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 4월부터 2022년 1월까지 진행된 인터뷰를 바탕으로 썼다고 하니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방향 제시가 실려있을 거라는 기대감과 책의 부제인 '어떻게 배우며 살 것인가'가 요즘 내가 가장 의문을 갖고 있는 주제이기도 해서 고민 끝에 책을 구입했지요. 그런데 책의 많은 내용이 유튜브에서 이미 접한 내용이었어요. 인터뷰를 하고 쓴 건지, 유튜브를 보고 쓴 건지 모를 정도로요. (논문은 아니지만, 이렇게 같은 에피소드 우려먹기 해도 되는 건가요?)
실력있는 인터뷰어 답게 안희경씨의 질문은 괜찮았어요. 능력주의나 교육 불평등 문제 같은 제가 궁금한 질문들을 많이 하더라고요.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비가 오면 우산을 쓰세요' 같은 하나마나한 말의 향연이니 원... 우리나라 교육을 위한 구체적인 제언이나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기 보다는 '라떼는 말이야~'하고 자기 얘기만 반복하더라구요.
1. 교육부가 교육문제를 더 얽히고 설키게 만드는 주범이라고 말하는 걸 보고, 현 교육정책을 세게 비판하려나보다 했어요. 근데 해법으로 제시하는 게 학부모들과 "우리모두 이 순간부터 아이들을 입시학원에 보내지 맙시다!"라고 따라 외치는 촛불집회를 하고싶다고... 여기서 빵 터졌어요. 사교육 금지법이나 억제책을 만들겠다면 그에 따른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해야지 갑자기 웬 촛불집회?
2. 환경 교육을 강화시키기 위해 환경교사를 각 학교에 1명씩 두자고 제안합니다. 네, 말은 쉽지요. 근데 한때 많이 뽑았던 환경 교사가 줄어든 이유가 무엇일까요? 원인을 파악해서 문제 해결방안을 찾아야지 원론적인 얘기만 두리뭉실하게 늘어놓는 느낌이었어요. (개인적으로 환경 교사가 생긴다고 환경 의식이 높아질 거 같지 않아요.)
3. 한달에 한 번 시골 분교에 가서 초등학생들이랑 놀고 오는데, 그걸 굉장히 이상적인 수업으로 소개하더고요. 말썽쟁이 2학년 학생들이 자기 수업 시간에는 몰입했다고 하는 부분에선 속이 뒤집어지는 줄. 학생들에게 잠재력이 있으니 교사는 그냥 지켜보라고 하는 데서 초중등 교사의 전문성을 무시하는 것 같았어요. 교회에서 만난 아이도 자기 때문에 지적 능력이 개발됐다고 하질 않나~ 자기랑 들판에서 뛰어놀다보면 다들 과학영재가 된다고 하네요.
4. 본인이 한국에서는 공부로 그닥 인정을 못 받다가 미국 유학을 가서 뛰어난 교수들을 만나서 비로소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하는데요.(자기가 수학 영재인 걸 뒤늦게 알았다는 이야기) 미국의 교육 시스템에 대한 선망과 추앙이 느껴졌어요. 수십 년 전 유학 시절 이야기를 그렇게 자세히 들어야할 필요가 있을까요? 듣다 보면 별 이야기도 아니더구먼. 스스로를 성장소설의 멋있는 캐릭터로 여기고 있는 것 같아요.
5. 이화여대 <환경과 인간> 수업, 수강생들의 찐 후기를 들어보고 싶네요. 진짜 그렇게 인생을 바꿀만한 수업인지??? 그 많은 레포트를 직접 읽을까 싶기도 하고. 조교들만 죽어날 것 같은데..
6. "미국의 좀 괜찮은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잠이 부족할 정도로 공부합니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카페에 가서 차도 마시고 친구도 만나고 게임도 합니다." 이게 말인가요, 방구인가요?? 갓생살기에 도전하는 대학생들의 고충을 알기나 하십니꽈 ㅠ
7. 하루 일과를 30분 단위로 쪼개서 일한다는 이야기, 집에서 교수실까지 걸어다닌다는 이야기, 일주일 전에 원고를 다 쓴다는 이야기, 책 내면 제일 잘 팔린다는 이야기 등등.. TMI, 자기 자랑으로 느껴졌어요. 제발 우리나라 교육 이야기를 하자고요.
8. 한해에 받은 강연 요청이 6000건이라고 하는데, 너무 많은 강연을 소화하다 보니 내용이 비슷비슷해진 게 아닌가 싶어요. 기조연설 전문가라서 강의 내용이 깊이가 없고 구멍이 뻥뻥 뚫려있다고 스스로 인정하시네요. 강연료는 어마어마하게 받으실 텐데요.
9. 책 추천사 요청이 수도 없이 밀려와서 돈의 액수를 높여서 진입장벽을 만들었다는 이야기.. 이게 할 소린가요? 최재천 교수 추천사 붙은 책은 안 사봐야겠어요. 거대 출판사가 돈으로 추천사를 산 거잖아요.
10. 갈수록 심화되는 교육불평등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냐는 질문에, 여태껏 스카이 출신들이 세상을 쥐고 재생산 해왔지만, 지금은 스카이 근처에도 안 가고 2~3년 동안 유튜브를 보며 혼자 코딩 하다가 구글에 취직하는 일이 벌어지고, 그런 인구가 많아지면 교육의 주도권이 바뀐다고 하네요. 교수님 근처에는 이런 애들이 많나 봐요. 제 주변엔 입시 바늘구멍 뚫으려고 죽어라 공부하는 애들이 많은데, 무슨 딴세상 얘기신지..
11. b-boy나 곤충 덕후 같은 다양한 애들로 서울대 입학 정원 10프로를 뽑자, 대학등록금은 더 올리고 기부 입학생 받자 등등.. 우리나라 교육현실을 알고 하는 소린지, 모르고 하는 소린지..
12.독서는 빡세게 일 하듯이 해야지 취미로 한가로이 책을 읽는 건 눈만 나빠지고 시간 낭비라구요? 저는 책을 취미로 읽는데요... ㅠ
하고싶은 말 많지만 여기서 그만할게요. 기대가 커서 실망이 큰 건지 모르겠는데, 저는 전반적으로 최재천 교수가 날로 먹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을 대표하는 석학의 민낯을 볼 수 있어서 나름 의미가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