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면이 있는 성당의 사무장을 만났었다.
그의 어릴 적 이야기를 들으며 느꼈던 것은 사람은 누구나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기도문 중에 이런 것이 있다.
"하느님, 저에게 제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지혜를,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한 것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그것들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주세요."
나는 수도자도, 신자도 아니지만 옛일을 더듬는 그의 표정에서 깊은 회한과 감동을 읽을 수 있었다.
그는 어릴 적 폭력조직에 가입했었고, 그로 인해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같은 조직에 있던 친구들을 보면서 자신이 훌륭한 사람이 되어 그들을 구해야겠다는 마음은 간절했었단다.
차를 마시는 그의 오른손은 엄지와 검지를 제외한 나머지 손가락이 반쯤 잘려있었다.
구체적으로 묻지는 못했지만, 그 일과 상당한 연관이 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었다.
혼자 말하는 것이 머쓱했던지, 나는 어땠느냐 묻길래 중고등학교 시절의 자취 경험을 간략히 들려주었다.
부끄럽지만 나의 아버지는 거의 매일 술에 취했었고, 그럴 때면 집에 있는 물건을 부수고, 가족 누구에게도 주먹질을 가리지 않았다.
나는 이런 아버지를 피해, 친구집을 전전하며 밤늦도록 그들의 집에서 책을 읽었다.
맞지 않으려면 아버지의 눈에 띄지 않은 채 아버지께서 잠드실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그 덕분에 친구들의 집에 있는 책이란 책은 모두 읽게 되었다. 시골에서 자란 터라 친구들도 그리 많지 않은 책을 갖고 있었으므로 자연스레 어른들이 읽는 어려운 책도 가리지 않고 읽어야 했다.
내가 자취를 하며 공부를 하던 형을 쫓아서 도시로 전학을 하게 된 것은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무자비한 폭력에서 벗어난 것이 무엇보다 기뻤고, 다른 어려움은 기꺼운 마음으로 참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도시로 나와 처음 계획했던 일은 잠을 세 시간으로 줄이는 것과 성욕을 억제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읽었던 책에서 얻은 지식으로 수면시간을 11시에서 새벽 2시로 정하고, 일체의 자위행위도 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치기에 가까운 행동이었지만, 나는 그렇게 정한 규칙을 지키기 위해 지독하게 버텼다.
새벽에 일어나 책상 앞에 앉으면 윗풍이 심하여 담요로 어깨를 두르지 않으면 책을 읽기 어려웠고, 졸음을 쫓기 위하여 마당에 있는 수도를 틀어 차가운 수돗물에 한참씩이나 머리를 담그고 있었다. 지금도 큰형은 그랬던 나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때는 비록 동생이지만 내가 무서웠었다고 말하곤 한다.
나는 다섯 시에 전기밥솥에 쌀을 앉히고 한 시간 동안 운동을 하고 돌아와서는 도시락을 싸고, 아침을 먹고는 자전거를 타고 등교를 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저녁은 항상 형의 담당이었다. 저녁을 먹은 후에는 다시 책에 빠져들었고, 11시가 되면 어김없이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그 당시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플라톤부터 현대철학까지 각 시대를 대표하는 사상가의 책을 모두 읽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이를테면 까뮈라 하면 이방인,시지푸스의 신화, 독일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페스트,전락 등 구할 수 있는 작품은 모조리 읽을 심산이었다. 이런 식으로 각 시대를 대표하는 사상가들의 작품을 읽으니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에 나는 니이체의 작품들을 읽게 되었다. 그의 작품 중에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라는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나는 내가 너무 비인간적으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후로 나는 잡지나 소설, 시 등 닥치는 대로 읽었다. 어쩌면 나의 독서 취향에 일대 변화를 맞은 것이다.
나는 그에게 여기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그와 헤어졌다.
삶은 누구에게나 변화의 가능성이 항상 존재하는 것이다. 그 변화가 좋은 방향이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멈출 수 없는 변화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
나는 그렇게 어른이 되었고, 안젤름 그륀 신부님의 책을 읽은 후에야 그런 일련의 행동들이 나 자신에 대한 폭력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나를 가혹하게 대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가혹해질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나는 지금 사랑을 배우고 있다.
나에 대한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