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도서]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함민복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하늘길

 

- 함민복

 

비행기를 타고 날며

마음이 착해지는 것이었다

 

저 아랜

구름도 멈춰 얌전

 

손을 쓰윽 새 가슴에 들이밀며

이렇게 말해보고 싶었다

 

놀랄 것 없어 늘 하늘 날아 순할

너의 마음 한번 만져보고 싶어

 

새들도 먹이를 먹지 않는 하늘길에서

음식을 먹으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가까운 나라 가는 길이라

차마, 하늘에서, 불경스러워, 소변이나 참아 보았다


함민복의 시를 읽으면 사람이 참 착해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중국이나 일본 아니면 가까운 동남아에라도 가는 길이었을까. 형편이 어려워서 나이 드신 어머니를 시골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리는 길. 당신의 설렁탕 국물을 자신에게 더 주시려는 어머니를 보며 '눈물은 왜 짠가'를 곱씹던 그 측은한 시인이 멀든 가깝든 해외여행까지 할 정도로 형편이 폈다니 그것만으로도 뿌듯하다. 마음 착한 시인이 좀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시적 화자와 시인을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하게 한 것이라도 말이다.

 

이번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이 문장이 아마 올해 사람들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문장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정말 더웠다. 우리집도 에어컨을 샀다. 누진세가 어떻다고 떠들어대도 그냥 한달쯤 어디 여행 다녀온셈 치자며 저녁 내도록 에어컨을 틀어댔다. 녹색평론 구독하면서 지구 환경이 어떻고 입으로 떠들어도 나는 더위 앞에 그렇게 쉽게 무너지는 속물이었다. 지난 여름 학교도 무척 더웠다. 선생님과 싸우고 차별 받는다고 대들고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고집을 피우고 선생님들과는 사이가 좋지 않고. 7월엔 '소진'과 '떠남'이라는 단어만이 온 생활을 휘감고 있었다. 그렇게 여름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오늘 새벽 그 여름과의 종전은 도둑처럼 찾아왔다. 한바탕 시원한 비가 내린 후 얼굴을 내민 하늘은 어제 보던 그것이 아니었다. 새들도 먹이를 먹지 않을 듯 순결한 푸른색에 솜사탕을 만들기 직전 녹여낸 설탕가락같은 실구름들을 군데군데 휘감고 있었다. 아이들도 수업하다 말고 하늘을 보면서 연신 감탄이었다. 나도 그랬다. 땀이 날 틈없이 살갗을 말려버리는 선선한 바람에 미워할 마음도 섭섭할 마음도 없이 그저 달리고 싶어졌다. 길지는 않더라도, 구름도 멈춰 얌전한 이 착해지는 하늘길이 당분간은 좀 머물러주었으면 좋겠다.

 

아! 가을이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YBLOGWEB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