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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중위의 여자 (상)

[도서] 프랑스 중위의 여자 (상)

존 파울즈 저/김석희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그녀를 바라보는 것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결백한데도 세상으로부터 부당하게 배척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감정과 생각은 그가 그녀의 지독한 고독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던 요소였다. 여성들은 반쯤 집 안에 갇혀 있으면서, 늘 수줍고 조심스럽게 처신해야 하고, 또 육체 활동도 함부로 할 수 없었던 시대에, 그녀를 이 황량한 곳까지 데려올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그는 그것이 절망감일 거라고 짐작했다. ― 책 속에서

 

 

  1867년 영국 라임. 화석을 수집·연구하는 젊은 귀족 찰스는 아름답고 부유한 약혼녀 어니스티나와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바닷가를 산책하던 두 사람은 '프랑스 중위의 여자'라는 별명을 가진 사라와 만나게 됩니다. 무척 궁금증을 자아내는 이 별명은 사실 점잖은 체 하는 표현이고 보다 적나라하게 '프랑스 중위 놈과 놀아난 년'이라고들 부르죠.

 

여자가 주체적이고 독립적일 수 없다고 여겨졌던 빅토리아 시대에, 사라는 혼자서 외딴 숲으로 산책을 가거나 남자 앞에서 걸어가는 등 특이한 모습을 보입니다. 이런 사라에 대해서 주변 사람들은 프랑스 중위에게 버림받은 충격으로 미쳐버렸다는 평가를 내립니다. 하지만 찰스는 주변 사람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돕겠다고 나서고 결국에는 점점 그녀에게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비밀스러운 과거를 감춘 여자, 그녀를 도우려고 하는 남자, 그리고 서로를 만남으로 인해서 갑작스럽게 변해가는 운명… 다소 전형적인 로맨스처럼 보이지만 이 책이 전형적인 로맨스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전혀 전형적이지 않습니다.

 

카를 마르크스를 인용하면서 시작하는 이 책은 소설이라기보다 빅토리아 시대에 대한 연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계속해서 등장하는 수많은 인용과 주석은 물론이고, 중간에 불쑥 작가가 등장해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설명하기 때문이죠.

 

더욱 놀라운 건 이 책에는 2개의 결말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찰스의 상상까지 합쳐서 3개의 결말이라고 보는 경우도 있지만 책의 끄트머리에 나오는 건 2개이므로 2개의 결말이라고 하겠습니다) 대체 어떤 식으로 결말을 냈는지 궁금해서 상당히 두꺼운 책인데도 놓질 못하고 읽어버렸습니다. 사실 두께도 만만치 않고,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빅토리아 시대에 대한 묘사가 책을 읽기 힘들게 만들지도 몰라요. 하지만 다 읽고나면 내 자신은 2개의 결말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될 것이고, 다른 사람들은 어떤 결말을 선택했는지 궁금해질 겁니다.

 

『프랑스 중위의 여자』는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한 장르인 역사서술 메타픽션(historiographic metafiction)으로 분류되는데 무척 흥미로운 장르인 것 같습니다. 오르한 파묵,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움베르토 에코 역시 이 장르에 속하는 책을 여러 권 썼습니다. 작가가 소설 바깥에만 머물지 않고 안팎을 자유롭게 오가듯이 독자 역시 그러한 체험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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