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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

[도서] 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

정희진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정희진 작가의 논리 전개는 용의주도하고 힘차다. 거기에 슬쩍 얹는 한자나 영문 표기도 신선해 시선을 끈다. 엄청난 관찰(옵절빙)을 통한 포박. 한순간도 방심하지 않고 철저히 수비하고 틈새를 공격한다. 저자는 투수의 선구안을 피력하는 야구광이기도 하다. 나는 작은 공에 도대체 몇 명이 휘둘리고, 동시다발적이지 못하고 연차적인 전개라서 별 흥미를 못 느낀다.

 기존의 남성 중심의 단일 보편성uni/versal(하나의 목소리)을 뒤집는 과정에서 다양성poly/versal을 위장한 채, 위계를 숨기고 있는 흑백논리를 재탕해선 안 된다고 견제한다. 포장된 관용이나 나 편한 연대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리뷰 (1)에서 언급했듯이, 하나로 통일하는 비대한 범학문에 반대하고, ‘횡단적 사고’ ‘사선으로 보기’ ‘가로지름’ ‘조우가 건전한/온전한 융합이라고 대안을 제시한다. 이론도 흐름 속에 재검토하고 갱신하고 업데이트하는 자세를 요구한다. “이론도 거듭되는 장례식을 통해 진보한다(47).” 볼매 문장~.

 융합을 보는 정 작가의 시선은 미국 국가의 초기 다문화주의 멜팅 팟을 부정하고 샐러드 바를 제창하던 것과 겹친다. 샐러드 바 다음에 다른 것으로 넘어갔는데 생각이 안 난다. .융합은 모든 지식을 습득한 다음 녹여서 합하는 것이 아니다(50).” 본연의 맛과 색을 잃어선 안 된다는 개()성 추구가 핵이다. 이렇듯 이론은 실재나 실천과 연계될 때 살아있는 물고기로 활기를 띨 수 있다.

 

 공동체의 운명은 지도자와 구성원들의 선구안에 달려 있다. 타석의 선수가 매번 공을 판단하듯 스트라이크 존은 <앎과 삶의 범위>를 상징한다. 인생은 거창하지 않다. 일상이다. 지식은 일상의 매순간 필요한 수많은 양식 중 하나일 뿐이다. 학자도 다르지 않다. (49)

 

 위의 인용은 일 년째 누적된 걱정과 분노의 원인을 투영해 깊은 한숨이 절로 나온다. 전부를 장악하려는 무식하고도 용감한 대통령 내외를 보며 오늘도 무사히를 기도하는 국민의 심정은 애탄다. 내가 보기엔 어느 것 하나 잘하는 게 없고 잿밥에만 마음을 두는 불통과 엽기 행각 그 자체다. 그런데 언론과 대통령실은 윤비어천가를 읊조리며 윤체이탈을 거짓말로 덮고, 국가를 그들 것으로 착복하며 나눠 먹는 초법적인 겁탈을 벌인다.

 

 여기에 추임새를 넣는 나쁜 지식() 공동체는 말할 것도 없다. “지식인 범죄자는 매력적이다’. 이런 범죄에서 피해자는 소모품으로 다루어지고 범죄는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머리 좋은 이들의 게임이 된다>(52).” 유시민 작가의 지적대로 국민의 반 이상을 무시하고 저버리는 처사다. 누누이 말했듯이 기본이 안 된 정부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열린 마음, 지적 호기심, 인격은 개나 줘버린.

 ‘권력화된 무지는 사회적 약자의 고통을 드러내지 못(하게)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현실에 맞는 쓸 수 있는 이론을 만들면 된다면서, 지식은 미시에서 거시로, 아래에서 위로 만들어지는 새로운 몸을 재 구현하는 거라고 말한다. 저자의 핵심 논지는 자기 포지션 파악과 부분성 인정이다. “모든 지식은 특정 상황과 맥락에서만 의미가 있다... 지식은 <인식자의 위치>에 따라 다르게 구성된다... 융합은 우리가 그때그때 선택한위치에서 기존의 지식을 재조직화하는 공부법이다(56-57).” 그렇기에 창의적일 수밖에 없다.

 저자의 핵심 논지인 이처럼 자기 인식이 부분적partial이라는 진리, 즉 각자의 당파성partiality을 인정해야성찰적 지식의 성립이 가능하다. 거듭 강조하는 이유는 인생은 이런 작은 단위, 상황, 맥락의 연속(52)”인 까닭에 있다. 일상과 실재를 반영하지 않는 지식은 고여 썩은 물과 같다.

 

 인간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만 정의될 수 있는 존재다. 자신의 위치를 모르는 앎은 무의미하거나 대개는 <사회악>이다. 자신이 한 말의 의미를 모르는 인간이 여론을 주도하거나 지도자가 될 때 공동체는 위험해진다...

 <위치성>은 각자에게 놓인현실이면서 동시에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이동하는 정치적 과정의 산물이다... <역지사지>는 공감을 넘어서는 권력과 자원의 문제다. (59-61)

 

 그래서 유 작가가 이잼에게 한 부디 조리돌림과 수모를 견디라는 충고는 파급력이 크다. 상대가 무기 대등의 원칙을 깬 상태에서 가진 무기를 총동원해 싸워야 맞다며, 내부 총질러와 대선 패배의 해당행위자들의 몰염치와 궤변을 날린다. 불체포 권한을 동원할 수 있는데 뭔 개소리냐며(내 과장^^). 여의도 정치 타워에서 그만 내려와 들, 모르는 거 빼고 (미비하게) 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현장과 소통하면서 깨어나기를 바란다. 연말은 늠 늦응깨 /반사/

 ‘지적 양극화의 시대에 맞서 직업윤리가 우선 가치로 등극되어야 한다. 페이크 뉴스는 사람들을 쉽게 결집하고 또 분산시킨다. 정신 착란과 교란을 일삼는다. 그런 이유에서 우리가 찾는 정보는 이미 누군가 쳐놓은 그물 안에만 존재한다. 정치권과 포털 사이트는 이미 협력 관계를 맺고 있고, 자본의 <정보 통제>는 일상적인 현실(66)”임을 상기하고 맞서야 한다.

 이 점에 대해 저자는 종이신문 읽기를 통한 전체 맥락 파악과 안목과 선구안 회복을 제시한다. 대학 졸업반 시절, 영자신문 전면 훑기를 통해 익스팬드 마이 호라이즌을 실감했던 터라 공감한다. 인터넷 정보를 맹신하며 자기 생각은 없고 고집만 센 에코 챔버 충이 되지 않는 길이다.

 

 당연한 건데 사람은 책임질 줄 알고 또 남을 믿고 기댈 줄도 알아야 균형 잡힌 관계를 영위할 수 있다.. 마음이 아프면 몸이 아픈 신체화’somatization를 겪는 저자를 이해한다. 나도 경청 행위는 반응해야 한다부채감이 따른다.” “질병은 몸과 마음이 모두 편안하지 않은 상태dis/ease(77).” 왜냐하면 지식은 인식자의 <심리적 산물>”이기도 해서 앎은 대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인 이유에서다.

 정 작가는 내면 아이에 호응하지 않는다. 인간은 언어로 사유하고, 무의식도 사회 밖에 있지 않다며. 고로 무의식도 인격을 반영한다는 논지다. 에코 챔버(세뇌 공간)의 탄생 배후도 다 이유가 있다. “피아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다는 환상은 영토성(금 긋기 놀이)과 함께 피어나 <안보 이데올로기>의 전제가 되었다(72).” 이런 불안한 집단 심리를 정쟁으로 이용하며 화마를 부르는 정권은 나쁘다. 작동 원리는 다음과 같이 단순하다. “신자유주의 시대는 개인의 시대다. 이때 개인은 해방된 자아가 아니라 <고립된 상태, 주체적 종속> 상태다(74).” 애국한다는 병적 상태.

 저자는 인생에서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수용과 함께, 상대방의 장점과 자원을 알아내는데 주력하고 삶의 대처 능력을 함께 모색하는 대안 찾기와 몰아를 힘주어 주장한다. 상상력과 공감 능력을 토대로 한, 서로 이야기하기(‘상담相談)를 통한 치료talking cure와 굴뚝 청소chimney sweeping를 의미 있게 본다. 다만 지식은 불완전하고 단편적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therapistthe/rapist가 되는 일이 없도록 유의하라고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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