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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아이

[도서] 다섯째 아이

도리스 레싱 저/정덕애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결혼하고 열 달 만에 첫 아이를 낳았다.

그 때 들었던 생각.

왜 어른들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길러야한다고만 말해주고 그것이 얼마나 힘든 건지는 알려주지 않았을까?’

아마 얘기해 줬을 지도 모른다. 내가 듣지 않았을 뿐. 하지만 내가 듣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말려야 했다. 집집마다 서넛씩 낳아 탈 없이 키우는 모습은 내게 결혼과 육아는 아무나 하는 만만한 일이라는 오해를 하게 했다.

주변에서 보면 나처럼 철없이 결혼하고 무모하게 아이를 낳는 사람이 드물지 않다.

 

그렇게 철없는 젊은이가 도리스 레싱의 작품에도 등장한다.

다섯째 아이의 주인공 데이비드와 해리엇.

보수적인 성향을 지닌 중산층 가정의 두 젊은이가 결혼한다. 그들은 60년대 대부분의 젊은이들과는 달리 아이를 여섯, 일곱쯤 낳아 기르고 친척들과도 어울리며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싶어 한다. 하지만 여러 아이를 낳아 키울 능력이 안 되는 그들은 양가부모의 도움을 받는다. 대가족에게 필요한 큰 집은 데이비드의 아버지 제임스의 경제력으로 장만하고, 가사와 육아는 해리엇의 어머니 도로시가 돕는다.

루크, 헬렌, 제인, . 아이가 늘어갈수록 집안일이 많아지고 생활비 부담도 커지지만 그들은 부모의 도움으로 가정을 유지하며 그것이 행복이라고 믿는다. 다섯째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는.

 

다섯째 아이, .

태어나기 전부터 엄마 해리엇을 힘들게 하더니 태어나자마자 난폭한 행동을 한다. 형제들을 힘으로 제압하고 반려동물들도 잔인하게 죽인다. 벤을 감당할 수 없는 가족들은 그를 요양소에 보내고 가정엔 평화가 찾아온다. 하지만 벤을 포기할 수 없는 해리엇은 그를 데려오고 가정은 다시 해체되기 시작한다.

친척들이 발길을 끊고 부부의 다른 자녀들도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일찍 집을 떠난다. 그리고 원망한다. 불행의 원인인 벤을 포기하지 못하는 해리엇을. 그렇게 세상과 어울리지 못하는 벤은 자라면서 계속 비행을 저지르고 그들의 집은 행복이 가득했던 보금자리에서 벤의 무리가 찾는 불량배 소굴이 되어간다.

 

해리엇 네가 틀렸어. 그 반대가 사실이거든. 사람들은 가족생활이 최고라고 세뇌를 당하는 거야.

(p.39)

 

난 너희들의 하인이야. 이 집에서 하인일은 내가 다 하고 있지또는 너희는 둘 다 정말 이기적이로구나. 너희들은 무책임한 사람들이야이런 말들이 감돌았지만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p.46)

 

당신 왜 이 집이 쓸모 있는 줄 알아? 사람들이 왜 오는지 아느냐구. 단지 자기들이 즐기려고 오는 거야, 그것뿐이야

(p.78)

 

그래서 집안은 옛날 같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긴장감과 경계심이 깃들였다. 해리엇은 벤이 자아내는 무시무시하고 불안한 호기심 때문에 사람들이 자기가 없을 때 그 애를 보려고 가끔씩 위층에 올라간다는 사실을 알았다.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길로 그녀는 그들이 벤을 보고 왔다는 것을 알았다. 마치 내가 죄인인 것처럼! 그녀는 분노했다. 그녀는 너무나 많은 시간을 마음을 끓이며 보냈지만 자신도 어쩔 수 없었다. 데이비드도 자신을 비난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그에게 말했다. ‘이게 바로 옛날 원시시대에 변종을 낳은 여자를 어떻게 취급했는지 보여주는 거야. 마치 그 여자만이 잘못한 것처럼. 하지만 우리는 문명시대에 살잖아!’

(p82)

 

다시 해리엇은 왜 자기가 항상 죄인 취급을 당해야 하는지 의아해했다. 벤이 태어난 이후 항상 그랬지, 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모두들 말없이 자신을 비난해 온 것이 사실인 것 같았다. 나는 불행을 겪었지 죄를 지은 것은 아니야. 그녀는 생각했다.

(p106)

 

남다른 아이하나 품어줄 수 없는 중산층 가정의 허상.

임신, 출산, 육아라는 인생을 건 엄청난 일들이 모성애로 포장되고 그 책임 또한 오롯이 어머니에게 지워지는 현실.

장성하여 결혼한 자녀를 수십 년이 지나도록 돌봐야하는 늙은 부모...

켜켜이 떠오르는 해결되지 않는 의문들이 마음을 어지럽힌다.

그 중에서도 유난히 아팠던 건 행복한 가정을 파괴했다고 비난받는 벤의 존재였다.

부부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다른 아이들과 너무도 다른 벤. 그 아이가 태어나자 부부의 행복했던 가정은 순식간에 붕괴된다.

 

만약 벤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들은 아무 문제없이 오래도록 바라던 행복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을까?

실상 그들의 가정은 출발부터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행복한 가정에 대한 환상만 있을 뿐 감당할 능력이 없는 부부는 처음부터 부모에게 의존한다. 그렇게 이루어진 행복이 자신의 것이라 믿으며 계획대로 아이를 낳아간다. 아이가 많은 그 집엔 휴가 때마다 일가친척이 찾아와 북적대고 젊은 부부는 그 북적임이 자신들이 이뤄낸 행복이라 믿는다.

미숙한 부부가 만드는 위태로운 행복은 벤의 존재가 아니더라도 언제든 무너질 수 있었다. 벤은 시작부터 균열된 가정의 붕괴를 가속화시킨 존재였을 뿐, 불행의 책임을 영문 모르고 태어난 아이에게 모두 지우는 건 불합리하다.

벤이 태어나기 전에도 도로시가 며칠만 돕지 않으면 아이들은 돌봄을 받지 못했고, 제임스의 지원 없이는 집도 생활비도 마련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부부는 결혼한 지 20년이 되도록 늙은 부모에게 기대어 행복을 누리고자 한다. 해리엇과 데이비드에게 벤이 영원한 숙제이듯 그들의 늙은 부모에게는 결혼 후에도 수십 년씩 자립하지 못하는 그들이 벤 같은 존재일수 있다.

 

길지 않은 분량의 책이라 금세 읽었지만 생각거리가 많아 완독의 성취감보다 어려운 숙제를 받았다는 부담이 크다.

레싱의 작품 세계는 페미니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인종 차별, 생명과학, 신비주의 등 20세기의 갖가지 정치, 사회, 문화, 종교, 사상 문제를 포괄한다.’는 책날개의 설명처럼 무겁지만 좋은 작품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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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cOgOOn

    아이를 키우는게 동네어른들이 다 같이 키운다는 옛말이 그냥 있는게 아닌 것 같아요. 가정의 붕괴를 벤에게 책임을 물리는건 아니었는지....리뷰를 보면서도 생각하게 만드네요..좋은 하루 되세요^^

    2022.12.02 09:00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오후기록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육아 르뽀같은 소설이예요.
      이 책 때문에 작가의 다른 작품도 더 보고 싶어졌어요.~
      cOcOgOOn 님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2022.12.02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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