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로키언들은 농담 삼아 '정전(canon)'이 어쩌구 하는 말을 자주 꺼낸다. '정전'은 경우에 따라 '경전'으로도 받아들여지는데, 본래 엄청난 다의어 속성인 영어에선 같은 단어를 갖고 맥락에 따라 이리도 쓰고 저리도 놓으니 화자의 재주만 있으면 엄청 웃긴 말장난이 가능하기도 하고, 천재적 시인을 만나면 천계 저편의 영감과 감동이 전해지기도 한다. 역시 오랜 역사를 지닌 프랑스어도 주관적으로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고, 객관적으로도 남이 넘볼 수 없는 빼어난 장점이 있긴 하지만, 뭔가 살롱 언어로 특화된 듯한 인위성, 국지성의 인상을 지우기 힘들고, 역시 단일 언어가 가진 고유의 힘은 이 앵글로색슨의 도구를 능가할 게 별로 없지 않나 싶다. 아,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이 '경전'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무서운 울림을 지니는지는 뭐 말도 못한다. 유일 진리라는 미명 하에 얼마나 많은 무고한 목숨이 죽어갔는지 모르며, '경전'이라는 음향 앞에서는 일체의 경전 아닌 것이 모우 그 앞에 죽어야 한다는 무서운 함의가 깔려 있다. 인류이 지성이 이만큼이나 깬 마당에 지금 돌이켜보면 그런 무지몽매의 허깨비장난 같은 삽질이 어디 있겠나 싶지만, 이 개명한 세상에도 병신의 맹신 귀신이 뒤집어씌어, 제놈이 추종하는 특정정치인(가만 보니 그런 것 같지도 않음. 불리하다 싶으면 바로 베드로가 제 스승을 부인하듯 창피해서 감추고드는 듯)이나 어디 가서 누구한테 인정받을까 싶은 제놈만의 광신 신조가 하늘에서 받은 절대 계시라도 되는 양 아무데나 처들이대며 폭주를 하는 미친 놈이 다 있으니, 인류의 진화건 문명 발전 계몽이건 scumbag 앞에선 아무 소용 없는 것 아닌가, 쓰레기는 그저 네안데르탈 방식으로 처리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만 들 뿐이다.
정전이니 뭐니 살벌한 종교쟁이같은 소릴 꺼내어도, 본래 홈즈 시리즈가 강한 위트와 진한 여유를 풍기는 고급 오락 장르임을 반영하듯, 그 추종자(?)들이 거론하는 정전 타령도 다 지레 찧고까부는 장난질에 불과할 뿐이다. 나는 몇 년 전 국제학회가 명왕성을 '행성' 반열에서 제외시켰다는 뉴스를 듣고 다소 황당해지기도 했지만('행성'이라는 인위적 편의적 개념이 과연 자연과학적 엄밀성을 유지하기 위해 그 정도의 노력이나마 들일 가치가 있는 류였을까? ) 사실 코난 도일의 홈즈시리즈야말로 논란의 여지도 없다 할 그 4+56권의 범위에 한정됨이 분명하며, 진지한 시비가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다. 정태원씨판 제 5권 처음에 나온 '마자린(마자랭)의 보석'역시, 그 후미에 달려 있는 역주처럼 정전성의 논란' 어쩌구가 결부되어 있긴 하나, 찬찬히 읽어 보면 금방 눈치챌 수 있듯 싱거운 장난질에 가깝다. 과거 헨리 8세의 Reformation 당시, 해외의 영국 선원들은 혹 바다에서 해난이라도 당하면, 우연히 지나가는 스페인 가톨릭 광신도라도 안 마주치기를 기도해야만 했다. 종교적 광신으로 가득찬 그 나라 선원들이, 마치 하늘을 대신한 천벌이라도 내리듯, 현재직면한 해난(법률용어이기도 함)보다 더 끔찍하고 비열한 해코지를 가하려 단단히 벼르고들 있었기 때문이다(바다출판사刊 김기협譯 '지식의원전' 해당 부분 참조.). 개인이건 집단이건 광신에 그 행동기제가 기초한 또라이는 결국 엄연한 현실에 지속적으로 눈을 감다 뒈지게 됨은 필연의 자연법칙 아닐까 싶다.
아, 근데 말이다, 만약 영상매체(전에도 한 번 이야기했지만, 가장 자주 영상화된 캐릭터가 셜록 홈즈라고도 하니), 그 숱하게 나온 홈즈물 중에, 뭔가 영상물의 正典 비슷한 게 있다면, 바로 이 제레미 브렛이 실감나게 구현한 그레나다 시리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여기 예스에도 '영화로 보는 고전' 등등해서 이름난 명작을 영화로 옮긴 것들을 기획상품으로 묶어 팔기도 하지만, 책을 창의적으로 각색한 류뿐 아니라 이처럼 축자적, 곧이곧대로 화면에 옮긴 솜씨도 은근 구경하는 재미가 큰 법이다. 누차 이야기했지만, 브렛의 어이없을 정도로 빼어난 연기(홈즈도 탁월한 분장술까지해서 불세출의 연기자였다고 하지만, 저 브렛의 하는 짓을 보면 무슨 '링'도 아니고, 바로 책 속에서 홈즈귀신이 튀어나왔다고 해도 그게 틀린 말일까? 나처럼 어려서부터 접해서 머리 속에 거의 평생 그 이미지를 돌리고 사는 축에게, 이런 칭찬을 받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웬만해선 까이게 되어 있음), 여담이 너무 길었는데, 내일 이어지는 포스트에서 이 편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을 진행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