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구체적인 형상도 없는, 엄마의 할머니로만 존재했던 사람이 할머니의 이야기 속에서 빠져나와 금방이라도 내 앞에 나타날 것처럼 생생하게 다가왔다. 나의 증조할머니, 이정선(본문 중)
세대 갈등의 완화, 화해, 그리고 연합
『쇼코의 미소』때도 느꼈지만, 저자는 감정의 모순을 기가 막히게 끄집어내 눈앞에 펼쳐놓는다. 그리고 여러 모순된 감정에 당혹스러웠던 순간들 앞에 서있는 나를 위로하며 '괜찮다고, 그럴 수도 있다'며 어깨를 토닥여주는 것 같다.
소설 속 시간은 지연(나)으로 시작해 위로, 아래로, 평행으로 흐르며 100년의 시간을 메워나간다. 손에 닿지 않아 그저 멀게만 느껴졌던 별처럼 존재했던 엄마, 외할머니, 증조할머니, 고조할머니의 인생이 지연의 할머니 영옥의 기억이 망원경이 되어 한 개인, 한 여성의 삶으로 생생하게 다가온다.
그녀들의 삶은 세상의 편견에 금이가고 여성에게는 더욱 폭력적인 시대 역사 속에서 부서져 상처투성이었다. 안타깝게도 상처를 품은 그녀들의 분노는 세상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에게 향해 있었다. 삶에 있어 선택이 아닌 수용을 했던 자신에게, 혹 최선의 선택으로 인한 상처를 딸에게 유산으로 남겨줘야 했던 자신에게. . 그렇게 상처가 상처를 내고 엄마와 딸은 슬픔을 공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의 밤이 밝은 까닭은 그녀들의 상처가 이어져있기 때문이다. 엄마와 딸 사이에는 상처가 회복의 대상이 아닌, 연결고리가 된다.
이 소설이 좋았던 이유는 이야기의 끝이 여성들의 아픔이 아닌, 세대 간의 갈등과 화해, 연대로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서로의 슬픔(어두움)을 직시하고 품을 때 세대간의 갈등은 해소되고, 화해와 연대가 이루어진다는 메시지는 나와 엄마의 미래도 밝은 밤으로 초대하는 것 같았다.
엄마와 나의 『밝은 밤』을 꿈꾸며
대학교를 마치고 타이완으로 유학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아빠는 격하게 반대하셨다. 딸은 집 밖으로 돌면 안 된다는 말부터 시작해 잠잠히 직장 생활하다가 시집가서 애 낳고 사는 게 순리라며 분수에 맞게 살라고 조언 아닌 조언을 하셨다. 그러나 엄마는 달랐다. 엄마는 내가 자신의 삶을 닮을까 두려워하셨고, 절대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며 하고 싶은 공부 원하는 만큼 하고 돌아오라고 하셨다. 그러나 나의 공부는 예상보다 길어졌고 나는 결혼과 학업을 두고 엄마와의 갈등을 피할 수 없었다. 엄마는 여성의 결혼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난 엄마의 뜻을 꺾었지만 사실 화해를 이루지 못했고, 지나친 예의의 말투로 고의적 거리를 두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자꾸 엄마의 인생과 마음이 보인다. 엄마가 되기 위해 포기했던 꿈과 후회를 품고 살았던 엄마는 나의 행보에 불안한 기시감을 느꼈을 것이다. 새비 아주머니가 딸 희자를 멀리멀리 보내려는 마음이 꼭 우리 엄마 마음이었겠다 생각하니, 서먹하게 보냈던 5년의 세월이 참 마음 아프다... 이 책을 엄마와 나누고 싶다. 함께 밝은 밤을 꿈꿔보자고. .
여담
나의 엄마가 되기 전 외할머니의 딸이었고, 증조할머니의 손녀였던 엄마의 시간이 내 안에서 흐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