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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내 몸을 지나간 후

[도서] 영화가 내 몸을 지나간 후

정희진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오래전 학생들에게 책상 한 코너에 인생 책, 음반, 디비디를 소장하라고 권했었다. 때로는 물성이, 시선이 머무는 자리에 있음이 기억하기를 도울 뿐 아니라 대신해 를 설명해주는 긴요한 알림이 될 거라고 곁들었었다. 정작 나는 그러지 않으면서. 그리고 얼굴이 수시로 바뀌는 이십대는 일 년 단위로 증명사진을 찍고 삼십대부터 점점 그 간극을 벌려 소장하라고. 물론 나는 그러지 못했다..

 ‘명연주 명음반20주년을 지났다고 해서 이런 상념이 스쳤는지 모르겠다. 십삼년인지 사년인지 기념행사에 갔었는데, 이렇게 차곡차곡 쌓이는 시간은 하늘의 도움이 함께 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장일범 선생님은 어디서 모하시는지.. 아침 방송 진행 어떻게 안 되나요~.

 정희진의 글쓰기 시리즈 1~3을 읽었고 그때도 소감을 얹을 엄두가 나지 않아 인용만 하고 끝냈었다. 4~5는 무게를 덜었을 거라고 추측했으나 말끔히 빗나갔다. 1장만해도 갈증의 언어주제에 맞춰 손끝의 크리에이터답게 현란한 언어 마술을 부린다. 나는 늘 자기 말로 소화해 제대로 언어화하는 사람을 기다린다. 거기에 딱 들어맞는 작가이다. 모든 말에 동의하는 건 아니나 대체로 수긍한다.

 여러 번 밝혔듯, 나는 영상물을 즐겨 보지 않는다. 그러나 본 소감이나 이야기에는 속수무책으로 빠져든다. 이 책도 영화를 옷걸이 삼을 뿐ㅋ 정희진 표 문화 현상 진단을 예리하게 정돈해 내놓는다. 좋은 문장들이 많아 장별로 따로 떼어 옮기면서, 필요시 임의로 < >로 강조하겠다.

 

 

 ‘우리 것’, ‘는 인식하고 찾는 과정조차 그들의언어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그래서 탈식민은 귀향이 아니라 다른 사회를 만드는 <실천>이다. (11)

 

 안정된 존재가 쓸 글은 바람직하지도 않지만 안정이란 애초에 성립 불가능하다. 성립 가능하다면 그 안정은 <기득권 속의 안정>일 뿐이다...

 모든 관점은 <부분적 시각>일 뿐이다. 이에 더해 왔다 갔다하는 불안정한 상태가 인간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언어가 아무데나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특정 맥락> 안에서만 의미가 있고 소통 가능하다...

 이 책의 요지는 한 장면으로 전체를 해석하고 확장하고 다양한 버전으로 보는 방식을 공부하는 데 있다... 자기 존재의 <부분성>을 깨닫고 자신이 무엇을 모르고 아는지를.. 인생의 다양한 <맥락>에 따라 영화의 내용은 달라진다. (12; 16; 17)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의 경험, 위치, 동일시한 부분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하면 영화보다 더한 <나의 영화>가 만들어질 것이다... 예술은 비평(감상)이 없으면 완성되지 않는다... 모든 언어는 현실보다 늦게 당도한다. 영원히 도착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다. (30-31; 35)

 

 <고통>이 없다면 종교와 예술은 없을 것이다... 지금 인류에게 절실한 것은 그야말로 <나눔>이다. 돈과 건강 외에 언어, 보살핌, 존중의 가치가 중요한 자원으로 인식되고 평범한 이들이 이런 것들을 보유해야한다. (19-20)

 

 <독창성>은 벼랑 끝이라는 맥락, 부분적 관점에서만 가능하다... 부분적 관점은 모두를 똑같이 여럿 중의 하나라고 보는 탈정치가 아니다. <자기 입장>의 사회성과 정치학을 분명히 하면서 인식하는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는 <실천>이다. (21; 24)

 

 <독서>는 필자와 충돌하든 조우하든 잠시 공감하든, 다른 세계를 사는 타인을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이다... 꽂힌부분을 통해 나 자신을 알 수 있고, 그 부분에 나의 세계관이 압축되어 있다고 믿는다. (27)

 

 지속가능한 발전은 애초부터 <자본주의>와 양립할 수 없(었)다.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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