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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의 일

[도서] 호수의 일

이현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얼어붙은 사춘기, 끝내 맞이하는 성장치유의 이야기

이현의 <호수의 일>을 읽고

 


 

 

내 마음은 얼어붙은 호수와 같아 나는 몹시 안전했다.

그렇지만, 이 오는 일은 내가 어쩔 수 없는 게 아니었다.

 

'내 마음은 얼어붙은 호수와 같아 나는 몹시 안전했다.' 라는 문장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누가 썼는지도, 무엇인지도 모른채 나는 이 책의 책장을 열고 처음 이 문장을 보았다. 그 어떤 디자인도 없이, 작가도 없이 나에게 도착한 가제본 도서 <호수의 일>, 가제본 도서는 처음이라 낯설기도 했지만, 두려움과 걱정도 잠시 이 책이 전하는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었다.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가 나에게만 들려주는 내밀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얼어붙은 호수같이 마음을 닫아버린 한 소녀의 이야기가 신경이 쓰였다. 왜 그녀의 마음은 얼어버렸을까.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여기 한 소녀가 있다. 그 소녀는 엄마, 아빠, 여동생과 함께 있지만, 여전히 외롭고 쓸쓸해보인다. 그러나 얼어붙은 그 소녀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없다. 함께 있지만, 그녀는 진심으로 가족들과  마음을 나눌 수 없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사춘기니깐. 사춘기라서 헤드폰에 귀를 감춘 해 창밖만 쏘아보는 걸꺼야. 라고만 생각한다. 하지만 작가는 우리에게 그 소녀 호정이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 소녀가 단순히 사춘기 때문에  마음이 얼어붙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어린 시절 호정이는 부모님이 사업에 실패한 뒤 할머니 댁에 맡겨진다. 부모님을 향한 다른 가족들의 원망과 비난은 어린 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힘들고 가혹하다. 그렇게 한창 부모님의 사랑을 받을 나이에 호정이는 외로움을 먼저 알아버렸다. 그렇게 부모님과 떨어진 채, 그녀는 그리움, 외로움을 안고 자랐지만, 여덟 살 터울의 여동생 진주는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자랐다. 엄마가 자기 전에 동생 진주에게 다정하게 책을 읽어주고, 아빠가 진주와 놀아주면서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볼 때, 호정이는 자신도 모르게 그 쓸쓸하고 외로웠던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린다. 부모님이 보고 싶어서 지하철을 타고 찾아갔을 때, 자신을 혼내고 돌려보냈던 그 어느 저녁의 기억을 말이다.

 

하지만, 동생 진주가 태어났을 땐 호정이게도 제대로 된 가족이 생겼다. 한 집에서 엄마, 아빠랑 오손도손 살 수 있게 되었다. 여동생 진주와 함께 말이다. 겉으로는 행복한 가정인 듯 보였지만, 이미 마음이 얼어붙은 호정은 그 화목한 가정에 녹아들 수 없다. 그래서 엄마, 아빠의 걱정과 관심이 부담스럽게만 느껴진다.  

 

"왜, 자전거 타고 싶어? 자전거 그렇게 싫더더니."

그 말투에는 분명 서운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서운하다는 건 그러니까. 마땅한 것을 받지 못했을 때 생기는 마음이다.

그 순간 자전거를 탈 마음이 깨끗이 사라졌다.

-p.38-

 

가족들에게는 쌀쌀맞고, 냉정한 그녀지만, 그녀는 학교에서는 다정하고 친절한 또 다른 모습의 호정이가 있다. 그렇게 단짝 친구 '나래'와 신나게 수다를 떨고, 쇼핑도 하고, 야자도 하며 평범한 고등학교 생활을 한다. 그런 그녀에게 전학생 '은기'가 나타난다. 그리고 호정은 자신처럼 '무언가 말할 수 없는 것을 품은 애들처럼 보이는 은기에게 조금씩 끌리면서 닫혀버린 마음을 열게 된다. 

 

그때의 은기를 생각하면 기우뚱한 가로등이 떠오른다. 한낮에 홀로 불이 켜져 있는 가로등. 그러다 밤이 되면 슬그머니 빛을 잃고 어둠에 잠기는 가로등.

 -p.23-

 

호정과 은기는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어쩌면 그것 자체로 좋았는지도 모른다. 서로에 대해 굳이 알려고 않는 것이, 호정에겐 편안함과 믿음을 준 것 같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알려고 물어보지 않아도, 어쩌면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서로가 그런 마음인 것 같았다.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말해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다른 사람의 눈길만으로 아파지는 것들이 있다. 돌이킬 수 없으면서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사라진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p.131-

 

호정은 은기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함께 홍제천 산책길을 걸으면서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나눈다. 그렇게 호정은 은기에게만 닫힌 마음을 열고 은기의 손을 잡았다. 호정과 은기는 손을 잡고 함께 걸었다. 그렇게 서로의 마음은 온통 흔들리고 있었다. 그것을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춘기 소녀의 풋풋한 사랑이라고나 할까. 

 

그때 은기가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한 걸음, 나도 은기 손을 마주 잡았다. 몇 걸음 가다가 은기가 잡은 손에 살짝 힘을 주었다. 

우리는 그렇게 함께 걸었다. 우리에게는 다른 어떤 소리도 없었다. 우리는 그저 손을 잡고 있었고, 온통 흔들리고 있었다.

 -p.160-

 

 그들의 마음을 나눈 만남은 오래 갈거라 생각했지만, 결국은 말할 수 없는 것이었던 은기의 과거 비밀이 탄로가 나게 된다. 아무도 모르게 감추어버리고 싶었던 은기의 아픈 과거가 드러나게 된 것이다. 과거 호정과 사이가 좋지 않던 곽근과 그의 무리들이 은기에 대한 소문을 퍼뜨린 것이다. 은기가 가정폭력의 가해자인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은기는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사라져버리게 되고, 죄책감에 휩싸인 호정은 다시 얼어붙은 마음이 되어 친구들에게도 모진 말을 하며 예민하게 날을 세운다.

 

그와 함께 유년 시절 가족에 대한 서운함과 원망의 감정도 뒤섞여 버린다. 그녀의 마음의 깊은 호수 밑바닥에 있었던 말하고 싶지 않은 것들, 인식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수면 속에 떠오른 것이다. 그녀도 몰랐던 ' 아픈 나'를 비로소 인식하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아픈 나가 아닌 그냥 나일까.

아픈 나와 그냥 나가 주연 자리를 두고 다툼을 벌이는 중인 것 같다. 더 이상 격렬하지는 않을지도 모르지만.

비로소 내 입에서 흘러나온 말들과 함께 그 아이가, '아픈 나'가 달래진 걸까. 그애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p.302

 

그렇게 호정은 은기가 떠나서 다시 홀로 남았지만, 이제는 단단히 얼어붙은 호수는 아니다.  얼어붙은 호수에 금이 가고 얼음이 녹듯, 가족들과 친구들의 애정과 관심 속에 그들과 화해하고 치유와 성장으로 나아갈 준비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은기를 만나러 가서 차마 말하지 못한 그녀의 마음을 전한다. 호정은 은기에게 더이상 미안해하지 않겠다고, 은기가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너무 오래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제 그녀는 안다. 은기와의 시간이 다했다는 것을, 하지만 은기와의 사랑했던, 따뜻한 마음을 나누었던 시간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녀 마음 속 그 빈방 속에 얼마나 따뜻한 시간이 있었는가를 말이다. 

 

은기가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무 오래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언젠가 오늘을, 나를, 우리를 웃으며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 나도

-p.348

 

어떤 일은 절대로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나쁜 일만 그런 건 아니다. 좋은 일도, 사랑한 일도 그저 지나가 버리지 않는다. 눈처럼 사라지겠지만 그렇다고 눈 내리던 날의 기억마저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p.356

 

  

사춘기 시절은 누구에게나 있고 성장에 있어서 반드시 거쳐가야하는 통과의례일지도 모른다. '질풍노도'라는 말이 있듯이, 사춘기 시절은 걷잡을 수 없이 감정기복도 심하고, 많이 흔들리고, 방황하며, 아파하기도 한다. 얼어붙은 호수도 봄이 오면 얼음에 금이 가고 사르르 녹듯이, 우리의 얼어붙은 사춘기에도 비로소 봄이 올 것이다. 얼어붙은 호수와 같았던 호정이의 마음에도 결국 봄이 왔듯이 말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이 책의 작가를 알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의 작가가 누구일까 궁금했는데, 전혀 예상밖의 작가여서 조금은 놀라기도 했다. 「푸른 사자 와니니」 소설로 유명한 작가 이현이었기 때문이다. 주로 아동동화작가로 알려진 그녀가 이렇게 십대들의 성장과 아픔, 치유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그려냈다는 것이 너무 놀라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동들의 심리와 마음을 잘 알았기에 그런 마음으로 그녀가 십대들의 심리와 그들의 아픔과 고민 등을 섬세하게 다룰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앞으로 이 책 <호수의 일>과 같은 이현 작가의 청소년들의 성장 이야기를 기대해본다. 

 

흔들리며, 아픔과 기쁨을 모두 겪어낸 사람들에게, 오랜 겨울 뒤의 따뜻한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깊은 공감과 위로를 준다. 겨울처럼 힘들고 고통스럽게 사춘기를 보낸 이들, 차마 말하지 못하는 마음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제 곧 따뜻한 봄이 온다'라고, 그 아픈 마음도 모두 치유할 수 있다'라고 용기와 희망을 주는 듯 하다. 

 

또한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나 또한 십대 사춘기 시절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학창시절, 야자, 급식, 친구와 수다, 이성 고민 등 십대 시절의 고민과 낭만 등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아울러 은기의 과거 비밀에 해당했던 '가정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 인정 문제' 과 같은 민감하지만, 앞으로 논의될 필요가 있는 사회적 이슈를 이야기 속에 녹여내였다. 그로 인해  독자들로 하여금 그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한 점도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슬픔에서 자라난다. 기쁨에서 자라나는 일은 없다. 그러나 행복한 기억이 있어 우리는 슬픔에 침몰하지 않을 수 있다. 태양의 기억으로 달이 빛나는 것처럼.
그러므로 흠뻑 슬프기를, 마음껏 기쁘기를, 힘껏 헤엄쳐 가기를. 발이 닿지 않는 호수를 건너는 일은 언제나 두렵지만 믿건대, 어느 호수에나 기슭이 있다.

-작가의 말 중에서-

 

책 표지 속에서 서로 마주보는 호정과 은기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젠 서로가 편안하게 마주볼 수 있기를, 더이상 아픔과 슬픔이 없기를 바래본다.

사진 출처: yes24 책 표지 캡처

 

 


 

출판사에서 도서(가제본)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호수의일 #창비 #블라인드가제본 #청춘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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