고 있다는 그 점빵에 찾아가서 약 사는 척 하면서 시집에다가 싸인도 받고요.

      2014.03.22 10:51
  • 새벽2시커피

    지금쯤이면 황사를 헤치며 달리는 버스 안에 몸을 싣고 계시려나요^^ 살이 묻어나는 시는 역시 좋네요

    2014.03.21 18:24 댓글쓰기
    • 살이 묻어나서 홀쭉해졌으면 좋겠어요ㅜㅜㅜ 역시 집이 좋습니다!^^

      2014.03.22 10:51
    • 새벽2시커피

      삶이 오타 나버렸네요 ㅎㅎㅎㅎ 살빠지면 옆지기가 걱정하실지도 몰라요 ㅋ

      2014.03.29 01:29
    • 좋아한답니다ㅋㅋ 본인이 그렇게 먹여놓고 은근~히 살빼기를 종용하더니만 살빠진 티가 좀 나니까 훨씬 좋아하더라구요.

      2014.04.01 22:42
  • 파워블로그 꽃들에게희망을

    함민복 시인 몇년 전에 낭독의 발견에 나온 거 봤는데요. 정말 시인같지 않고 순박해보였어요. 그런 시를 쓰는 분 답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2014.03.22 05:08 댓글쓰기
    • 맞아요. 진짜 순박하다는 형용사가 참 잘 어울리는 분인 것 같습니다.^^ 메인 사진 바꾸셨더라구요? '오셨쎄요?'라고 수년 동안 맞아주던 그 꽃은 어디로 갔는지요ㅋㅋ

      2014.03.22 10:52
    • 파워블로그 꽃들에게희망을

      ㅋㅋ 그걸고 바꾼지 삼년은 된 것 같은데요..정말 오랜만에 다시 들러 주셨나봐요. 그동안 별일 없으셨지요?^^

      2014.03.24 04:51
    • 얼마 전에도 봤던 것 같은데.. 제가 보고싶은 대로 그냥 봤나봐요^^;;;;;;

      2014.03.24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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