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누가 작가로서의 데뷔의 장에 얼굴을 내민 니노의 깜짝 등장으로 끝내는 2권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 곧바로 3권을 펼치지 않을 수 없었다. 결혼을 하며 나폴리를 떠나는 레누와 나폴리에서 당찬 새 인생의 막을 여는 릴라의 이야기에 빨려들어 읽어내려갔다. 600페이지가 넘는 책을 단박에 읽어가게 하는 저자의 힘은 대단하다. 하지만,이들의 30대 모습에 대한 궁금증은 이내 씁쓸함으로 변해 버렸다.
지식과 명예, 그리고 가정과 부유함을 가지고도 끊임없이 피해자 코스프레하며 열등감과 외로움을 호소하는 레누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볼수록 안타까움이 커진다. 낮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이 남들의 시선에 자신의 선택을 던져버리고는 잘못되면 남탓하고 잘되면 자신의 능력인 줄 알고 으시대면서 내면에 요동치는 불안감과 열등감을 적당히 포장하며 살아가지만,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갖게 되면 결국 감추었던 내면의 무질서들이 드러나고야 마는.... 서른이 넘도록 정작 자신이 무얼 하고 싶은지는 모른 채, 남들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남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무작정 열심히만 살다보니 분노와 외로움만 커지다 결국은 판단력을 잃어버리는 행동에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한숨이 깊어진다. 모든 소설이 교훈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무언가 당위성을 제공하는 구실이 될 것 같은 걱정이 없을 수는 없기에...
'너는 공부를 했으니까 다를 줄 알았어' 라고 말하는 릴라의 말처럼, 니노의 등장에 결국은 이성을 잃어버리는 레누에게 갖는 안타까움이 크다. 레누의 지금모습 10대의 릴라의 일탈보다 더 참혹해보이는 건, 그녀가 발버둥치면서 쌓아올린 지식의 높이로는 그녀의 삶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일도 없다는 것에 대한 허탈감과 씁쓸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레누가 릴라에게 계속 매여있는 걸 보면서, 레누의 불만족, 열등감과 불안감을 파생시킨 것이 정말 릴라 때문일까?하는 생각도 해 본다. 그녀가 좀 더 아름다웠다면, 새 옷이 넉넉히 있었다면, 다리를 절뚝거리는 엄마가 아니라면, 좀 더 똑똑했다면 선생님의 인정에 목말라하며, 친구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밤새 끙끙거리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집중했을까?
'내가 더 많은 것을 잃은 거 같다'는 레누의 푸념을 보면, 레누는 여전히 자신의 인생에 대한 주체자로 서지 못한 데 대한 안타까움이 큰 건 우리네 인생들에게 자주 마주하는 순간이기 때문이겠지.
아무튼 이들의 중년 이후의 삶을 어떻게 그려냈을지는 참 궁금하다. 4권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