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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내 몸을 지나간 후

[도서] 영화가 내 몸을 지나간 후

정희진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변덕스런 봄 날씨와 기운에 집중하기 쉽지 않다. 지난번에 정희진의 시리즈 5를 아주 잠깐 언급했었다(반년이 지났는데도 판쇄가 아직 1). 워밍업으로 좋은 서평의 기준이 되는 책ㅣ서평의 언어 북토크ㅣ정희진X이다혜 편을 청취했다. 내게는 베일에 쌓여있던 정희진 선생님의 말맛을 누릴 수 있는 기회였다. 선생님이 말을 쏟아낸 날은 푼수짓에 폭식하신다지만 김혜리의 조용한 생활에서 인기 폭발한 이유를 알겠다. 나는 시리즈 4를 먼저 읽을 생각이다.

 일 년 사이 놓친 방송들이 많다. 두 분이 메리케이 윌머스의 서평의 언어’(번역서)를 두고 대화를 나누는 공개방송 녹화본이다. 정 작가는 생존과 실존의 이유가 책 쓰기라며, 서평과 해제가 단순한 줄거리 요약에 그칠 게 아니라 책에 대한 리액션으로 자기 입장을 밝히는 일종의 창작이 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 기자도 새로운 각도에서 다양한 논조로 뜯어볼 필요가 있다고 동조한다.

 두 분이 서평의 언어를 두고 전기적 정보 제공과 함께 영문학을 베이스로 깔고 근대화와 제국을 거친 문화적 자부심을 살필 수 있는 반면에, 한국 문학사의 결핍과 제약을 통렬히 느꼈다고 고백한다. 정 작가는 독자 시민에게 국가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단호히 말한다. 오직 시빌 컨트롤만이 자정 능력과 효력을 지닌다고. 김건희로 대변되는 자본과 시장의 욕망을 추종하는 마당에, 민중이 썩은 상태에선 도무지 구제 방안이 없다고 쓴소리를 날린다.

 맞는 말이다.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에서는 조지 오웰의 ‘1984’와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다시 읽기 붐이 일었고, 브렉시트 탈퇴 후 영국 작가는 감정 정화를 위해 바퀴벌레를 썼다. 우리는? 정 작가는 이런 시대일수록 첫번째 독자인 편집자의 안목이 중요하고, 그에 따라 한나라의 흥망성쇠가 좌우된다고 강조한다. 같은 맥락에서 큰조카의 대학진로에 관여하고 지켜봤었지만 안타깝게도 대학 현장과 출판업계 분위기는 이를 받쳐주지 못한다.

 이 기자는 씨네21 소속 잡지를 만드는 입장이다 보니 보다 현실적인 충고를 내놓는다. 베스트셀러는 신이 만든다는 설이 있다고. ‘독자의 마음흐름을 읽는 게 쉽지 않고, 유권자만큼이나 모르겠는 영역이라고 잘라 말한다. 게다가 한국은 번역 시장도 점점 위축되는 상태라 걱정이다.

 

 두 분 모두 서평의 언어의 저자가 속한 영미권의 다시 쌓기와 직접 요리하기 문화에 만감이 교차하는 듯하다. 떠먹어주기나 스크롤 사선읽기가 아닌 내 방식으로 다시 포착해내는 교양과 문해력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 작가도 책이 안 팔리지나 않을까하는 고민 속에 어렵지 않게 쓰려한다고 호소한다. 슬쩍 넘겨본 정희진의 글쓰기 시리즈 4-5도 내려놓고 많이 비워낸 듯하다.

 그뿐 아니라 여성학 공부 커뮤니티(스탠더드 학계인 줄 알았는데 여성 단체 지칭. )로부터의 공격도 꾸준한 것 같다. 현실적으로 논문은 읽는 사람도 별로 없고, 원고료를 주는 게 아니라 도리어 투고료를 내야 하는 부담이 따른다. 써야 할 이유가 자동 소멸된다. 그리고 웬만한 전문잡지 수준보다 못한 지식인의 무식함도 지적한다. 내가 정 작가를 각별히 존경하는 이유이기도 한데, 한국 페미니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는 점이다. 넓고 깊게 보는 지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사회적 약자를 아우르는 메타젠더적입장을 취하지 않는 한, 민족주의와 같은 독성이 있고 담론과 운동이 후퇴할 처지에 놓인다고 경고한다.

 이 기자는 말할 것도 없이 정 작가도 드라마, 영화, 여행 등의 포섭 범위가 방대하다. 우영우가 누구?인 나와는 차원이 다르다. ‘서평의 언어에서 다룬 특정 작가들에 관한 이야기도 유익하다. 리베카 솔닛(나의 최애 작가)이 맨스플레인이 다가 아니니 다른 책들도 두루 읽자고 한다. 이 기자는 책이 와 닿는 링크점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하며,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의 한계를 에둘러 지적한다.

 그러면서 제인 에어의 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다시 쓴 진 리스의 소설의 가치를 어필한다. 이 기자는 영화가 에로틱하게 핀트가 빗나가 별로라고 하고, 재출간되는 Wide Sargasso Sea에 정 작가의 해설이 달린다고 한다. 또한 정 작가는 다시 쓴 소설이, 가야트리 스피박, 호미 바바, 주디스 버틀러 같은 대성한 이론가의 인기에 이바지했다고 분석한다. 이들이 학계가 허하는 계급 출신임도 재고되어야 한다는 예리함도 슬쩍 얹는다. 두 분의 티키타카, 흐뭇.

 

 정 작가는 킬링타임용 독서 말고도 좋은 책은 두세 번 읽고 생각하기를 권한다. 공부에도 현실적인 왕도가 있고 가성비를 따져야 한다고. 그리고 한국에선 임신 중단을 배아와 태아로 구분해 교묘한 수를 두는데, 유럽문화권처럼 앰브리오로 통일하는 방책을 내놓는다. 용어 주필리아도 단순히 수간이 아니라 인간과 동물의 경계로서 섬세히 다뤄야 한다며 워딩의 중요성을 재차 피력한다.

 정 작가의 시인대로 그는 글쓰기를 통해 자본주의 시장과 투쟁한다. 그래서일까 소설가 정찬 같은 알아주지 않음에도 묵묵한 쓰기와 최윤필과 같이 이전에 없던 소재와 다른 시도를 높이 산다. 귀인 정 작가가 계속 현역으로 쟁투할 수 있도록 신간들을 구입하고(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이라도 넣어요~) 추천 댓글도 달아 달라^^.

 끝으로 Q&A 타임에서 정 작가는 남을 설득하려고 괜히 기운 빼지 말고, 같은 순간들을 나눌 커뮤니티를 몇 개 확보해 지치지 않게 자신의 안녕(행복과 건강)부터 챙기라고 충고한다. 좋고 재밌는 건 우리끼리 하자고ㅋㅋ. 설득보다는 어른으로서 누군가의 워너비가 되는 자연스런 삶을 추구하자고 보탠다. 그리고 서평과 마찬가지로, 아니 번역은 더더욱 창작 영역이라고 함께 숨 쉬는 자유(윤상 사랑이란’)를 옹호한다.

 일례로 코맥 매카시의 로드가 정영목을 통해,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데버러 스미스를 통해 확장되어 인기를 누렸듯이 말이다. 심지어 모든 대화도 번역이라는 말은 먹먹한 진동을 낳는다. 외국과 달리 종북 프레임과 사상 검증의 짐스러움이, 여전히 한국 문학의 성장을 억누르고 있다. 정치와 문학을 따로 두며 눈치 보는 분위기가 다원적 비평을 가로막는 정체 현상을 초래한다고 콕 찌르며 소중한 만남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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