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에게 겨울은 가장 잔인한 계절이다.
거리에는 새롭게 시작하는 노점상의 숫자가 하나 둘 늘어가고 있다.
차에서 내려 붕어빵 오천 원어치를 샀다.
아내는 내가 산 붕어빵에 질색할 것이 틀림없을 터이지만, 손님 한 명 없는 노점에서 추위에 잔뜩 몸을 옹송그리는 아주머니를 그냥 지나칠 수만은 없었다.
붕어빵 한 봉지를 받아들자 대학시절 리어카 행상을 할 때의 일이 문득 떠올랐다.
새벽에 열리는 사당동의 도매시장에서 과일을 떼면 리어카에 보기 좋게 진열을 한다.
과일마다 특색이 있어, 자두나 참외는 리어카 위에 풍성하게 보이도록 쌓아놓지만, 복숭아는 그리하면 여름 한낮의 열기에 더하여 금방 짓무르기 쉽상이었다.
그러므로 복숭아는 위치를 잡아 서로 닿지 않도록 나란히 진열하곤 했다.
그리고 행상을 하는 사람들에게 불문율처럼 전해지는 것은 장사를 처음 시작했거나, 초보자는 수박을 절대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베테랑 도매상인들은 빨갛게 잘 익은 수박을 능수능란하게 골라내지만, 그들의 말에 의지하여 수박을 떼는 날에는 여지없이 사기를 당했다.
더구나 그들의 눈에 띈 어수룩한 초보자는 좋은 먹잇감이 되곤했다.
그날도 나는 자두와 복숭아를 리어카에 진열하고, 정해진 코스를 따라 리어카를 끌었다.
직장인들이 출근을 마친 오전에는 동네의 골목을 누비며 확성기로 사람들을 불러 모아야만 그나마 뜸한 오전 장사에 마수걸이라도 할 수 있었다.
사당동과 방배동을 넘나들면 오전이 다 지나간다.
한낮의 찌는듯한 열기가 사람 그림자마저 쫓을 시간이면 리어카를 남현동 초입의 버스 정류장에 갖다 대었다. 과일 리어카 위에 파라솔을 치고는 조막만한 그늘에 앉아 책을 읽었다. 그 시각에 가끔씩 지나는 행인들은 말 섞는 것조차 힘겨워 할 정도이니 장사는 애저녁에 글른 일이었다. 괜한 헛수고를 할 필요는 없었기에 점심 요기도 할 겸 자리를 잡는 것이었다.
그날도 점심을 먹고 나른해진 다리를 쉬고 있는데, 초라한 행색의 남자가 나의 리어카로 다가왔다. 과일을 사러 온 사람은 아닌 듯하지만 그렇다고 일어서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내게 다가와 자신이 처한 입장을 설명하며 하소연을 했다.
시골에서 상경한 지 겨우 일주일이 되었다는 것과 월세방을 얻고, 조금 남은 돈으로 과일 리어카와 밑천을삼았는데 그날 아침 조금 더 많은 이익을 남길 욕심에 수박을 떼었다 했다. 첫손님에게 수박을 열어 확인시키는데 속이 하얗더란다. 이상하다 싶어 여러 개를 따보았지만 익은 것이라곤 찾을 수 없어 결국 장사를 포기하고 말았다고 했다. 자신이 장사를 못하면 이제 남은 밑천도 없지만, 집에 있는 처자식이 모두 굶게 생겼다며 울먹였다.
사정을 들은 나로서도 달리 방도가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나는 그에게 오늘만 같이 장사를 해서 남는 돈을 모두 가져가라고 제의했다.
나의 제안이 맘에 들었던지 그는 연신 고개를 숙여 고마워했다.
어스름이 질 무렵에는 유동인구가 많은 사당동의 버스 정류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밤이 늦도록 그곳에서 장사를 했다. 그때까지 팔지 못한 과일은 근처의 시장에 가서 떨이식으로 마지막 남은 것을 처분했다.
자정 무렵에야 장사를 마치고 나는 그날 장사를 하여 남은 이익금을 모두 그에게 주었다.
그렇게 알게 된 그는 빵으로 점심을 떼우는 내가 안스러워 보였는지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나눠주기도 하고, 자신이 팔던 참외를 깎아 먹어보라 건네기도 했었다.
여름방학이 끝나며 장사를 그만둔 나는 사당동을 지나칠 때마다 혹시 그가 보이지 않을까 해서 두리번거리곤 했었다.
그후 그를 우연히 만난 것은 두어 번이 고작이었다.
만남이 없었던 탓에 그와의 인연은 그렇게 끝이 났지만, 간혹 리어카 행상을 하는 사람을 만날 때면 나도 모르게 눈길이 머문다.
오늘 밤 붕어빵은 오롯이 내차지가 되겠지만, 아내의 잔소리가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