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장점은 상상력과 공감능력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이다. 아무도 경험해보지 않은 세계를 펼쳐놓기도 하고, 현실에서 불가능한 능력을 가진 주인공이 나타나기도 한다. <닷다의 목격>에서 중학생 닷다는 남이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눈이 밝은' 능력을 지녔다. 새로 산 도마 위에서 하얀 머리를 곱게 빗어 넘긴 할머니를 보고 절을 하는가 하면, 버스 정류장에서 오랑우탄을, 영화관에서 하이에나를 보기도 한다. 동물들의 영혼이 세상을 둥둥 떠다니는 건가. 그러던 어느날 교실에서 줄무늬 꼬리가 북실북실한 너구리와 마주친다. 교실에 너구리가 돌아다닌다니 상상만해도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학교 급식에 반해버린 너구리라니.. 급식실에 유독 학생이 많아보이는 날은 이런 너구리들이 숨어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ㅎㅎ 급식을 먹고난 너구리는 학교를 돌아다닌다. 닷다 말고는 아무도 알아보는 이가 없으니 느긋할 밖에. 그러다가 화장실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과 학생부에서 벌어지는 일을 목격한다.
푸근한 그림체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기분으로 소설을 읽다가 학생주임이 나오는 부분에서 좀 어이가 없어졌다. 왜 청소년 소설은 선생님을 악역으로 등장시키는 걸 좋아할까. 착하고 좋은 선생님을 등장시켜달라는 말이 아니다. 적어도 폭력적이고 이상한 사람을 만들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가해자의 핸드폰을 목격하고 그냥 돌려주는 선생님이 있단 말인가. 선생님을 가해자보다 더 나쁜 사람을 만드는 것이 불쾌했다. 도대체 우리나라 소설가들은 왜 그렇게도 교사를 싫어하는지 알 수가 없다. 학창시절에 만난 선생님들이 다들 그렇게 별로였단 말인가..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다.
'못 본척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괴물을 키운다는 설정이 인상적이었다. 무관심과 귀차니즘을 먹고 괴물은 자라난다. 어떤 일을 목격하고 모른 척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면 이 소설 속의 괴물이 생각날 것 같다. '검은 비닐 봉지 같은 몸에 꼬리가 생기고 다리보다는 발에 가까운 뭉툭한 것도 여러 개 달리고 어깨쯤으로 짐작되는 곳에 뭔가가 삐죽 솟아 있는' 괴물이 우리를 잡아먹기 전에 목격한 것을 속시원히 털어놓는 용기를 내자고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