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통해 다시 찾은 아버지의 참모습"
정지아의 < 아버지의 해방일지> 를 읽고
“나는 아버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던 걸까?"
-한 편의 블랙 코미디같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 3일간 이야기-
가족이나 지인의 죽음 소식에 서둘러 우리는 조문을 하러 장례식장을 찾는다. 살아 생전 고인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인간 관계를 맺었는지는 고인의 장례식장에 가보면 알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조문을 하러 장례식장에 온 사람들과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고인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고인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곤 한다. 이렇듯 죽음을 통해 우리는 고인의 참모습을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이 책 『아버지의 해방일지』 또한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아버지의 참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책에서 아버지는 평범한 보통의 아버지가 아니다. 그래서 그 아버지의 죽음도 보통 다른 죽음과는 다른 특별하고 의미가 있다. '빨치산의 딸'로 살아온 작가가 평생을 '빨치산'으로 살다가 죽은 아버지를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추억한다. 아버지를 조문하러 온 사람들로부터 아버지의 삶을 재조명하면서 아버지의 진정한 모습을 깨닫게 된다.
'빨치산'으로 살아온 아버지의 삶은 어땠을까. 빨치산이라는 말만으로 그가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왔는지 짐작할 만하다. 빨치산이야말로 우리의 아픈 역사이며 또 하나의 동족상잔의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해방과 함께 한반도의 허리는 나뉘어지고 5년 뒤, 한국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한반도의 최전방에서는 한국전쟁과 함께 또 하나의 동족간의 내륙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빨치산 전투'였던 것이다. 그 당시 '빨갱이'라는 이름 아래 살인과 폭력 모든 것이 정당화되었다. 멀쩡한 사람도 빨갱이로 몰려 무차별하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시대였다. 빨치산은 한국전쟁 전후로 좌익 계열과 인민군 패잔병들에 의해 지리산에서 조직된 유격대를 말한다. 그리고 이 지리산에서 벌어진 동족상잔은 어쩌면 한국전쟁만큼이나 민족사 최대의 비극일지 모른다. 이념이 다르다고 해서, 사회주의자라고 해서 아무런 죄책감없이 자행된 살육과 약탈을 보건대 빨치산이든, 경찰이든, 그들의 가족이든 모두가 피해자임을 이 책 속 아버지의 삶을 통해 우리는 알게 된다.
그런데 이 책은 처음부터 아버지의 삶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죽었다' 라는 문장은 간결하지만 그 짧은 두 단어 속에서는 너무나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듯하다.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만우절은 아니었다. 만우절이라 한들 그런 장난이나 유머가 오가는 집안도 아니었다. 유머라니. 유머는 우리 집안에서 일종의 금기였다. 그렇다고 유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누가 봐도 유머일 수밖에 없고 유머여야 하는 순간에도 내 부모는 혁명을 목전에 둔 혁명가처럼 진지했고, 그게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 p.7
빨치산으로써 이념을 고수하며 혁명가처럼 살아온 아버지의 삶을 생각해볼 때 아버지의 죽음은 너무나 황당하고 어이없어 오히려 웃음을 자아낸다. 그렇게 평생을 진지하게 혁명적으로 살아온 아버지는 왜 그런 어이없고 갑작스럽게 삶을 마감한 것일까. 아버지는 한평생을 빨치산으로 낙인찍히고 감옥살이도 하다가 결국은 고향에서 농부의 삶을 살아간다. 그렇게 자신의 이념을 고수하며 살아간 그의 파란만장하고 굴곡진 고통의 삶을 생각해볼 때, 그의 죽음은 허무하게 보인다.
빨치산이었던 부모를 둔 덕에 작가는 평생을 '빨치산의 딸'로 살아야했다. '빨갱이'라는 말처럼 빨치산이라는 말 또한 낙인이 되어 평생 그녀의 삶을 옮아매는 족쇄가 되었다. 자신이 빨치산의 딸이라는 것을 밝힌 정지아 작가는 소설 속 '아리'의 어린 시절처럼 중고등학생 시절 아버지의 빨치산 활동으로 아버지가 감옥에 수감되며 힘든 유년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자신이 '빨치산의 딸'이기에 밖에서 할 수 없는 말과 감정 등을 글로 적어내고 책을 읽으며 문학을 통해 구원을 얻었다고 말한다. 그만큼 빨치산의 딸로 산 자신의 삶은 그녀의 아버지만큼이나 힘들었고 고통스러웠다.
그렇기에 아버지의 죽음은 어쩌면 작가에게도 해방일지도 모른다. 빨치산이었던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작가 자신도 빨치산의 딸이라는 오명에서, 낙인에서, 연좌제를 포함한 차별과 비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를 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아버지의 죽음은 어쩌면 그녀를 구원하고 마침내 해방시켜준 사건이었을지 모른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장례를 치르면서 책 속 화자인 '아리'는 아버지의 여러 모습들을 아버지와 관계를 맺었던 다양한 조문객들을 통해 만나게 된다.
'빨치산'인 형을 두었기에 연좌제에 묻혀 출세도 못하고 술로 허송세월 보내는 작은 아버지의 모습은 참으로 안타깝다. 빨치산의 딸인'아리'의 삶만큼이나 안타깝고 비극적이다.
“니는 그리 잘나서 집안 말아묵었냐?” 집안 다 말아묵고 넘의 인생 망친 놈이 가마니로 가만히나 있제 멋이 잘났다고 멀쩡한 사램을 벵신 맹글고 지랄이여 지랄이! 동상 뱅신 만들고 잠이 처오드냐?"
-p. 38-39
빨갱이 형 때문에 자신의 인생뿐만 아니라 집안이 망했다고 생각해온 그의 동생은 형과 평생 반목하며 지낸다. 형의 죽음을 알리는 전화에 대꾸도 없이 냉정하게 끊어버린다. 결국 작은 아버지는 형과 제대로 화해조차 못하고 관계가 영원히 끊어진 것일까. 살아 생전에는 서로가 화해하면서 용서를 하지 못했지만, 형인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비로소 동생은 죽은 형과 화해할 수 있을까.
이렇게 아버지의 딸이자 동생처럼 가족들은 빨치산인 아버지를 둔 이유 하나 때문에 힘들고 비참한 삶을 살아간다. 어쩌면 그런 삶 속에서 딸인 '아리'는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미움을 쌓였을지 모른다.
아버지로 인해 이렇게 피해를 당한 사람들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아리는 장례식장에 조문온 아버지의 친구들을 포함한 아버지와 관계 맺어온 사람들로부터 아버지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아버지의 소학교 동창이자 시계방을 운영하는 아버지의 둘도 없는 친구인 박선생, 아들이 없는 아버지에게 진정한 '아들' 역할을 하며 아버지를 존경하고 아버지의 장례를 도운 아버지 친구의 아들인 학수, 아버지의 담배 친구인 샛노란 머리의 열일곱살 소녀 등을 통해 아리는 아버지의 삶을 재조명한다. 그들이 전해주는 각각의 다양하고 입체적인 아버지와의 일화들은 아버지인 '고상욱' 이라는 사람의 삶을 이루는 퍼즐 조각과 같다.
비록 아버지는 가족들에게는 빨치산의 가족이라는 오명을 주었지만, 열일곱살 짜리 소녀의 담배 친구가 되어줄만큼 사람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이해해주었다. 장례식에 온 사람들이 아버지에게 품고 있는 생각과 마음들이 사람들에게 베풀어온 살아온 아버지의 삶을 증언해주는 것 같다. 그들이 증언하는 일화들 속에서 생전 아버지의 모습이 되살아나며 '아리'는 아버지와의 추억도 소환하게 된다.
그런 과정을 통해 비로소 이야기 속 화자인 '나'는 아버지와 화해를 하게 된다. 빨치산의 딸로 힘겨운 삶을 살아온 화자가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비로소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사회주의자였고 혁명가였을 뿐 가족을 부양하고 책임지는 가장의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가족들 모두가 가난하고 힘겨운 삶을 살아야했다. 그래서 '나'는 그런 아버지가 있는 고향을 떠나 혼자 살고 싶어했다. 그런 모든 차별과 속박, 비난이 없는 곳에서 자유롭게 말이다.
그런데 그런 내가 아버지의 죽음 이후 아버지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게 된다. 자신이 정작 아버지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는 아버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던 걸까?"
장례식장을 찾아온 사람들을 통해 아버지의 인정많고 현실적인 모습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보다 아버지의 모습을 닮고 어린 시절, 자신에게 아버지가 우상이었고, 자신을 가장 사랑해준 사람이었음을 생각해낸다.
죽음이란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것, 아버지는 보통 사람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으니 해방의 기쁨 또한 그만큼 크지 않을까. 다시는 눈 뜰 수 없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p. 198
그렇게 나는 아버지를 이해하고 관계를 회복한 후에야 비로소 아버지를 자유롭게 해방시켜주게 된다. 아버지의 유골을 손에 들고 '아무데나 뿌려삐리했다니까' 라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가장 아버지다운 방식으로 그를 자유롭게 보내주게 된다.
"아버지의 유골을 손에 쥔 채 나는 울었다. 아버지가 만들어준 이상한 인연 들이 말없이 내 곁을 지켰다. 그들의 그림자가 점점 길어져 나를 감쌌다. 오래 손에 쥐고 있었던 탓인지 유골이 차츰 따스해졌다. 그게 나의 아버지,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
-p. 265
이 책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 3일간의 이야기를 다루었지만, 그 3일간의 이야기가 책 한 권이 될 정도로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고 짤막짤막한 일화들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가 함께 이루어져 생생한 대화를 듣고 있는 듯하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색깔 논쟁이 사라지지 않았다. 배척과 갈등의 말이자 금기어였던 '빨갱이'라는 말은 아직도 우리 삶을 지배하고 우리를 공포에 떨게 한다. 시대와 역사가 만든 희생과 고통의 세월을 살아온 그들의 삶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빨갛지도, 파랗지도 않는 그들 모두는 우리와 같은 '사람'일 뿐인데 말이다. 빨치산의 딸로 살아오느냐고 힘들었다고 이야기 속에서 말하는 작가처럼 이제는 더이상 그들의 삶이 힘겹고 고통스럽지 않기를 바래본다. 또한 용기있고 당당하게 자신이 빨치산의 딸임을 밝히고 이념과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준 작가님께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말에는 '빨치산'이 부모라는 전제가 존재한다. 그 부모에게도 마땅히, 자식이 부모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듯 자식에 대한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해보지도 못했을 만큼 빨치산의 딸이라는 굴레가 무거웠다고, 나는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다.
-p.224

"미안함은 미안함으로 남는 거죠. 영혼이라도 존재한다고 믿는다면 이 마음을 좀 알아주실까 싶은데 아버지가 '뼛속까지 유물론자'라 알아주실 것 같지가 않네요. 그래도 아버지에게 미안한 걸 알기라도 했으니 그게 어디에요. 하하."
-정지아 작가 인터뷰 내용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