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날 하와이 주 정부의 문부성에서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각 학교 교장 회의에서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나는 평소대로 강연 전에 정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정화 과정 중에, 내가 이곳에서 무슨 말을 하더라도 두 번 다시 여기서 강연을 할 기회가 찾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정화를 해도 교장 선생님들은 내 얘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라는 게 확실하게 보였지요.
바로 이 점이 중요합니다. 호오포노포노로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면 안 됩니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를 위해서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는 의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에 구체적으로 기대를 하면 그 기대에 휘둘려버리기 십상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항상 제로로 돌아갈 것만 생각합니다.
회의장에 들어서니 약 2~3백 명이나 되는 교장 선생님들이 계셨습니다. 30분으로 예정되었던 호오포노포노 강연이 1분 정도 남았을 때 나는 ‘아, 정말 다행이다. 질문 없이 끝낼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이야기를 다 끝내고 퇴장하려고 할 때, 한 분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 순간 나는 ‘이 질문 덕분에 두 번 다시 여기서 강연은 못하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질문은 “어째서 교육 예산을 더 늘리지 않고 범죄자 교정에 예산을 써야 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곧바로 정화를 했고 그 질문에 대한 영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그 영감 그대로 말을 할 수가 없어서 머뭇거렸습니다. 영감이 내려준 대답은 이러했습니다.“범죄를 저질러서 형무소에 있는 사람들은 여러분들 학교의 졸업생입니다.”
나는 이 말을 해버리면 1회에 5천 달러나 하는 강연 의뢰가 이제는 안 올 것이라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말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어떤 힘에 이끌려 두 번 다시 이 모임에 오지 못할 말을 하고 말았지만, 정화를 한 뒤에는 후회 없이 그곳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세상을 좋게 바꾸려면 자기 스스로 변해야 합니다. 그러니 교장 선생님들 스스로가 변해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두 번 다시 교장 선생님들 앞에서 강연을 못한다는 말은 그들에게 변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러니 세상이 좋아질 리가 없지요. 자신이 변하지 않으면 세상도 변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기대하는 결과에 집착하면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저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은 자신의 집착일 뿐,
이것을 떨쳐버리고 제로 상태가 되면 세상이 기뻐하는 좋은 방향으로 만사가 움직일 것입니다.
모든 것은 제로에서 시작됩니다. 최근에는 과학자들 중에 제로 속에 ‘영원’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과학자는 생각해서 답을 내려고 하기 때문에 이미 기억을 갖게 되는 셈입니다.
무언가를 의도하거나 이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제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잠재의식 속의 기억이 재생되면 욕망과 원망으로 나타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야구 선수가 되고 싶다든지, 우주 비행사가 되고 싶다든지 하는 목표가 있다면
과거의 기억이 재생되어 나타난 욕망이므로 이는 제로 상태가 아닙니다.
제로의 축에 서면 노력과는 상관없이 마땅히 일어나야 할 일이 자연스럽게 일어납니다.
부(富)를 비롯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두 제로 상태에서 존재합니다.
자신 안에 있는 신성한 지혜가 자기 자신에게 가장 알맞은 것을 주고 인간관계의 인연을 만들어주며
필요한 장소로 데려다줍니다.
우리가 곧잘 하는 ‘나는 이렇게 되고 싶다’,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이른바 명령입니다.
신성한 지혜는 그렇게 작은 것보다 더욱 큰 것을 주고 싶어 합니다.
부처는 ‘공(空)’이 되면 깨달음이 있다고 했습니다.
제로 상태에 이르면 필요한 것을 모두 받게 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가령, 입학시험에 합격하고 싶다는 소망이 그 사람의 인생을 진정한 삶으로 이끌어가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연간 50~60억 달러나 벌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절대로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욕망에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이지요.
우리들이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한 사람당 백만 달러에서 2백만 달러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그 정도로 흡족한 생활을 진짜 손에 넣기 위해서는 제로가 되어야 합니다.
제로 지점에 설 수 있다면 인간이든, 물건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자신의 역할과 진정한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신을 찾고 있습니까? 신은 제로 지점에 있습니다.
아름다움을 원합니까? 아름다움도 제로 지점에 있습니다.
진실도, 예술도 제로 지점에 있습니다. 무한한 풍요로움도 그곳에 있습니다.
신성한 지혜는 창조이므로 그 존재에 가장 어울리는 것, 가장 행복하게 되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가장 어울리는 배우자, 가장 어울리는 직업, 가장 어울리는 집 등등 전부 알고 있습니다.
이를 막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사고와 기억입니다.
정말로 깨끗한 상태가 되었다면 욕망도 미래도 없고 다른 사람과의 경계도 사라집니다.
진정한 제로 상태가 되면 모두가 가족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원네스(하나가 되는 것)’라는 것입니다.
미래를 상상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기억의 세계로 들어가버리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것이 제로 상태에 이르면 싸울 일도 없으며 원한도 질투도 모두 사라집니다.
그러나 자신이 제로 상태인지 아닌지를 본인조차 잘 모를 때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제로 상태가 되기 위해 매 순간 정화를 계속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Ihareakala Hew L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