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리호의 봄 -
그물은 다음 사리에 매기로 하고
그물 말뚝 붙잡아 맬
써개말뚝 박고 오는데
벌써 경진 엄마 머리에서
숭어가 하얗게 뛴다
그물 매는 것 배우러 나갔던
나도 신이 나서
경진 아빠 배 좀 신나게 몰아보지
먼지도 안 나는 길인데 뭐!
내가 시를 읽다가 두 번쨰로 울어본 게 함민복 시인이 쓴 '눈물은 왜 짠가'를 읽고서였다. (첫번째는 서정주의 '신부'를 읽다가 왈칵 눈물이 쏟아지더라.) [말랑말랑한 힘]은 이 함민복 시인이 강화도로 살러 들어가서 보고 듣고 겪은 일들과 사람들을 소재로 쓴 시들이다. 가난 때문에 함께 살 수 없어서 어머니를 이모네 댁에 모셔다 드리는 길에 설렁탕을 먹는 장면을 산문적으로 풀어낸 그 시를 읽을 땐 눈물이 왜 짠지 말로는 설명하기 힘들어도 입 안에 눈물을 삼킬 때 같은 짠맛이 맴돌았었다.
그 후 십수년이 지나서 함민복 시인의 이야기를 어느 신문에서 전해들었다. 강화도에 터를 잡고 살기 시작했는데, 거기서 약국인지 한약재상인지를 경영하는 어떤 분과 결혼까지도 하셨다는 소식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이 시집의 제목을 '말랑말랑한 힘'으로 지은 이유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강화도 앞바다에선 망둥어도 많이 나고 숭어도 많이 난다고 한다. 간만의 차가 크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 보기 힘든 고기잡이 방법들을 그의 시 속에서 여럿 찾아볼 수 있다. [승리호의 봄]을 쓴 날은 숭어를 잡으러 나가는 동네 친구의 배를 타고 함께 나갔었던가 보다. 강화도에 봄이 오면 꽃 대신 숭어가 오는가보다. 봄볕을 머금고 제법 포근하지만 아직은 선뜩선뜩 찬 기운이 숨어있는 봄바람을 맞으면서 경진 엄마는 흔히들 생각하는 봄의 꽃밭 대신 숭어가 가득찬 그물을 상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흐뭇한 광경을 보던 시인도 덩달아 신이 나서 선장에게 외친다. '경진아빠! 빨리 좀 달려봐!' 바다 위를 달리는 배를 보고 먼지도 안나는 길을 달린다고 표현한 게 참 재미있다. 주말 부부인 나는 월, 화, 수, 목 자그마치 4일이라는 인고의 시간을 거쳐 아내가 있는 곳으로 간다. 여섯 시간이 걸리는 길이지만 아내를 만나 함께 보낼 즐거운 시간들, 봄의 꽃밭을 생각하면 힘들다는 생각 없이 즐겁게 달려갈 수 있다. 고속도로 위 먼지 폴폴 날리면서 기사 아저씨에게 속으로 외칠지도 모르겠다. 좀 빨리 달려봐요!
아.. 그리고 숭어회 먹고 싶다. 숭어회가 먹고 싶은 걸 보니 진짜 봄이 오고 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