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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아이처럼

[도서] 프랑스 아이처럼

파멜라 드러커맨 저/이주혜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지난번에 아내와 일본에 갔을 때 저녁에 맥주를 간단히 한 잔 하러 호텔 앞에 있는 이자카야에 들어갔는데, 깜짝 놀랐던 게 몇가지 있다.

 

1. 가족들이 다같이 그런 술집에 온다는 것

2. 거기서 담배들을 무진장 피워들 댄다는 것

3. 뛰어다니고 소리를 꽥꽥 질러대는 애들 덕분에 내 앞에 있는 사람의 말소리조차 잘 안들린다는 것.

 

설마 모든 일본인들이 다 그렇겠냐며 우리 애는 절대로 저렇게 남에게 폐끼치는 사람으로 키우지 말자고 다짐에 다짐을 거듭했다. 우리나라도 요즘 그렇게 남들 신경 안쓰고 왕처럼 떠받들면서 아이들을 키우니 거기에 휩쓸리면 안되겠지만, 미국이라고 뭐 우리랑 특별히 다른게 없는가보다. <프랑스 아이처럼>을 쓴 미국인 저술가 파멜라 드러커맨 역시 이와 같은 고민을 하다가 이 책을 쓰게 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일반적인 아이들과는 달리 프랑스 아이들은 왜! 대체 식당에서 떠들기는 커녕 어른들도 길다고 느끼는 코스 요리를 얌전히 앉아 디저트까지 차분하게 먹을 수 있는 걸까. 대체 프랑스 부모들은 무슨 마법을 부리는 걸까?'라는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프랑스의 부모들을 만나고 스스로도 프랑스식으로 아이를 기르면서 얻은 경험들을 읽기 쉬운 에세이처럼 쓴 책이기에, 마치 라디오 사연 쓴 것처럼 진솔할 뿐더러 공감되는 부분이 많다. 남편들도 재미있게 읽어볼 만하다.

 

우선 프랑스 사람들은 임신 과정에서부터 그것을 대하는 태도가 쿨하다. 우리도 그렇지만 미국 산모들도 임신을 하면 안전에 대한 강박증이 생기나보다. 특히 '유기농'이나 '오가닉'이라는 말만 들어가면 무비판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좋게 말하면 카오스 이론의 신봉자, 나쁘게 말하면 안전 염려 강박증 환자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미세 먼지가 우리 아이의 코로 들어가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고 그로 인해 천식이 발병하여 재채기를 하다가 마침 그 앞에 끊어진 전선이 들어가 있는 웅덩이에 넘어져서 아이가 다치거나 죽지 않을까?' 라는 말도 안되는 염려증이 발병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신경이 뱃속의 아이에게 쏠리게 되고 모든 것을 그 아이를 위해 집중하면서 자신의 삶을 아이들의 삶을 통해 증명하려는 경향이 짙어진다. 하지만 프랑스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내가 만나본 프랑스 여성들이 엄마가 되는 일이나 아기의 안전에 대해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그들 역시 다가올 일상의 변화를 인지하고 염려한다. 다만 표현 방식이 다를 뿐이다. 미국 여자들은 임신 기간 내내 자신이 얼마나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는지 걱정과 헌신을 통해 증명한다. 반면 프랑스 여자들은 침착하게 대처하고 자신의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는 걸 자랑스러워함으로써 헌신을 표현한다.”(p43)

 

중요한 것은 뭐든 허용된다.’는 것이 아니라 침착하고 분별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p44)

 

아이를 낳아 기르는 주변의 부모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 중 하나가 밤에 잠을 잘 못자는 것이다. 프랑스식 육아법에서는 아이들이 밤에 잠들어서 다음날 아침까지 깨지 않고 잘 자는 것을 '밤을 한다'고 표현하는데, 놀랍게도 생후 4개월 이내에 거의 모든 아기들이 밤을 하게 된단다. 이 놀라운 일은 '잠깐 멈추기'를 통해 가능하게 할 수 있다고 한다. 

 

아기가 태어난 직후 밤마다 칭얼대는 아기에게 곧장 달려가지 말라. 아기 스스로 마음을 달랠 기회를 갖도록, 반사적인 반응을 하지 말라. 출생 직후부터.(p71)

 

늦은 밤 일어나는 소란에 부모가 조금만 덜 반응하면 아기는 대체로 잘 잔다. 하지만 곧장 달려가는 부모일수록 그 아기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반복적으로 깨기 쉽다(p72).

 

신생아는 2시간 간격으로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데, 2시간 사이클 사이를 자연스레 연결하는 방법을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아기에게 자율성을 주라는 것이다. 그 사이에 어른이 달래주면 아니는 거기 길들여지고 부모들은 더욱 잠자기가 힘들어진다. 잠이 깨면 누군가 달려와 달래줘야만 아기가 잠을 자는 것으로 학습이 되기 때문이다. 반면 잠깐 멈추고 스스로 방법을 찾게 두었을 경우에는 2~3개월이면 그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고 한다. 물론 자지러질때까지 방치하라는 것은 아니다. 이 지점이 프랑스와 미국, 프랑스와 한국식 육아의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신생아조차도 교육이 가능할 뿐더러 스스로 무언가 찾아낼 수 있는 자율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이 부분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답변을 내놓기 전에 먼저 질문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상식이다. 아기가 울 때도 똑같다. 우는 아기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 먼저다.(p75)

 

프랑스 부모들은 잠깐 멈추기가 육아의 핵심이라고 믿는다물론 그것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그 바탕에는 인내와 사랑과 아기가 해낼 수 있다는 믿음과 습관이 있다. 잠깐 멈추기가 효과를 발휘하는 이유는 부모가 아무리 작은 아기도 그저 무기력한 생물 덩어리가 아니라는 것을 굳게 믿기 때문이다. 아기도 뭔가를 배울 수 있다. 아기의 리듬에 맞게 부드럽게 학습하면 좌절이나 장벽은 아기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 부모는 그런 과정을 통해 아기에게 자신감과 평온함, 타인에 대한 인식을 형성하게 해준다. 내가 목격한 프랑스 부모와 자녀 간의 상호존중 관계의 바탕이 그것이었다.(p83) 

 

아이 안에 모든 가능성이 들어있다는 사실은 지난주 읽었던 <모래밭 아이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부분이다. 사실 그렇다. 뇌가 완전히-는 아니지만-갖춰진 상태에서 정상적으로 태어난다면 당연히 학습이 가능하다. 그걸 간과하고 청소년은 미숙하다, 아기는 당연히 미숙하다고 생각해서 모든 것을 어른들의 판단과 결정에 맡겨야 한다는 오만이 어린 자들은 물론 역설적으로 어른들도 더 힘들게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즉각적인 만족을 지연하도록 습관화하면 아이들이 더 차분하고 회복력이 좋아진다. (미셸의 마시멜로 실험) 기다릴 줄 아는 아이가 있으면 가족의 삶도 더욱 즐거워진다. 프랑스 부모는 아이가 쾌활해선 안되고 군소리 없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해야 한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 스스로를 통제할 줄 알아야 즐길 자격이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p92)

 

모든 행동에 지침이 있을 리 없고 있다해도 실천하기는 불가능하다. 결국 어떤 마음가짐이냐 아이를 어떤 존재로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 마음가는 대로 해도 도에 벗어남이 없다는 지천명의 자세라면 너무 오바스럽지만, 어떤 형태로 양육을 해야 한다는 것인지는 어렴풋이 이해가 간다. 아이들은 충분히 학습이 가능하고 또 그것을 부모가 진심으로 믿고,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이러한 습관을 길러주는 것은 어른의 편의를 위함이 아니라 그들의 내적 가능성과 자기제어를 교육해주는 것이다. 이것은 부모의 선택이 아닌 의무이므로 '이건 프랑스에서나 통하는 식이야.' 라고 치부할 건 아니다. 식사시간, 잠을 자는 시간, 행동거지 속에 부모로부터 배우는 절제는 우리에게도 있었다. 밥상머리에서 부모에게, 조부모에게 배웠던 것이다. 웃어른 앞에서 행동거지를 조심하고 스스로를 절제하는 연습을 생활 속에서 해 왔던 것이다.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이 줄면서 아이들은 그것을 배울 기회도 잃었고, 사회는 점점 빨리빨리, 참을성이 없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이곳 저곳이 아픈 것이다. 이를 해결하자면 결국 가족 공동체의 회복 즉,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게끔 만들어야야 한다. 이것은 육아 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 전체를 회복시킬 수 있는 실마리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에 대한 사랑은 무조건적인 수용이 아니라(감정적인 부분은 차치하고) 단호한 경계, 부모들의 적절한 권위도 꼭 필요한 부분이다.

 

프랑스 심리학자 디디에 플뢰는 아이를 행복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좌절을 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이를 놀지 못하게 하거나 안아주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아이의 취향, 리듬, 개성은 당연히 존중해야 한다. 다만 아이는 아주 어릴 때부터 이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곳이 아니며 모두를 위한 시간과 공간이 있다는 걸 배워야 한다.(p104)

 

아이에게 모든 권력이 있지 않고 좌절에 대처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아이를 궁극적으로 더 강하게 하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급작스러운 충동에 의한 요구를 할 때,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해 주어야 한다고 구체적인 행동 지침도 덧붙이고 있다.

 

프랑스식 육아가 가능한 데에는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이 한 몫을 하고 있다. 부모들이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크레쉬(어린이집). 크레쉬 담당 교사들은 아침 7시 반에서 오후 6시까지 근무한다. 아니, 운영시간이 그러니까 근무 시간은 좀 더 길 것이다. 하지만 부모들은 그 교사들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고, 교사들은 아이들의 성장과 보육 과정에서 보여주는 전문성으로 그 신뢰에 답한다. 허허. 온라인으로 몇 시간 강의 듣고 대리로도 볼 수 있는 시험을 간단하게 거쳐 딴 보육교사 자격증을 가지고 교사가 되어서 자기 종아리만 한 아이의 얼굴을 전력으로 스매시하는 것들이 있는 우리나라와는 참 많이 다르다. 국가의 역할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하는 대목이다. 그들의 노동 여건을 자세히 보아야 하고 제도가 제대로 갖춰져 있는지 확실히 점검한 다음에야 그들을 벌해야만 할 것이다. 유아들을 담당하는 크레쉬가 끝나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무료 공립 어린이집 에콜 마테르넬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저러한 신뢰할 수 없는 사설 어린이집 대신 그나마 검증된 교사들이 있는 공립 어린이집에 들어가려고 몇 년씩 대기하기도 한다. 입학권이 권리금이 붙어 팔리기도 한다. 도대체가 정상인 곳이 어디냐. 여기 중국이냐출산율이 계속 떨어지는 이유... 진짜 정부는 모를까?

 

인사는 상대방을 한 사람으로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프랑스에선 어린아이가 인사를 하지 않아도 불쾌하게 생각합니다. 인사를 하는 것은 이기적인 아이가 되지 않게 해주죠. 사람들을 못 본 척하고 인사하지 않는 아이는 비눗방울 속에 갇혀 있는 것과도 같아요. 그런 아이는 받기만 하는 게 아니라 주기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수 없지요.(p198) 

 

아이를 그저 미성숙한 인간으로서 보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한다는 것이 드러나는 또다른 면면이다. 자유, 박애, 평등의 대혁명의 나라에서 이렇게 상호관계에 대한 규칙을 준수한다는 것은 자유란 어떠한 전제를 갖고 있어야 하는지도 알려준다.

 

책 전체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아이들을 위해 부모와 가족 전체의 삶을 희생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결국 다함께 불행해지는 일이다.

2. 아이들도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부모는 그것을 진심으로 믿어주어야 한다.

3. 아이들이 배우고 실천해야만 할 선(카드르)을 명확히 설정하고 그 속에서 자율을 찾을 수 있도록 권위있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이 좌절에 지지 않고 스스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다.

 

이 외에도 좋은 말들이 참 많지만, 구체적인 기술을 알려준다기 보다는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관점을 정립하는 데 도움이 더 많이 될 법한 책이다. 다시 말하면 단순히 '프랑스식 육아법'이라는 새로운 구호를 제창하는 것이 아니라, 존중과 더불어 서로간의 적절한 거리(특히 부모와 아기 간의)를 찾아 가족 구성원들이 다같이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지게 설명하고 있는 좋은 책이다. 육아를 시작하려는 시점에 있는 부부들이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눠 보길 강력하게 추천한다.

 

덧붙임)아기 아빠가 당장에라도 생계를 위해 사냥(혹은 금융투자)을 하러 뛰쳐나가고 싶게끔, 갓 태어난 아기는 누구보다 아빠를 닮아 있다는 얘기를 언젠가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p56) - 재밌고 신기한 이야기다. 기대된다. 진짤까. 아닌 사람들도 있던데. 지난주에 만난 내 친구 딸은 지 엄마랑 똑같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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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그녀

    삶 님과 제가 통했네요. 저 이 책 읽고 있거든요. 내용이 참 좋더군요.
    이자카야 이야기는 좀 심했다고 저도 생각이 드네요.
    저도 이 책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다시 한 더 읽으러 올게요.
    정성들인 리뷰는 한 번 더 읽고 싶어지더라는! ^^

    2015.01.25 00:16 댓글쓰기
    • 아내가 선물받은 책인데 제가 먼저 읽고 말았네요. 이래야한다 저래야한다는 나열식 육아서적보다는 본인의 경험담이라 더 공감도 가고(아직 낳지도 않았으면서;;;) 재밌게 읽었습니다. 아내랑 이 책 내용에 관해 공감대를 형성한 것도 좋았구요.

      2015.02.05 23:31
    • 아름다운그녀

      어제 어떤 분이 이 책을 빌려가서 미리 도서들을 찍었는데 블로그에 이 책들 다 읽은 기념으로 한 번 사진 올리려고 합니다. ^^ 책 내용이 좋더군요.

      2015.02.06 09:41
    • 구경가겠습니다.^^

      2015.02.06 10:00
  • 파워블로그 금비

    읽어야지 몇번 생각이 스쳤던 책이에요. EBS에 랑스와 한국육아 관련 방송을 하길래 본 적 있어요. 책이랑 비슷할 것 같아요. 둘째가 생기면 좀 나그럽게 무던히 육아할 것 같아요. 예비아빠가 육아서 읽는 모습 참 좋네요 :)

    2015.01.25 09:32 댓글쓰기
    • 방학 때 EBS에서 공부에 지친 아이들과 관련한 다큐를 방송하길래 함께 봤는데 이 책 내용과 맞물려서 아이를 키우는 방향성에 관해 같이 고민할 수 있었던 게 참 좋았어요. 제목만 보면 좀 선입견이 생길 수도 있는데 책 내용은 전혀 아니었죠. 오히려 우리 전통 방식의 육아랑 상통하는 느낌도 들고요. 이런 육아서는 좋은데 무슨 육아 대백과사전 이런건 도저히 엄두가 안나서... 산달이 다 되어 가는데 걱정이 이만저만삼만입니다.ㅜㅜ

      2015.02.05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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