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은 기간 : 10/24 ~ 11/16
총 1,180페이지 (주석 포함 시 1,406쪽 ※주석은 읽는거 아냐~)
한 손으로 들기조차 버거운 무게의 책을 읽었다.
징글징글하게 길었던 책을 완독하고나니 한 여름밤에 팡~팡~ 시원하게 터지는 불꽃놀이가 떠올랐다.
두껍고 무거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오타를 찾지 못했고, 번역 또한 유려하고 매끄러웠다.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에 (이미 앞장은 기억에서 가물가물하다) 기록에 남겨 놓으려 한다.
분명 읽은 책인데 내용이 가물거릴 때, 그 당시에 써둔 리뷰를 읽고 있으면 책 읽을 당시의 내용은 물론 감정까지 되살아나곤 한다. 이 책도 먼 훗날의 나를 위한 기록이다.
두꺼운 책들의 공통점이기도 한데, 서문을 읽으면 책 한권이 깔끔하게 요약되어 있다.
서문이 곧 스포일러 이기도 하다. 서문을 지나면 사실 그 뒤부터는 풀어 쓴 내용이라 반복적이고 중복의 나열이다. 축약된 용어를 사례를 들어가며 풀어서 설명한다. 저자가 펼치는 주장을 뒷받침해줄 그래프와 숫자로 된 데이터들이 붙어, 내용은 쭉쭉~ 늘어난다.
잘 읽힘에도 불구하고 완독에 이르기까지 절대적인 시간을 필요로 한다.
까마득히 먼 과거 수렵 채집 시대부터 21세기인 지금까지 '폭력' 이라는 단어를 놓고 봤을때 폭력이
증가했는지, 감소했는지. 또 감소했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지, 어떤 원인으로 지금의 평화를 만나게 되었는지 등등 폭력에 대한 역사가 주된 내용이다. 과장을 좀 보태면 폭력에 대해 A부터 Z까지 정리할 수 있는 책이다.
1장 낯선 나라
2장 평화화 과정
3장 문명화 과정
4장 인도주의 혁명
5장 긴 평화
6장 새로운 평화
7장 권리 혁명
8장 내면의 악마들
9장 선한 천사들
10장 천사의 날개를 달고
"우리에게는 오늘의 위험들이 있지만 어제의 위험들은 훨씬 더 나빴다. (...) 성 노예로 납치되는 것, 신의 명령에 따른 집단 살해, 죽음을 부르는 원형 극장과 마상 시합, 대중적이지 않은 신념을 품었다고 해서 십자가, 래크, 바퀴, 화형주, 형틀로 처벌 받는 것, 아들을 못 낳는다고 해서 목이 잘리는 것, 왕족과 사귀었다고 해서 할복을 당하는 것, 명예를 지키기 위한 권총 결투, 여자친구에게 점수를 따기 위해 해변에서 주먹다짐을 하는 것, 그리고 문명과 인류를 아예 몰살시킬 만한 핵전쟁의 전망." (p79)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놀라운 것들이 있었다.
몇 개를 나열해 보자면, 흔히 액세서리로도 사용되는 십자가가 얼마나 잔혹한 처형 도구였는지, '기사도 정신' 이란 묘사는 지금은 좋은 의미로 쓰이는데, 중세시대 기사들의 행태와 그들이 저질렀던 만행은 딱히 칭찬할만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 수만명을 죽음으로 몰았던 장본인 히틀러가 채식주의자였고, 심지어 물고기나 동물에 대해서는 한없이 너그러운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책 초반에는 좀 힘들었다. 처음 듣는 잔인한 고문 도구들의 종류와 각각의 사용법을 묘사하는 부분은 읽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끔찍해서다. 과거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폭력의 평범함과 수위가 지금의 우리와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얼마나 놀랄만한 일이었는지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 끔찍한 고통을 주는 고문은 일상이었고, 잔인한 처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일은 무척 자연스러웠다. 사람들은 잔인한 처형에 기꺼이 동참했고 돌팔매질로 자신의 스트레스를 푸는 것처럼도 보였다.
< 폭력이 감소한 이유 > 1. 리바이던(정부,국가) : 개인과 소규모 집단 간의 복수를 국가가 심판하고 대신 벌을 내리면서 폭력의 빈도가 줄었다. (범죄자 처벌, 벌금 부과) 2. 온화한 상업 : 침략해서 자원을 빼앗기보다 물건을 싸게 사거나 잉여 물건을 내다 파는게 더 이익이 된다는 걸 깨달았다. 3. 문명,계몽주의,여성화 : 출판 기술이 활성화되면서 소설을 많이 읽었다. 문학을 통한 감정이입이 약자에 대한 고통을 간접 체험하게 했다. 고문, 마녀사냥 등 타인을 악마화하고 비인간화하는 인식이 계몽주의를 만나 개선되었다. 폭력은 대체로 남성의 오락이다. 여성에게 힘을 실어주는 문화는 폭력의 감소에 영향을 끼쳤다. 4. 권리혁명 : 소수 민족, 여성, 아이, 동성애자, 동물에 대한 폭력을 반대하는 인권운동이 널리 퍼졌다. < 내면의 악마 > 포식성, 우세경쟁, 복수, 가학성, 이데올로기 < 선한 천사들> 감정이입, 자기통제, 도덕성, 이성 |
"세계의 행운이 이어지고 핵 없는 20년이 30년, 40년, 50년, 60년으로 길어지면서, 핵 터부는 규범이 상식으로 변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강화했다. 이제 핵무기 사용은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누구나 그것이 상상할 수 없는 일임을 알고, 남들도 그 점을 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p472)
평화로운 세상이 지속될지 여부는 아무도 모른다.
벼랑 끝에 내몰린 공산주의 국가의 한 또라이 독재자가 어느날 갑자기 '나만 죽을 수 없다'는 논리로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 기껏 이어온 긴 평화를 기록이 무색하게 하루아침에 깨뜨릴수도 있다.
우리가 가진 선한 천사들이 내면의 악마를 꾹꾹 잠재워 평화를 오래 유지했으면 좋겠다.
긴 평화의 기록을 계속 갱신하면서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안전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 시대에 태어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고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