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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보는 중동, 만들어진 역사

[도서] 만화로 보는 중동, 만들어진 역사

장피에르 필리유 글/다비드 베 그림/권은하 역/김재명 감수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한 때 세상을 선도했던 중동, 그러나 막연하던 중동, 왜 이렇게 전쟁을 하는지 몰라던 중동의 현대를 보게 되었다. 내가 잘 알지 못했던 아니 관심도 없었던 중동에 새로운 시점을 부여해 주었다. 영국, 미국, 유대인, 러시아의 이익과 이해관계로 첨절된 중동, 저자인 프랑스도 열강이 아니었나, 중동과는 아무런 충돌이 없는 걸까?  

구슬을 한 번 꿰맨 느낌이다. 그들도 처절히 흘러가는 역사라는 것을….

 

본문요약

 

추천의 글   김재명

<만화로 보는 중동, 만들어진 역사> 첫째, 지난날 어떤 과정을 거쳐 미국이 중동 지역에 개입했고 둘째, 중동의 석유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미국이 어떻게 중동 독재자와 손을 잡았고 셋째, 미국이 친이스라엘 일방주의가 무슨 문제점을 갈등을 낳았는지 등을 만화의 형식을 비려 실감나게 보여준다

저자는 “미국은 항상 좋은 의도로 중동 문제에 개입한 것도 아니며, 언제나 최악의 순간에 문제에서 빠졌다”라는 결론으로 책을 마무리한다. 나는 결론에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프랑스 지식인의 비판적 혜안에 동감하면서..

1 1783~1953, 열강이 만든 중동

1.옛날 이야기

길가메시 서사시는 지금까지 발견된 기록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 지역 모든 문명에 영향을 미쳤다. 수메르와 바빌로니아. 히타이트, 아시리아에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지며 성경에도 그 흔적이 있다

죽음과 고통은 승리하지 못할 것이며 사랑과 희망이 영원하다는 신념은 비극적인 상황에서 더 빛난다. 사람들이 찾고자 하는 증거는 전쟁 속에 있지 않다

루브르박물관 전시품 중 이라크에서 발견된 수메르 석판이 있다. 라가시 왕자가 움마를 정복한 이야기가 새겨진 이 석판을 고고학자들은 독수리전승비라 부른다. 2004년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에서 미국 병사들이 포로를 쌓아 놓고 석판과 똑 같은 사진을 찍었다. 기독교 성경을 통해 같은 역사를 공유하는 후손들이 한 일이다

2.해적과의 싸움

지하드 정신: 좁게는 이교도와 맞서 싸우는 저항 운동이고 넓게는 종교적, 도덕적 원칙을 지키기 위한 이스람교의 정신적 투쟁을 말한다

기독교인과 이슬람교 해적은 여러 세기 동안 지중해에서 부딪쳤다. 1571년 레판토 에서의 기독교 연합국의 승로 오스만 제국의 지중해 정복 계획을 끝을 맞는다, 하지만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리비아 항구에서는 기독교

인과 이슬람교도의 격전이 계속되었다

배교자들이야말로 과거에 같은 기독교 신자였던 노예를 가장 잔인하게 학대하고 괴롭히는 최악의 적이었다

한편 영국은 미국이 이제 독립 국가가 되었고 더는 영국 해군의 보호를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제리인에게 슬며시 흘렸다. 영국인의 페어플레이 정신에 따라

1785년 알제리인이 미국 상선들을 포획했다

그 후 수십 년간 미국은 조약을 맺거나 싸움을 하며 서쪽과 남쪽으로 영토를 확장했다

3.석유의 시작

마크 트웨인은 현지 종교에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고 중동 여행길에 올랐다. 하지만 실제 사막에 거주하는 이들을 만나고 낭만적 사고에서 벗어났다. 선교사들이 말한 이상적인 팔레스타인은 꿈속에서나 존재하는 군

당시 영국은 서로 모순된 약속을 남발하며 갈등을 키웠다. 이 세가지 약속은 현대 중동 문제의 시작이 되기도 했다.

    아랍 반란군에게 독립을 약속한 아랍 왕국

    오스만 제국을 영국과 프랑스가 나눠 갖겠다 약속한 사이크스 피코 협약

    시온주의자와 약속한 벨푸어 선언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석유가 중요해지고 나서야 중동 문제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1939년 이븐 사우드 왕은 사우디 석유를 실은 유조선을 미국으로 보내는 첫 수문을 열었다

하지만 후임자인 트루먼 대통령은 팔레스타인 문제에 전임자인 루스벨트와 약간 다른 입장을 보이며 시온주의자들의 계획을 승인했다 =>민주주의란 정권이 바뀌면 정책도 바뀌어야 하나?

4.쿠데타가 남긴 것들

1945년부터 미국인은 항만과 철도 건설에 착수하여 이란에서 소련의 영향력을 억제하려 했다. 냉전의 시작

모사데크: ‘그 숭고한 열정이란 것은 아이젠하워의 머릿속에나 있는 것이고 석유회사 지분 40%라는 헐값에 이란의 자유를 넘겨준 것이나 다름없소

1956년 석방된 모사테크는 다음에는 가택연금에 처해졌다. 그는 1967년에 사망했다

1956년 수에즈 운하를 되 찾으려는 이집트를 상대로 영국과 프랑스, 이스라엘이 합동 군사작전을 펼치는 것을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중지시키면서 그 효과는 두드러졌다. 이제 열강의 시대는 종식되고 미국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2 1953~1984, 미국이 만든 중동

5.6 전쟁

아이젠하워 독트린은 소련이 중동과 협력관계를 맺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1958 2 1 시리아와 이집트가 연합해 통일아랍공화국을 세웠다

1964 나세르는 PLO 설립도 도왔다. 그리고 이스라엘과의 긴장관계를 이용해 자신의 영향력을 확장해 나갔다

1956 아이젠하워는 시나이 반도와 가자지구에서 철수하라며 이스라엘을 압박했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조건 없이 자신을 지지해 다른 동맹국 프랑스로 향했다. 핵무기를 얻기 위해서다. 1961 프랑스 이스라엘 협정을 우려한 케네디 행정부가 뒤늦게 해외 기술 이전에 대한 감독권을 확보했지만 이미 기술 대부분은 이스라엘로 넘어간 후였다

존슨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안보를 보장했고 무기를 실은 배가 1965 처음으로 이스라엘을 향했다. 1967 국방부는 이스라엘이 확실하게 다른 아랍 국가보다 전략적으로 우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집트에 주둔하고 있던 소련 전문가들은 나세르에게 이집트가 이스라엘의 군사력을 이길 방법이 없다고 설득했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

610 전쟁은 공식적으로 종식되었다. 오후가 끝날 무렵 휴전이 발표 되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계속 진격했다. 진격은 이틀 동안이나 계속되었고 골란고원은 이스라엘의 수중에 떨어졌다

6. 전쟁 사이에서

아랍권 국가들은 미국이 1967 이스라엘의 공격을 직접 도왔다며 비난했다. 미국 대사관이 습격 당하고, 학교와 문화원이 불탔다

결과 미국과 이스라엘, 소련과 아랍으로 세계의 양극화가 심해졌다

아랍인에게 이번 협상이 아랍과 이스라엘 모든 갈들을 잠재울 첫걸음이 것이라 주장했다. 그리하여 평화는 점점 멀어지게 된다

7.1979

반면 루홀라 호메이니는 반대로 샤의 정치와 정권 유지가 미국의 도움을 기반으로 것이라 비난하며 다른 아야톨라들과 자신을 차별화했다

이란혁명: 197921 호메이니는 군중 수백만 병의 환영을 받으며 테헤란으로 돌아왔다

이스라엘과 아랍의 평화: 카터는 이스라엘과 이집트, ‘매파’간 불완전한 평화에 만족해야 했다

검은11: 카터는 미국 이란의 모든 자산을 동결하고 석유 수입을 중단했다

메카에서 학살이 일어나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교도’의 침략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지하드라는 무장 세력의 반란을 야기했다.

아프가니스탄 지하드의 정치적 명분에 감명한 사우디인이 파키스탄에 정착 했고 걸프만에서 기금을 마련해 반란군을 지원했다. 그의 명성이 널리 퍼졌다. 바로 오사마 라덴이다

8.레바론 내전

1975 레바논에서 태동한 내전이 결구 가독교도와 팔레스타인 난민 그리고 동맹국 사이까지 어어졌다

31984~2013, 새로운 질서와 싸움

미국이 원했던 것은 이웃 국가를 위협하지 않을 정도로 약하고 내부 적을 물리치기에는 충분히 강한 이라크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199511 라빈 이스라엘 총리는 유대인 극단주의자에게 암살당했다

이에 고통 받는 민간인들이었다

오바마는 미국의 잘못된 중동 개입 역사를 바로잡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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