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이야기를 하면 남자들은 입에 거품을 물며 무용담을 쏟아내겠지만, 여자들은 귀를 막을 것이다.
혹시, 여자분이 이 글을 읽게 된다면 양해를 바란다.
나는 서울에서 전철을 타면 삼십 분만에 닿을 수 있는 안양의 한 공병부대에서 군복무를 했다. 공병은 건설과 관련된 부대이므로 부대내 시설은 타부대에 비하여 매우 좋은 편이나, 병영생활은 그리 편하지만은 않은 곳이다.
당시 부대내에 야구연습장(동전을 나오면 자동으로 공이 나오는)과 당구장이 있었고,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었으니 부대내에서 사제전화(일반인과의 통화-군대용어)를 쓰기 어려웠던 병사들을 위하여 공중전화도 설치되었었다.
뿐만 아니라 내무반에는 페치카가 아닌 스팀보일러로 난방을 했었다.
그래서인지 휴가기간에 타부대의 친구들을 만나면 나를 몹시 부러워했던 것도 사실이다. 아무튼 나는 그 부대에서 공병과는 무관한 대대 군수과의 행정병으로 근무를 했었던 관계로 '삽'보다는 '타자기'와 보낸 시간이 많았다.
내무반의 선임병들 대부분도 부서는 다르지만 같은 행정병이었으니 알게 모르게 누리는 혜택도 종종 있었다.
아마 내가 상병을 달았을 즈음으로 기억하는데 같은 내무반의 후임병이 첫휴가를 다녀온 직후였다. 그 후임병은 매주 일요일이면 어김 없이 애인이 면회를 와서 애인이 없던 선임병들의 부러움과 질투를 한몸에 받았었다. 그러던 그가 첫휴가를 마치고 부대에 복귀한 후로 며칠째 식사도 거르고, 통 말도 하지 않고 있으니 같은 내무반원의 걱정과 의아함이 쌓여만 갔다. 급기야 업무중에 쓰러져 의무대 신세를 지게 되었을 때에 이르러서는 모두들 대책을 세우기에 분분했다.
나도 그들과 다르지 않았고, 시간을 내어 의무대를 찾았다.
그의 고민을 물은 즉 애인과 헤어졌단다. 밥을 먹고 싶은 생각도 없고 애인의 얼굴만 아른거린다며 하소연을 했다. 그날 저녁 나는 다시 의무대를 찾아 그에게 그 여자와 만나 사귀게 된 일들을 낱낱이 들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그간의 추억을 더듬어 가며 밤이 늦도록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다음날 나는 업무를 마치고, 취침 점호까지 끝난 후에 빈 사무실을 다시 찾았다.
사무실에서 그가 들려준 이야기를 바탕으로 단편소설 아닌 단편소설을 급조(?)했다. 대부분은 사실대로 쓰고자 노력했으나 마지막 부분은 나름대로 멋을 부려, 더 큰 사랑을 위해 지금 잠시 이별 연습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결말을 맺었다.(제목을 '이별 연습'으로 했었는데 제대 후 그 제목은 노래로 불려지는 것을 얼핏 들었었다. 물론 나와 그 가수는 아무런 관련도 없었지만)
타이핑을 마쳤을 때에는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고, 그날 하루종일 병든 닭처럼 꾸벅거렸다. 당연히 글쓴이는 후임병의 이름으로 했다. 그렇게 급조된 글을 봉투에 넣어 그의 여자친구에게 보냈고, 그 다음주 일요일에 그의 여자친구는 환한 얼굴로 면회를 왔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제대하는 선임병의 부탁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단편소설 형식을 빌어 끄적거린 경험이 더러 있었다. 제대 후에 어떤 선임병은 그때 내게 받은 단편을 학보에 실어 상을 받았다며 놀러 오면 술을 사겠다던 사람도 있었다.
내가 제대할 때까지 그 후임병의 애인은 매주 면회를 거르지 않았었는데, 아쉽게도 그와의 인연은 나의 제대와 더불어 끝이 났다. 잘 살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