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이야기
내게 결혼은 무엇 이었을까? 한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네 명의 아이를 낳아 살고 있지만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던 질문을 이제야 해본다. 내게 결혼은 환상 속 세계였다. 원가정을 벗어나고 싶었던 마음, 그간의 실패와 좌절을 뒤로 하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었던 마음,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싶었던 막연한 기대가 뒤섞여 결말은 해피엔딩 이어야 하는 상상 속 세상. 스물일곱의 나는 그렇게 결혼을 했다. 반복된 임신과 출산은 자발적인 내 선택 이었고 육체적으론 고된 날이 이어졌지만 난 웃으며 육아를 해냈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일이 생겼다. 밭으로 나오라는 시어머니의 호출. -나는 결혼 전 귀농을 해서 살고 싶다는 애인의 생각에 동의하여 배우자의 고향에 와서 살고 있다. 셋째가 어린이 집에 나간 지 일주일 쯤 지났을 때의 일이었다. 귀농을 택한 배우자의 생각에 동의 했지만 함께 농사를 지어야 한다면 내려갈 수 없다고 분명히 말했었다. 배우자도 동의했던 부분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내가 아들과 함께 농사를 짓기 바라셨다.
경제활동을 하는 배우자 대신 그동안 모든 육아와 살림은 내 몫 이었다. 불평하지 않았다. 말이 귀농이지 농사가 생계가 되면 사람의 품이 끊임없이 필요했다. 농한기란 말은 말로만 존재 했다. 4계절 내내 신랑은 바빴고 늘 지쳐 있었다. 그의 힘듦을 알기에 난 내 역할에 충실했고 여름이면 아기를 엎고 도시락을 싸줬다. 인부들이 오는 날이면 5~10명 이상이 되는 사람들의 참도 만들었다. 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했다. 그런데 셋째가 어린이 집에 가고 나니 난 그냥 노는 사람이 돼버렸다. 이곳 말로 ‘집안에 들어 앉아 있는 사람.’ 아기를 엎고 첫째와 둘째를 유아차에 태워 산책을 할 때면 지나가던 나를 붙잡고 애국자라며 보기드믄 훌륭한 며느리고 새댁이라고 칭하던 그들이 이제는 내 뒤통수에 대고 손가락질을 하는 것이다. 예상하지 못한 혐오를 나는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어머니가 말했다. 아침에 애들 보내고 나와서 잠깐, 점심 먹고 쉬다가 애들 오기 전에 잠깐, 그게 그렇게 힘든 일이냐고. 대답하지 않았다. ‘전 어머니처럼 살고 싶지 않아요.’ 라고 속으로만 말했다. 어머니와의 관계는 점점 더 불편해졌고, 어디를 가도 편하지 않았다. 난 집안에 들어 앉아 노는 사람이었으니까.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얼떨결에 넷째가 생기고 또 한 번 출산을 했지만 넷째가 어린이 집에 가고 나니 이전과 같은 일이 반복됐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을 내게 묻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때, <갱신제>가 시행 됐다면 난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이 결혼을 갱신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괴롭고 힘든 시간 이었다.
집 앞 슈퍼 할머니는 아직도 여름이면 지나가는 나를 붙들고 말한다. “애들 보내고 밭에 나가야지” 나는 말했다. “저 농사 안 지어요. 그건 신랑 일이에요.” 그 순간 할머니의 떡 벌어진 입. 그 입이 내가 사는 세상이다.
# 5년 후
올해로 결혼 11년차인 나는 배우자와 3번째 5년을 살고 있다. 그간 다툼도 있고 갈등도 있었지만 이혼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경제적 독립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혼은 상상조차 불가한 것 이니까. 아이를 키우며 공부도 하고 마흔 전 경제적 독립을 하겠다는 의지로 투쟁하듯 살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물론 내 개인의 능력이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준비조차 마음껏 할 수 있는 환경을 나는 가져보지 못했다.
배우자는 나를 지지해 주고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었지만 시간은 늘 부족 했고, 집안은 엉망이 되기 일쑤였다. 하교 한 아이들에게 저녁을 차려주고 도망치듯 독서실로 나갈 때면 죄책감과 불안감에 시달렸다. 엄마가 없는 집에서 아이들끼리 보낸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이들의 눈빛은 흔들렸고, 결국 예전과 다르게 집중력이 떨어지고 불안해 보인다는 담임선생님의 전화를 받아야 했다. 준비했던 시험은 떨어졌고 난 다시 엄마로 돌아와야만 했다.
내게 휴가를 쓸 수 있는 권리가 있다면 어디로든 달아나고 싶었다. 잠깐 이라도 집이 아닌 곳에서 아무런 걱정 없이 나를 편히 두고 싶었다. 하지만 난 그런 시간을 요구할 수도 가질 수도 없다. 내 빈자리를 채워줄 사람이 없었으니까.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고통으로 치부되는 나의 불안과 무력감 앞에 난 여전히 막막하기만 하다.
그런 내게 정여랑의 소설 <5년 후>는 정말이지 판타스틱 한 세상이다. 너무도 갖고 싶은, 상상만으로도 가슴을 설레게 하는 세상. 그 낯선 세상을 꿈꾸며 나는 잠시나마 웃어 본다. 엄마로 살면서 행복했던 시간과는 별개로 끊임없이 나를(혹은 우리를) 소외시켰던 세상을 향한 작가의 이야기는 자체로 너무 달콤했다.
출산과 육아를 결정하는 누구라도 그로인한 생활의 어려움이 없어야 한다는 기조는 얼마나 멋지단 말인가!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돌봄과 교육을 그들이 필요한 방식으로 지원하는 소설 속 나라가 이토록 멋지다고 느껴지는 건 생활 전반에 걸친 개개인의 선택과 결정이 ‘함께’ 라는 커다란 틀 안에서 또 다른 타인의 선택과 결정과도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 보다 돌봄이 여성이나 가족에게 맡겨진 사적인 것이 아니라 나라가 혹은 사회가 실천하는 공적인 자리로 옮겨 갔다는 것이 감격스럽다.
나라가 돌봄을 실천 할 때, 제도화된 책임 아래서 우리는 작가의 말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이 서로의 공공재가 되어 함께 애쓰며 서로를 보살필 수 있다는 것. 상상으로나마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자신이 선택한 삶을 충분히 누리며 ‘서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설계된 세상. 이렇게 안전하고 평등한 세상이라면 결혼과 출산을 선택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되진 않을 것이다.
물론 어떤 이유로든 서로를 견딜 수 없다면 갱신제가 이별할 권리를 보장하듯 현실에서도 안전하게 헤어짐을 선택할 수 있다면 좋겠다. 이혼이 실패로 치부되는 세상에서 결혼을 견디는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인간에 대한 환멸을 느낄 정도로 끔찍한 일이 가득하다. -부모를 견디는 아이들 혹은 자식을 견디는 부모들의 삶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 그랬다. 아무도 바닥까지 솔직히 말하지 않는 것이 자기 가족이라고. 때문에 여성학자 정희진의 말처럼 ‘어쨌든 가족은 유지되어야 한다.’는 낡은 담론은 이제 없어져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난 안전하게 헤어질 권리를 보장하는 결혼 <갱신제>에 적극 찬성하고 싶다. 이혼은 실패가 아니며, 더 분명하게는 실패가 되어서도 안 되는 일이니까.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김려령의 소설 <트렁크>에 나오는 말처럼 이 세상에서 당당히 ‘넌 이혼할 만해’라는 정당성을 획득 하려면 ‘지옥에서 굴러야’ 하는 것이다. 현실은 이토록 어둡다. 만약 안전하고 품위 있게 헤어질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면 미영이 ‘내 아기아빠’를 견디다 교도소에 갈 일도 없었을 텐데…….
‘좀 쉽게 갈수 없어?(p30)’라는 혜선을 향한 정욱의 말은 또 어떠한가. 쉽게? 대체 무엇을 향해 쉽게 가라는 것일까. 단편적인 일(사건)이 아닌 한사람의 삶 전체를 두고 쉽게 가라니 그 오만함은 어디서 나오는 건지... ‘좋은 게 좋은 거야’ 라는 전혀 좋지 않은 이 말과 똑 닮은 말을 하는 정욱에게 말하고 싶다. “너나 쉽게 쉽게 사세요.” 빌어먹을!
생각해보면 남편과의 갈등 대부분은 언제나 나라는 존재에 대한 무용성에서 출발했다. 경제활동을 하는 배우자 대신 홀로 육아를 전담하고 집안일을 하는 것이 억울해서가 아니었다. 대략 이만개의 기저귀를 갈고 일만 번의 밥상을 차린 나의 삶이 가정을 벗어나면 어디에서도 인 정 받을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엄마인 내게도 사회적 인정이 필요했다. 하지만 사회는 나의 돌봄을 인정해 주는 대신 수시로 내 삶을 후려친다. 베란다에 나가 하루 종일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로, 생각 없는 맘충으로, 남편의 벌이에 기생하는 무능력한 사람으로, 미래에 대한 계획 없이 자식의 성공에 기대려 하는 안일한 엄마로...세상은 엄마를 제 멋대로 해석하고 평가한다.
일상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같은 엄마지만 일하는 엄마들에게 나는 그들에 비할 바 못되는 사람이 되고, 늦게 시작한 공부는 나를 팔자 좋은 여자로 둔갑시키기도 한다. 개인의 맥락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얄팍한 시선에 나는 또 한 번 매를 맞는다. 11년을 엄마로 살아보니 알겠다. 세상은 ‘엄마’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작가 사월날씨가 그의 책 <결혼 고발>에서 했던 말처럼 파업할 수 없는 노동자를 사용자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결코 옳다고 말할 수 없는 세상이다. 그래서 난 5년 후를 말하는 작가의 상상에 동의한다. 더 이상 사적 영역에서 여성의 희생으로 이루어지는 돌봄이 아니라 책임을 공유하고 나눌 수 있는 규범과 제도 안에서 돌봄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승인이 이루어지진 세상. 다양한 관계 안에서 ‘서로 돌봄’을 실천하며 ‘함께 행복’ 할 수 있는 5년 후의 세상을 기대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작가의 말을 떠올려 본다,
“정상 이라는 건 책임질 이가 책임을 다하는 것을 말하는 거예요(...) 다음을 더 잘 살기 위한 책임을 지는 그 일이 바로 ‘정상’이에요.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자신과 사회에 책임을 다하며 정상으로 살아갈 수 있으리라 믿어요.”(p150~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