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 보면 비극인 것이 삶이다" 라는 말이 떠오른다. 단지 하나의 이야기로 '존재의 가벼움'을 만나면 각자의 삶에 주어진 시간이 끝난 후 무(無)가 되어 버리는 덧없음이 다소 희극적으로 느껴져 주인공들의 삶이 그저 흥미롭게 다가온다. 하지만 소설이라는 것은 언제나 우리에게 삶의 본질이 무엇이냐는 커다란 질문을 던지기에 책장을 덮고 생각에 빠져본다...
역사적 상황속에서 시대의 가치와 이념에 밀려 개인의 선택은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었고, 존중 받지 못한 선택으로 인해 조국을 버려야만 했던 쿤데라의 삶은 존재 하지만 동시에 존재하지 않을 수 있는 인간의 비극적인 고통을 말해주는 것만 같다. 매 순간이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삶에서, 선택이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다는 것, 그것만큼 존재를 위협 하는 것이 있을까?
얼마만큼 주어졌을 지 모를 한정된 시간 속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삶이란 살아가지만 동시에 죽음을 향해 가야만 하는 결코 가볍지 않은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한 인간의 존재를 가볍게 만드는 상황들, 개인의 판단과 고민이 무의미 해지고,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사고를 정지시켜 버리는 수많은 이념과 가치, 관념들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의 존재를 지킬 수 있는 걸까?
이상과 관념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개인의 의지만으로 주체적인 삶을 살아 가는 것이 정말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쿤데라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공산주의적 키치, 토마시의 손에 들렸던 '안나카레니나', 프란츠가 가졌던 고통의 표상...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이러한 관념의 독재를 우리는 스스로의 삶에서 인식 할 수 있을까?... 관념과 이상, 한 시대를 풍미하는 이데올로기적 가치들, 어쩌면 이들은 모두 수없이 찢겨져야 하는 것들임에도 우리는 의식의 공백속에 스스로의 자유를 제한 하는 수많은 관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것만 같다.
어쩌면 쿤데라가 말하고자 했던 '영원회귀(모든 것은 영원히 반복된다)'는 존재를 구성하는 습관이나 관념을 말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테레자를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였지만 여전히 이전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토마시, 토마시를 통해 다른 세계를 향해 나아가려고 하지만 동시에 끊임없는 추락욕구에 시달리는 테레자, 아버지와 예술, 프란츠, 자신이 속한 정지.사회적 속박까지 끊임없는 배신을 통해 삶을 이어가는 사비나를 보면서 삶을 구성하는 모순된 가치들 사이의 투쟁이 마치 하나의 수레바퀴처럼 끊임없이 굴러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인간 존재에 있어 양극단의 폭이 얼마나 좁은지,,p391/ 인간의 결심이란 얼마나 끔찍할 정도로 쉬운것인지p499...
테레자가 토마시를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면?, 토마시가 테레자의 삶에 완전히 녹아들 수 있었다면? 사비나가 프란츠에게 자신을 지켜달라는 말을 꺼낼 수 있었다면?. 이들의 삶은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자신이 선택한 삶이 실은 제한된 것만을 누리며 살아가도록 존재를 억압하고 있다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 진다. 존재의 가벼움... 그것은 실제적인 삶이 아닌 관념적인 삶에 머무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였을까? (토마시의 여성편력, 그것 또한 토마시가 삶에 대해 가지는 키치일 뿐이며, 테레자의 희생을 통해 찢겨진 것이라 생각한다, 안나카레리나 라는 입장권을 들고 토마시의 세계로 들어온 테레자 또한 현실속 토마시와 끊임없이 투쟁하며 존재의 가벼움에 저항한 것이다. 자신의 삶을 통해서...)
쿤데라의 이야기가 책장을 덮은 얼마간은 영원히 살아갈 수 없는 인간, 그래서 결코 가볍지 않은 삶을 살아가야 하는 존재에 대한 위로라고 생각했다. 한번 뿐인 비극적인 삶이기에 존재에 가벼움을 입혀 조금은 덜 고통스럽고, 덜 짓눌린채 살아갈 수 있도록 쿤데라가 독자들에게 주는 위로, 좀 더 포장해서 말하면 '삶에 대한 아름다운 거짓말' 이라는 거창한 결론 까지 내렸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비나와의 만남을 통해 헤라클레스의 빗자루를 얻은 프란츠 (p199) , 그로인해 그가 사랑하지 않는 모든 것을 자신의 삶으로 부터 쓸어 버리고, 스스로의 자유와 새로운 삶이 부여한 예기치 못한 행복, 편안함, 희열을 느꼈던 순간의 프란츠가 가슴에 다가오기 때문이다. 자신과는 전혀 다른 낯선것(사비나)과의 조우를 통해 자신을 옥죄던 것들을 버린 프란츠의 삶...(물론 그가 죽기직전 여전히 사비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주지만..)
이것 또한 정답일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쿤데라의 글을 읽은 나의 입장일 뿐이니까.. 결국 모든 가치는 개인의 삶에 있어 '좋고, 나쁨' 으로 판단할 수 있을 뿐이다.
존재(혹은 삶)란 무거운 것일 수도 있고, 가벼운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존재의 경중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보단 무거움과 가벼움 그것을 만들어 내는 상황과 관념들이 오히려 삶을 옭아매고 있는 것은 아닌지..끊임없이 생각해봐야 할것 같다.
삶의 영원회귀를 긍정할 수 있으려면, 존재의 가벼움 혹은 무거움 뒤에 가려져 오히려 삶을 부정하게 만드는 것들이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 문학 이야 말로 이런 과정을 놓지 않고 살아가게 해주는 힘이 될것 같다. 낯선 삶, 그속에 다양한 인물과 성격, 시대적 상황, 수만가지의 심연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다.
- 2018.9.19 책 읽는 엄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