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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도서]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이나다 도요시 저/황미숙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책의 뒷면에는 '이 책은 단지 콘텐츠에 관한 책이 아니다.'라고 쓰여있다. 읽다보면 정말 그렇다. 처음에는 영화나 드라마를 빨리 감고 건너 뛰며 보는, 겉으로 관찰되는 행위 자체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한다. 얼마나 자주, 왜 그 기능을 사용하는지. 그런데 이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들은 감상자이자 소비자인 대중들이 그런 기능을 애용하게끔 하는 어떠한 심리적인 이유까지 노출시킨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런 심리적인 이유, 구체적으로는 특정한 내적 욕구가 자리하게 된 사회적 문화적 차원의 구조적 특징까지 탐구해 들어간다. 이런 논지의 흐름이 인터뷰이들의 생생한 목소리, 저자의 친절한 비유, 인포그래픽 등의 효과에 힘입어 이해하기 쉽게 전달되는 점이 좋았다.

   제목만 봤을 때는 막연한 선입견이 있었다. 인터뷰이들의 반응에 대한 저자의 태도가 기본적으로 비판적으로 느껴져서 더욱 그랬다. 그래서 빨리감기와 건너뛰며 시청하는 사람들에게 반성을 촉구하려는 목적인건가? 하지만 감상자이자 소비자의 내적 욕구를 본격적으로 탐구해 들어가는 3장부터는 서술의 뉘앙스가 달라짐을 느꼈다. 여기서부터가 저자가 진짜 말하고 싶은 것들이 담겨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창작자이자 생산자인 이들의 입장에서 콘텐츠 시장의 전망을 모색하는 마지막 5장에서는 비로소 이러한 시청습관은 결코 비난할 수 없다는 것,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현재이자 미래라는 점을 강조하며 마무리한다. 여하튼 나도 빨리감기과 건너뛰는 습관에서 자유롭지 않은 소비자로서 영화를 빨리 보는 시청습관에 대한 태도를 균형적으로 다루어주어 좋았다.

  이 책을 읽으며 개인적으로 제일 인상깊었던 화두가 있었다. 이건 내 나름대로의 답을 내보려 애쓴 질문이기도 했다. 바로 영화는 감상의 대상인지 소비의 대상인지에 대한 물음이었다. 영화는 보통 '예술'로 정의되니까 '감상'해야 하는 대상으로서 빨리 감기는 부적절한 방법이라는 막연한 불쾌함이 있었는데, 책의 말미에서는 이 또한 문명의 진화를 증거하는 하나의 모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모든 게 빠르게 변화하고 무수한 정보가 쏟아지는 현대사회에서 단위시간 당 정보처리 능력은 향상됨을 보여주는 것. 빨리감고 건너뜀으로써 특정 능력이 퇴화됐다면 그만큼 다른 능력이 발달했다는 것이다. 나로서는 새로운 통찰이어서 매우 흥미로웠다!

   하지만 여전히 영화는 예술이라는 명제가 내포하는 어떤 불가침의 신성성...? 이랄까. 이러한 이유 때문에라도 나는 앞으로의 영화가 더 짧아지고 설명이 친절해진다 한들 빨리감고 건너뛰며 보기는 글렀다. 그렇다고 나와 달리 신속하게 영화를 소비하는 사람을 만난다한들 그런 시청습관에 대해 함부로 평가하거나 비판하고 싶지도 않다. 각자가 영화를 향유하는 구체적인 방식은 달라도 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이나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이상, 그 속에서 느끼는 애환(?)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만으로 묘하게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하루도 멀다 하고 빠르게 변하고, 그 속도에 보조를 맞추려 효율과 가성비를 좇고, 개성을 포기하지 못하는 걸 넘어 집착함으로써 주객이 전도되어 버리는... 이런 명백한 씁쓸함 말이다.

   이 책은 단순히 영화를 빨리감아 보는 것이 좋은지 나쁜지를 따져보자는 책이 아니다. 왜 빨리 감아 볼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논의를 다루는 책이다. 정말 책의 뒷면에 쓰인 대로 이건 단지 콘텐츠에 대해 다루는 책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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