뼛속까지 문과인 까닭에 '과학'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거리감이 느껴지지만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세상에 적응하려면 과학과 친해져야 한다. 과학의 기술 발전을 주시하고 과학이 내닫는 길에 한발 먼저 다가가 염려되는 부분을 짚어내는 소설은 이 시대에 꼭 필요하다. 제 7회 한낙원과학소설상 수상작을 읽으면서 코로나 이후의 소설은 어떻게 바뀔까를 생각했다. 마스크를 쓰는 장면은 일상이 되고 바이러스는 주요소재로 등극할 것이다. 사회적 약자의 자리에 바이러스 감염자가 등장하고 어떤 재난영화보다 더 끔찍한 2020년 이후의 현실은 sf소설의 단골 배경으로 그려질 것이다. 현실이 너무 힘겹기에 소설에서마저 바이러스니 항체니 지구종말이니 하는 단어를 보고싶지 않았다. 내가 심사위원이었다면 수상작인 항체의 딜레마 대신 달 아래 세 사람을 당선작으로 뽑았을 것이다. 조선시대로 타임리프하는 설정이 다소 식상하기는 해도 월식을 매개로 신윤복의 그림 속 장면과 이어지는 문학적 상상력이 신선했다. 문장의 맛이나 플롯의 재미도 더 뛰어났다고 생각한다. 당선작보다 우수작이 더 좋은 걸 보니 확실히 문학은 취향의 영역인 것 같다.
외계에서 온 박씨도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다. 중학교 2학년 국어 교과서에 문학의 재구성 단원이 있는데 고전소설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하는 활동을 진행했다. 심청전 춘향전 옹고집전 홍길동전 등 고전소설을 읽고 시대적 배경이나 인물의 성격을 바꾸는 것이다. 이 작품은 흥부전의 제비가 사실은 '은하영웅학교'를 수석을 졸업하고 지구로 특파된 외계생명체라는 설정이다. 과학문명이 훨씬 발달한 외계에서 조선시대 흥부네집으로 파견 나왔으니 얼마나 당황스럽겠는가. 흥부네 처마 밑에서 구렁이를 피하다가 떨어져서 고성능 다리를 다치고... 그 대가로 정교하게 프로그래밍된 캡슐을 던져서 흥부에게 돈과 쌀을 주고.. 기발한 상상력이 재미있었다. 그런데 작가의 욕심이 좀 과했던 걸까. 원작을 너무 여러번 꼬다보니까 이야기가 중구난방으로 어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과학적 상상력을 작품에 녹여낼 수 있는 작가들이기에 더더욱 다음 작품이 기대가 된다. 신인작가들에게 등용문을 만들어주고 따스한 둥지가 되어주는 사계절 출판사에게도 멋지다는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