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그녀들의 이야기의 속의 운동장에 서있다.
저자의 글이 쉽지 않다는 건 <채식주의자>, <흰> 등을 통해 알고 있었기에 이번 소설에서도 완벽한 스토리 이해를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한강 작가의 글을 좋아한다. 스토리가 아닌 이 책을 읽을 때의 내 기억과 감정이 그 공백을 메우기 때문이다.
맥락에 너무 매여있다보니, 예상치 못한 플롯의 전개에 당혹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탈선은 나를 그려낸다. 아, 내가 이런 생각의 구조를 가진 사람이었구나. . 그리고 그 불편함은 바로 내가 한강 작가의 글을 읽는 이유다.
나에게 제주는 슬픈 섬이었다.
전공이 역사학과라 나의 첫 제주의 이미지는 산속의 구덩이었다. 그 대학살 흔적의 구덩이는 공포와 잔혹 그리고 화려한 제주의 이미지 아래 그늘이었다.
그 구덩이 안에는 많은 이야기가 잠들어있고, 그 구덩이의 이야기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도 기억하고 있다. 나는 일부러 그런 이야기들을 찾아 읽는다. 그들 개인의 이야기는 죽지 않는다.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죽은 듯 죽지 않고, 살아있는 듯 또 죽어있다. 육이 죽는 다고 작별일까? 육이 죽어도 혼은 남고, 혼이 사라져도 기억이 남는다.
우리는 작별하지 않는다
나는 아직도 그녀들의 눈 밭 위에 서있다.
"오후 내내 국민학교 운동장을 헤매 다녔대.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와 여덟 살 여동생 시신을 찾으려고. 여기저기 포개지고 쓰러진 사람들을 확인하는데, 간밤부터 내린 눈이 얼굴마다 얇게 덮여서 얼어 있었대. 눈 때문에 얼굴을 알아볼 수 없으니까, 이모가 차마 맨손으론 못하고 손수건으로 일일이 눈송이를 닦아내 확인을 했대. 내가 닦을 테니까 너는 잘 봐, 라고 이모가 말했다고 했어.(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