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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도서]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안보윤,김인숙,신주희,김병운,지혜,강보라,김멜라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소란하다. 나는 소란한 것을 좋아하고 소란해지는 것을 싫어한다."

첫문장부터 매혹적이라니. 흔히 사람들은 첫 문장을 보면 안다고 말한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 그렇듯이.

아마 이 소설을 대하는첫 느낌은 내게 그만큼이나 강렬했다. '소란하다'는 말을 이렇게나 한참이나 곰곰거리게 하다니.

소설 속 '나'는 이미 소란한 곳에서는 아무도 '나'를 신경쓰지 않기 때문에 좋아한단다. 소란해지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바로 그 중심에 자신이 있기 때문이란다.

"그렇구나","그렇겠구나" ,"그럴 수 있겠구나" ......뒤집어도 말이 된다는 걸. 소란한 것을 기피하는게 당연하다 여긴게 오히려 이상할 수 있겠다. 살다보니 당연하게 어디있다고 말이다.

나 역시 소란해지는 중심에 자주 있다. 타고난 목청탓이다. 우렁차다. 게다가 직업적으로 훈련되어진 말투까지 더해져 귀에 쏙쏙 박히는 목소리다. 소란의 장본인처럼 보인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낭패만큼이나 덕을 본 일도 많았다.

하지만 소설 속 '나',동주의 소란은 달랐다. 학교폭력이다. 피해자인 '나'에게 가해자인 승규는 아무 때나 불쑥 동전을 허공에 던지며 물었다. "앞? 뒤?" "앞"대답과 동시에 승규가 '나'의 뺨을 후려치고 나면 주변은 극도로 소란해진단다.

하지만 뺨을 맞는 것이 특별히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다고 고백한다.그러면 무엇이 부끄러웠다는 건가. 자동 반사적으로 나오는 대답이, 관성이 죽도록 죽을만치 부끄럽단다.

이 부분이 쓰리게 오래 다가왔다. 나에게 승규는 없었지만 수직적 위계 속에 매몰되어 관성처럼 행동한 적이 어디 한둘이랴. 분란을 일으키는게 두려워서, 당장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서, 착한 척 위선을 떨거나, 지는게 이기는 거야라는 위용에 빠져서 등등 갖가지 이유로 비겁했다.
차이는 부끄러운줄 조차 의식하지 않은 적이 많았다는 것이다.

가해자 승규는 옥상에서 추락하여 죽는다. 그 걸로 승규와 '나'의 수직적 위계는 끝이 난다. 더이상 관성을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승규와 둘이 있었던 그날 옥상에서의 일. 그날의 진실을 묻는 물음이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나'는 진실보다 가혹한 상상, 현실보다 더한 혹독한 상상에서 도망치지도 못했다.

매순간 필사적이고 진심이었기에 더 힘들었을 '나'를, '미도파'찻집의 소란함 속에 숨을 수밖에 없었던 '나'를, 시야를 가리는 커다란 우산 속에 피해있어야하는 '나'를 본다.

바꿀 수도 없고 바뀌지도 않는 그날로 부터, 그 기억으로 부터, 기억을 상기시키는 여자로 부터, 무심히 던져지는 사람들의 말로부터 지켜주고싶다. 견고한 방패막이가 되어줄 커다란 우산이고싶다.

죽은자에 대한 애도가 아니다. 살아남은 자의, 살아남은 자를 위한 애도의 방식이다. 그 심리이다. 공식처럼 누구나 겪을 ,겪어내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접근이 새롭다. 섬세하다.

"사람이 잘못 알 수도 있는 거지. 그게 뭐 대수라고 "라는 말에 이어서
"그건 대수로운 일이다. 사람에 대한 말은 어떤 것이든 다 대수롭다."

소설 속 말처럼 작가는 말 한 마디 한 마디 의미를 놓치지 않는다. 대수로운 말을 놓쳐서는 안된다는 듯
조심스럽게 세밀히 파헤치는 시선엔 남은 자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따스함이 가득하다. 함께 죽을만치 부끄러움을 견뎌내고 지켜낸 듯한 마음이다. 한껏 진심이다.

안보윤의 '애도의 방식'. 대상수상작
역시는 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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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thkang1001

    ssh1080님! 이주의 우수 리뷰에 선정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행복, 불행, 진실, 죽은 자에 대한 애도 등을 소개한 유용한 내용의 책을 소개해 주신 데 대해서 깊이 감사 드립니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책을 많이 소개해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23.09.13 18:44 댓글쓰기
  • 아톰

    이효석 작가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효석문학상 수상작에도 자연스레 관심이 갑니다. 리뷰해주신 대상수상작은 그 제목부터 흥미가 생기고 전체 줄거리도 궁금해지네요. 우수리뷰 축하드립니다!

    2023.09.13 21:39 댓글쓰기
  • 자연주희

    정말 첫 문장이 오래 머물게 합니다. 저는 지금 리뷰 쓰기를 배우는 초보 리뷰어입니다. ssh1080님의 리뷰는 참 간단명료하다는 느낌을 줍니다만 내용이 또 참 풍부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잘 읽고 이렇게 부끄러운 발자취 남기고 갑니다. 이번 우수리뷰로 선정되심을 축하드립니다.

    2023.09.13 22:09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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