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라는 동굴(속 빛)
사실 소설 속에서조차 문학이 그녀를 구원했는지 하지 않았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적어도 그녀가 문학의 곁에서, 안에서, 그 바깥에서 조금은 안전했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저버리지 못한 많은 것들을 나는 소설이라는 세계 속에 잘 숨겨서 보관했고, 이미 세상에선 사라져버린 것들을 나는 소설 속 세계 안에서 살려냈다. 그 세계를 보면서 나는 자주 안전한 기분을 느낀다. (13~14)
자신을 숨기는 마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된 사람들에게만 입을 여는 태도, 생각해보면 선녀는 끝내 나무꾼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내면을 말하지 않았다. (27)
*쓴다는 비장
기이하게도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영화를 보는 나의 시선에 대해 말하다 보면 내가 약간의 비장미를 간직한 슬픈 인간이라고 느끼게 된다... 작가란 원래... 슬프고 우아하고 진지하며 분노하고 서슬 퍼런. (31)
*환승 생활인
나는 무수한 이름을 만들어냈고 환승을 거듭하며 적어도 그 안에서는 조금 더 자유롭고 편안하게 살 수 있었다. 나 자신이 많으면 많을수록 한 명이 비대해지지도 않았고, 그러다 보니 숨을 공간이 많아졌다. 당연히 숨 쉬기도 편안했던 거다. (49)
나는 비평에 큰 재능이 있지 않다. 잘 모르는 분야라 더 솔직했을 뿐이다. 아니, 솔직하기가 편했던 거다. 너무 소중하면 눈치 게임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비평의 영역에선 그럴 필요가 별로 없었던 거다. (57)
어느 날 내가 이 사람 덕분에 너무나 많은 걸 배웠다고 생각하니 굳이 내게 더는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걸 끌어안고 살아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레 비문학 영역의 시작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67)
한정현의 세계는 누군가 무한 리필이라도 해주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어떻게든 예술가의 삶을 막고 싶었던 주희가 정현이의 메이트가 되어 버린 걸까. (110)
*‘나 자신’이라는 전차
결국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최초이자 최후의 환승지는 자기 자신이다. 정말 좋은 사람이라는 기준은 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온전한 ‘나’가 남는 것이다. 오롯이 나로 환승하는 것이다... 진정 망함 전문가는 결코 망하지 않았다. 그냥 다양한 전문가가 되어 가는 중일뿐이었다. (69)
*가끔 비인간으로 환승
사실 인간의 생각보다 비인간들은 사랑에 대해 더 정확하고 무한하고 용기를 가지고 있다. (또치ya 75)
친구들과 함께일 때는 거의 나 자신 그대로였던 것 같다. 꾸미지도 준비하지도 마음을 먹지도 않았다. (82~83)
*포제션 라이프
그때의 나는 소설가들의 문장만으로도 내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언제나 약간은 장난식으로, “그때의 나는 소설 광기가 장난이 아니었지”하고 말하지만… 정말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런 시기를 가진 내가 굉장히 자랑스럽다. 그렇게 사로잡힐 수 있는 인생을 가진 내가 스스로 좋은 거다. 그리고 그것은 일정 부분 우정의 힘이었다. 무언가를 함께해주는 힘, 내가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그런 걸 전혀 개의치 않고 그저 내가 좋아하는 걸 같이해주고 들어주고 함께 걸어주는 절대적 감정. (87~88)
*소설 인코딩 디코딩
앞서도 말했지만 많은 것을 숨기며 드러내는 내 소설 속에서 그 말은 곧 “이것이 나의 모든 진심이자 진실이다”라는 선언이었다. 그건 내 삶의 자세이기도 하다. 자꾸만 자주 휘발되는 가치에 관한 것, 내가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지나가는 시간에 의해 가치 없음이 되어가는 것. 그리고 그것을 소설 속에서 지켜보고자 했던 나. 여전히 내 안에서 가치로 남겨져 있지만 타인들에 의해 무가치해지는 무언가에 대해 써보고자 했던 것이다. (98~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