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소설을 아직 못 만났다. 내달 젊은 작가의 단편소설들을 읽자고 제안한 탓일까 이 책을 지나칠 수 없었다. 음 미친 듯 읽어나가던 현대 한국소설이 미투 운동, 페미니즘 리부트 등 급물살을 타면서 뒤로 빠지게 되었다. 소설만 그런 게 아니었다. 쏟아지는 아이돌과 연예 뉴스도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렇게 마그마에서 손 떼고 지내다 케이팝을 들으며 깜짝 놀라고 말았다.
고백하자면 나는 아직 bts 멤버를 식별하지 못한다. 이잼 응원할 때는 구의원까지 싹 접수하더니 이렇게 선택적이다.
음악을 듣는데 있어서도 과거에는 가사에 꽂혔다면 지금은 춤과 무대 공간 활용과 팬과의 호흡이나 떼창 등도 살핀다. 나는 이제 겨우 좀 알겠는 감정을 이렇게 다채롭고 깊게 담아낸다고 경탄하니 누군가는 창작술이자 매니지먼트 패턴으로 단순화시켰다. 누구로부터 오는 것이든 그것을 소화해 흉내나 시늉 너머의 경지를 연출한다는 것은 눈속임과는 다르다. 그룹과는 또 다른 개별 활동과 세계도 알수록 경이롭다.
90년대 발라더 대거 등장과 노래방과 스트리트 리어카 뮤직 보급에 따른 전국민 가수 현상을 겪었고 그것은 그것대로 축복이었다. 그러나 현재 노랫말과 춤과 무대 장악력과 팬들과의 반응 살핌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을 것 같다. 성장해온 케이 컬처를 향해 마음이 들뜨고 동시에 숙연해진다.
이제 ‘환승 인간’을 이야기해볼까. 환승 연애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는 상황에서 환승 인간이 모그리대단한가 싶을 거다. 오히려 대세 따라 가나 꼬인 맘도 돋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말랑말랑해지고 싶어 ㄱㅈㅇ 여행 산문, ㅂㅇㅈ 생활 산문, ㅈㅇㅇ 문학 산문을 시도했는데 번번이 실패했다. 한국 정치에 관심을 가지면서 산발적인 개별 이야기를 들을 마음을 잃고 지낸다. 그래서 ‘환승 인간’도 읽을 거라는 기대 없이 시작했다.
읽는 내내 ㅎㅎㅎ 웃어 기분이 좋았고 좋은 사람이 된 듯해 좋았다. 웃음 코드가 맞았던 거다. 신세대? 작가들은 산문도 방정식이나 자기만의 코딩이 유행이라 하던가. 아무튼 철학적 에세이 소설에 끌리는 나로서는 한정현의 산문에 무장해제되고 말았다. 잘 모르는 영화 얘기도 문제될 거 없었다. 기본적으로 삶을 대하는, 전체와 개별을 균형있게 보는 자세가 예뻤다. 무식한 턱으로 말해요가 주디스 버틀러(‘몸의 수행’)에 대해 함부로 떠들었는데! 인생과 자아의 퍼포먼스를 자유롭게 시도한다는 점에서 에세이의 어원 시도를 완벽하게 감싸고도 남았다.
어쩌면 단순히 그루grow와 트랜스퍼transfer를 인생 편성의 기준점을 삼는 면이 좋았는지도 모른다. 남의 삶을 이분법적으로 재단하면 옳지 않다. 주의해야겠지만 진짜 자유와 성장과 자기 앎을 ‘환승’이라는 핵심어로 풀어내 곰팡이 피고 녹슨 다른 환승을 환기시킨다.
나는 이십대와 사십대 사이에 낀 세대에 관심이 많다. 잘 모르기도 하고 접할 통로가 별로 없기도 한데 기회가 된다면 알아보고 싶다. 우리들 엄마 세대와 우리들의 선택 반경과 삶의 축이 다르듯 중간지대인 허리를 (보)살필 생각이다. 특히 노동의 관점이 궁금하다. 세대별 재생산성이나 생산적 활동에 대한 접근과 이해가 분명히 다를 듯하다. 아니 내 최애 호기심은 경계인으로서의 새로운 시선과 목소리에 가닿고,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전환과 멀티 태세에 주목하고 있다.
핑계지만 라떼는 조용히 또는 크게 싸워야 겨우 가능한 선택지에서 이들은 풀려나 있는 듯하다. 여전히 숨쉬기가 퍽퍽하나 그들은 다르게 궁리하고 연결되며 삶을 실험 연구한다. 아무래도 창작자를 주로 접하다보니 연애와 결혼에 있어서도 이전과 다른 변화가 확 느껴진다. 예술이나 창작과 접점이 있는 창작자들의 생활 연합과 파트너 결성이 원활히 이루어지는 듯하다.
출산과 양육의 부담도 괄호에 넣거나 생략 처리하는 분위기다. 솔직히 이런 선택권이 있는 그들이 부럽다. 물론 이전 세대와 다르게 또 부딪히고 피로한 부분들이 있을 테지만 이전과 다른 자유로움을 보유한 것으로 보인다.
에세이집 읽기 정체 구간에서 나를 꺼내준 한정현의 견인이 고맙다. 만약 청춘 속에 있으면서 차분히 청춘을 말한다면 어떤 색상일지 한번씩 상상해봤던 색감이 표지 디자인에 그대로 적용됐다. 작가가 아닌 출판사에 감사해야 하는 건가^^. 연파랑과 연노랑과 흰색 바탕. 앞의 두 색상 얼굴은 빛과 그림자 같고.. 흰색은 채워지기를 기다리는 비워짐 같고 그 자체로 눈부시다. 그래서 눈이 시리다. (아 모래)
묻게 되는 것이다. 나는 청춘 속에 있으면서 청춘을 적절히 식혀 들이키기 좋은 온도로 다뤘던가 하는. 바보 같이 열정과 냉정으로 딱 구분된다고 보지 않았던가. 빠져 나와야 그때 감지되는 사무치는 푸른 시절이라 여기지 않았던가. 게으르고 향수적이고 현실 반영을 놓친 접근이었던 것 같다.
나는 물 들어올 때 노 젖고 생계를 위해 맹렬히 쓰는 젊은 작가들에게 에너지 분배와 비축을 말하고 싶다. 번아웃이 아닌 ‘환승 습성’을 잘 활용하여 긴장과 이완의 서클, 즉 진화적 통찰이 빌트인 장착되었으면 한다. 되감기는 시간을 멍하니 바라보니 열씨미 공부하고 일하느라 놓친 감상과 향유가 참 많(았)다.
선배 소설가들은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소설은 다른 장르와 달리 엉덩이의 힘이, 꾸준히 문열고 닫는 자영업자의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이다. 오지라퍼가 되었지만 이들이 갈 길을 나는 알지 못한다. 가보지 않았기에 무엇이 있을지 예단하면 어폐 민폐일 거다.
고정 경계를 횡단하며 수행할 그들의 무한 가능성과 잠정 능력을 따스하게 바라볼 생각이다. 내가 가보지 못한 길을 닦을 그들의 오늘이 좋은 기분과 함께 무사하길 기도한다. 지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유연하고 풍성하게 환승하며 자기 말이 없는 사람들을 대신해 그 곡절을 노래해주길 부탁한다.
이야기가 비장하게 흐르는데 비건임에도 친구가 해준 덜 익은 닭볶음을 맛나게 먹는 장면은 스틸컷으로 내 머리에 새겨졌다. ‘영자원’이 내 아지트였더라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이런 묘한 공상도 해보았다.
무엇보다 한 작가가 국(가)폭(력)과 소수자와 비인간 존재에 눈길과 손길을 둬 한없이 사랑스러웠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등의 피로 흐르며, 우정으로 갤럭시를 그리는 밤하늘의 대화는 비오는 날 퍼지는 커피향처럼 그윽하고 묘했다. 정현씨 인사 바이든 하면, 유어자이언트! 또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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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책 리뷰에 달았던 댓글들을(자칭 정치_끄적) 정리했다. 지움이 지겨워질 무렵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으악 정치 평론가인 줄…’ 놓쳤던 블로그 회원이 단 댓글도 뜻밖에 확인할 수 있었다. 특정 정당을 응원하는 내 일방성에 대한 정중한 문제제기였다. 그렇게 비칠 수 있겠다싶으면서도 끝말이 들러붙었다. ‘지금도 그리 생각하세요? 현 정부를 15개월 겪은 지금도 그들을 보수로 보나요?’
지진날 것 같은 머릿속을 지드래곤의 ‘개소리’로 평정하고 공사 구분 없이 추하게 구는 관종 병자들은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웁스’로 씻어냈다.
책 ‘환승 인간’을 읽는 동안 뷔의 솔로곡들V과 함께 했다. 두꺼워서 들었다 놨던 음악평론서를 대신해 음악인류학자 김영대의 강연을 ‘방탄소년단을 리뷰하다’를 포함 몇 개 청취했다. 케이팝 3세대에 속하는 방탄소년단이 케이팝 역사에서 진정성authentic있다는 평을 들은 첫 케이스라 한다. 외국산 힙합의 패션과 느낌이라 할 수 있는 블링블링이나 스웩이나 플렉스가 아닌 ‘진솔한’ 서사 전달자로서의 퍼포머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특히 가사나 리듬에 실린 본질적인 정체성 탐구에 주목한다. 김 평론가는 BTS의 고유성 혹은 대중성 혹은 세계성을 ① 주체성 ② 개인성 ③ 사회성 ④ 한국성이라는 대표어로 설명한다.
비전문가인 나는 다른 거 다 떠나서 여럿이 단체 생활하며 활동하는 것 자체로 기특하다. 같이 예의와 배려있게 행동하고, 각자의 중심 없이는 힘들 거라는 생각이다. 짙은 개성을 뒤에 두고 때가 올 때까지 기다린 인고도 존경스럽다. 나는 뉴진스와 같은 4세대는 아직 적응 못하겠다. 이지 리스닝에 따라하고 싶은 “보편적 세련미”를 가졌다는데 잘 모르겠고 블(랙)핑(크)이 좋다.
이외에도 신인 그룹의 발굴과 데뷔에 함께한 팬들도 달리 보인다. 지인이 팬아트 상품을 구입하고 응원할 때 속으로 ‘왜 저럴까’ 했던 거 반성한다. 이 흐름과 전개는 ‘환승 인간’ 내용과 무관하지 않다. 힌트는 팬픽에. 솔직히 이 장르도 ‘왜 저렇게까지’ 했었고 알아보지 못했다. 반성한다.
청춘 연화의 지평을 다시 쓴 기여를 평론가는 “청춘은 나이가 아니다”라고 정의한다. 노래가 자기혐오와 나르시시즘에 빠진 청(소)년들이 진짜 자기 사랑이 무언지 깨닫게 돕는다. 있는 그대로의 너를 품도록 말이다. 그리고 아미나 탄이들 팬덤fandom은 문화 대지진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신기루에 가까운 수평적 조직망을 이루며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활동한다.
이들은 확장성도 지닌다. 열정적, 헌신적인 지지 뿐 아니라 학구적인 지성체를 구현하기도 한다. 아티스트가 시달리는 편견과 부당함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고 옹호하는 온당한 대변자로서 서로 연결되어있다. 그 출발과 에너지 보존은 자신들이 구원받음과 누린 기쁨을 기반으로 한다. 새로운 관계 맺기와 문화 진화의 한 현장인 것이다. (8.24)
*팬덤을 정치와 연결해 긍정 효과를 말해보고 싶었다. 외면한 이유가 갑자기 날아들어 이 관심은 접는다.. ^^* ♪ 절대불신 19 소오강호 공갈범K군 납치사건 친구 소오강호 Hey Hey
덧>> 푸나 님이 이재명다움 얘기. 살펴 뭉친 맘 알흠다움. ‘이잼의 민주당’에 대한 질긴 테스트 이겨내보자G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