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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생김은 이번 생에 과감히 포기한다

[도서] 잘생김은 이번 생에 과감히 포기한다

김태균 저

내용 평점 3점

구성 평점 3점

나는 원래 리뷰의 제목에 여러가지 추천 문구를 다는데, 이 책은 추천 문구를 무엇으로 달아야 할지 잘 모르겠다. 여러가지로 고민해 보았으나 결론이 나지 않아 그냥 간단히 에세이 추천이라고 적었다.
내가 그동안 흔히 접해온 에세이들은 대부분 일상 이야기, 소소한 행복, 인생이란 다 그런거지 정도의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그동안 읽은 에세이들과는 좀 다르다.
우선 "20대 암환자가 쓴 자전적 에세이"라는 점에서 분야가 달라진 기분이 든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접한건 지난 겨울 네이버 출간 전 미리보기 페이지를 통해서였다.
본인을 암 환자, 그것도 예후가 좋지 않은 20대의 혈액암 환자라고 소개하면서, 의사나 간호사에게 시시한 농담을 던지는 사람.
담배피고 있는 의사에게 암 걸린다고 이야기했더니 불길해 하더란 일화도 있고, 초음파 검사를 하는 간호사에게 '우리 아이는 몇 주나 되었나요'라고 농담을 던졌으나 받아주지 않아 상처받았다는 이야기 등등. 암환자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유쾌함이었다.
그래서 굉장히 인상깊고 충격적이었다. 이 책은 꼭 기다렸다가 도서관에서 빌리는게 아니라 사서 봐야지 라고 결심하게 만들었다.

책은 200페이지 남짓한 짧은 분량이지만, 챕터마다 몇 페이지 되지 않는 짧은 이야기이지만, 한 문장 한 문장 생각에 잠기고 여운에 빠지게 하는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p.21 사람들이 내 얼굴을 바라보면서 "아이고, 얼굴을 봐. 얼마나 고생을 했으면" 혹은 "누군지 알아보지도 못하겠네"따위의 말을 내뱉는 건 왠지 부아가 치민다....볼트모트도 이런 느낌이었을까. 그의 삐뚤어진 성격이 이해가 된다...나는 악당에게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볼트모트는 영국 소설 해리포터에 등장하는 악역이다. 얼굴이 뭉개지고 특히나 코가 없는 그의 모습을 많이들 접해봤으리라 생각한다. 저자는 코에 혈액암이 발병하여 코 뼈를 모두 긁어내고 수차례의 성형수술을 해야했다. 그런 그의 상황을 알고나서 이 문장을 멍한 머리로 여러번 읽어보았다. 과연 내가 그의 입장이었다면 어땠을까? 볼트모트가 이해가 가고 응원하게 된다는 유쾌한 말투.. 나는 도저히 그렇게 유쾌하게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저자가 07학번으로 대학교에 입학했었다고 했으니 나와 비슷한 또래일텐데 20대 초반에 암투병과 더불에 외모까지 잃고 나면 나는 과연 어떻게 대응했을까? 본래도 타인의 이목을 많이 신경쓰고, 남들과 다르게 튀는 것을 싫어하는 나는 굉장히 견디기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p.25 어차피 사람은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공감할 수는 없다... 징징이를 받아주는 세상은 없다. 그러니 입을 꾹 다물고 참는 수밖에.

결국 사람은 자기자신이 우선이고, 타인의 큰 아픔보다 내 작은 아픔이 더 크게 느껴진다는 말을 살면서 수도 없이 들었던 말이다. 그런데 이 문장을 읽고 내가 그동안 이 말을 글자만 이해했을 뿐 진짜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적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내 아픔은 내가 견디고 소화해내야지 타인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 어려운 상황에서 유쾌함을 잃지 않는 그의 문장은 어쩌면 이러한 깨달음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p. 27 매번 가리고 있으니까, 외면하고 있으니까 더욱 두려웠던 것이다. 아픔은 눈을 똑바로 뜨고 정면으로 냉철하게 마주 보면 생각보다 이겨내기 쉬워진다.

나는 평소 겁이 참 많은 사람이다. 생각이 많고 복잡한 편이라 일어날 수 있는 온갖 부정적 결과들을 모두 떠올리느라 시도하지 못하는 것들이 참 많다. 그런데 부정적 결과를 떠올리고 두려워하기 전에 우선 먼저 똑바로 마주하면 생각보다 쉽게 해낼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있다. 매번 행동해야지, 실천해야지 다짐하면서도 고민이 앞서 움직이지 않은 일이 많은데, 저자의 글을 읽고 다시 한번 우선 마주하고 도전해볼 것을 다짐하게 되었다.

p.103 인간은 태어나면서 양손 가득 금가루를 쥐고 태어난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손을 꽉 움켜쥐어서 손틈 사이로 세차게 빠져나가는 금가루들의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애쓰는 것 뿐이다.

나는 일반 서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때문에 오래전부터 유행하는 흙수저 논란에 동의해왔었다. 그런데 이 문장을 읽고 내가 양손 가득 쥐고 태어난 것들에 대해 새삼스레 떠올리게 되었다. 특출난 건 아니지만 불행하지도 않은 가족관계, 사지 멀쩡한 몸, 그래도 노력한 만큼의 결과는 가져다 주는 머리, 예민하고 소심하지만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 배려적인 성격. 내가 그동안 불평불만을 가져왔던 나의 평범함은 사실 내가 가지고 태어난 축복일지 모른다. 비교하는게 옳은 건 아니지만, 세상에는 분명히 나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에 비하면 나는 행복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욕심내기 전에 내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먼저 지킬 생각을 한다는 발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계속 잃는 것만 하는 인생을 먼저 깨달은 저자덕분에 나 또한 간접적으로나마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사실 리뷰에 복기한 문장 이외에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표시한 문장들이 굉장히 많다.
저자는 항암치료과정을 거치면서 써온 일기를 다듬어서 엮은 책일 뿐 거창한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하지만, 나는 책을 읽으면서 감동하기도 하고 반성하기도 하고, 저자의 생각에 놀라기도 하고, 그의 유쾌함에 같이 웃기도 하였다.
신기하게도 암이라는 무거운 소재가 담겨있는데 마냥 우울하지도 않고, 가볍기 그지없는 유쾌함도 아니다. 적당한 유쾌함을 두르고 있지만 본질은 놓치지 않는 매력이 있는 책이다.
저자가 힘든 길을 걸어오며 적은 글인만큼 여러가지 가치로 빛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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