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당과 지옥의 갈림길에서 신이 묻는다.(저는 천당과 지옥이라는 기독교적 믿음을 신뢰하지 않습니다만) "사는 동안에 네 꿈은 무엇이었나?" "전 꿈이 없었습니다.. 그저 삶이 이끄는대로 걸어갔을 뿐..." "내가 너를 세상으로 보낸 이유는,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땀흘리다 오라는 것이었다. 꿈꾸지 않은 죄!! 너는 지옥으로 가서 참회하거라!!"
김규항의 책을 읽으면 내내 마음이 불편한 이유는, 그가 저의 아픈 구석을 콕콕 찌르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살아가는 동안 더 나은 세상을 꿈꾸지 않느냐~는 질책이 마음에 닿기 때문이기도 하며, 저로서는 감히 따라하기 힘든 삶의 내공에 대한 부러움 때문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의 책을 읽으면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함을 느끼기도 하는 것은, 이미 신이 되어버린 '자본' 앞에 모두 바싹 엎드려 경배를 드리고 있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너는 가짜이고 당신들은 바보다!'라고 진실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독재의 시절에는 그 모진 억압 속에서도 모두가 민주주의를 열망하며 서로의 손을 잡고 연대하는 시대였다면, 지금은 모두가 새로운 권력자 '자본' 앞으로 서로를 밀치며 선착순으로 달려가는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 이외의 모든 사람들은 경쟁자일 뿐, 어느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되며 누가 쓰러졌다고 일으켜주다가는 경쟁에서 저만치 밀려나고 패배자가 되어 버리는 시대 말입니다. '돈'이 아니고서는 도무지 세상의 가치를 재지 못하고, 역으로 세상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해 내는 시대입니다. 너무 견고하여 그 어떤 것으로도 깨뜨릴 수 없을 것만 같습니다. 보이지 않는 그 무엇으로 인해 숨이 턱~턱 막힙니다.
과거 독재의 시대엔 야만스러움이나 비열함, 비인간적인 것들이 모두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냈기에 우리가 분노하고 싸우는 일이 오히려 쉬웠습니다. 하지만, 자본의 시대엔 그 모든 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게 우리를 옭아매고 있어서 싸움이 되지 않습니다. 아니, 대상이 없으니 싸울 수조차 없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어렴풋이나마 그 보이지 않는 실체를 실감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싸우면 되겠구나~하는 자신감이 생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본의 힘은 제가 그런 걸 느끼는 순간 바로 저를 덥쳐서 싸울 힘을 빼놓습니다. 자본주의가 달리 자본주의가 아닙니다. 이미 제 몸이.. 제 영혼이 자본에 꼼짝없이 잡혀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처지라는 걸 새삼 깨닫습니다.
그냥 자본이 이끄는 길을 따라서 불편한 마음을 이끌고 가야 하는 것인지, 몸부림이라도 치며 그 길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를 써야 하는 것인지.. 답은 주어져 있고, '실천'만을 요구할 뿐입니다.
내 양심이나마 간수하며 인간답게 살려고 애쓰기는 하지만 여전히 내 가진 걸 놓지 못하는 우파의 삶이 지금 내 삶이라면, 적어도 내 삶의 기준을 나보다 낮은 곳에다 두고 다른 사람의 양심마저도 지키려고 노력하는 좌파적 삶은... 어쩌면 포기할 수 없는 '꿈'과도 같은 것입니다.
자신을 B급 좌파라고 규정짓는 저자의 말에.. 그래도 그게 어디요~ 라고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저에겐 아직 그 삶이 포기할 수 없는 '꿈'입니다.
제 꿈이기도 합니다만, 자본주의를 무너뜨릴 수 있는 길은, 모든 사람들이 '노동'을 멈추어 버리는 그 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혹은 내 마음에서 '자본'을 영원히 추방하는 그 날이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