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자 조성진. 그 덕분에 클래식에 관심을 갖게 되고 음반을 구입하기에 이르렀으니, 클래식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고 관심도 별로 없던 저로서는 조성진에게 감사한 마음입니다. 오래 전 우연한 기회에 소프라노 김혜경의 독창회를 다녀온 후, 잠시 멈춤이었던 클래식 세계가 제게 다시 펼쳐졌지요.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조성진의 피아노 소리가 작게 들려서, 음량을 많이 키워 들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보통 8로 듣는 음악을 10 정도로 키워야 했다는 점만 빼고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음반입니다.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 E단조’
아침에 눈을 뜨는 숲 속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집니다. 도란도란 속삭이는 듯 하다가 열정적으로 합창하는 자연의 소리가 들립니다. 아침을 알리는 나팔소리 같기도 하고, 자연이 깨어나는 소리 같기도 합니다. 경쾌하고 맑고 몽글몽글한 느낌. 정갈한 분위기와 여운을 주면서 수학처럼 딱 떨어지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 무채색의 자연에 다채로운 빛깔로 생명을 불어넣는 듯 합니다.
낮은 음성으로 조용히 속삭이며 깃털처럼 부드럽게 어루만져 줍니다. 푸른 하늘에 머무는 뭉게 구름, 높게 나는 잠자리가 보이는 듯 합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갑니다. 장난기 가득한 아이들의 목소리와 시원한 웃음소리가 들립니다. 밝고 영롱함, 열정을 품은 순수 그리고 강한 추진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빛깔로 수놓는 그의 연주를 듣노라면, 재주가 많은 이가 자신의 솜씨를 마음껏 뽐내는 느낌을 받습니다. 평범하게 보이고 싶은, 특별한 이의 속삭임 같기도 하고요.
쇼팽의 ‘네 개의 발라드’
어울리지 않는 듯 하면서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네 개의 발라드.
찬란한 추억을 안고 있는, 지혜로운 이의 눈물. 그의 미소 속에 비쳐지는 슬픈 날들이 보입니다. 그 안에 빠져들지 않고 모두를 이겨낸 모습. 시련과 고난을 이겨낸 정신적 성숙이 느껴집니다. 내성적이고 섬세한 버전으로 베토벤의 ‘운명’을 듣는 기분입니다.
고요와 폭풍의 반복. 천둥과 번개를 압도하는 고요. ‘모든 것은 순리대로 돌아가니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둬야 하리.’라고 이야기 하는 듯 합니다. 감정을 절제하는 내면과 행동을 통제하는 이의 모습이 보입니다. ‘단단하고 강함을 이겨내는 것은 부드러움’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하나의 소리가 모여 멋진 음악을 만들듯이, 인생의 경험 하나 하나가 빛나는 나를 만든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성 떨어지듯 빠르게 움직이는 조성진의 손놀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것이 느껴집니다.
11월에 조성진의 새 음반이 나오고, 내년 1월 서울을 비롯한 전국 4개 도시에서 투어 공연을 연다고 합니다. 1월 7일 부산을 시작으로 10~11일 서울, 13일 전주, 14일 대전에서요. 투어 공연 1부에서는 베토벤 소나타 8번과 30번을, 2부에서는 드뷔시 '영상' 2집과 쇼팽 피아노 소나타 3번을 선보인다고 하니 기대가 됩니다.
‘대한민국 클래식의 위상을 높인 동시에 여러 화제를 일으킨 문화 대표 아이콘’이자 ‘클래식의 아이돌’로 불리는 조성진을 통해, 많은 분들이 저처럼 클래식에 관심을 가지고 클래식을 즐기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