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전 세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변화와 혼란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종교와 이념의 시대인 중세 시대를 지나 민족과 국가를 중심으로 한 제국주의 시대를 마감하고, 세상은 다시 자본과 이념의 시대로 들어서는 과도기적 진통을 겪고 있었다. 저자는 이러한 혼란의 시대 한가운데에서 자신의 정치적 혹은 철학적 견해를 역사와 철학, 이상과 현실 등 다양한 사례와 검증을 통해 피력하고 있다.
적극적인지, 수동적인지 알 수는 없지만 필자는 적어도 기본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옹호자이다. 1945년 세계 제2차 대전 종전 이후 동유럽 국가들은 빠르게 공산화가 진행 되어가고 있었다. 이러한 와중에 1911년 동유럽에서 태어나 서유럽(프랑스)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서유럽을 지배하는 민주주의 체제 안에서 순응하고 살아가는 저자에게 누군가는 부도덕한 자본가를 옹호하고 평등주의를 짓밟는 민주주의 시장경제에 대항하지 않는 나약한 지식인이라고 비난하였을 수도 있다. 혹은 저자 스스로가 그렇게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외부적 비난이 원인인지, 내부적 갈등이 원인인지 알 수는 없지만 필자가 이 글을 쓴 계기는 분명히 이러한 사회적 갈등 속에서 스스로 내부적 자아 혼돈을 정리하고 한 걸음 나아가 사회적 갈등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외부적으로 표출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저자는 글의 서두에서 의도적으로 서유럽을 지배하는 자유주의, 민주주의가 불완전하고 지극히 모순적인 것임과 자신 또한 절대 나약하고 수동적인 자유민주주의의 옹호론자가 아님을 강조한다. 다만 이렇듯 불완전하고 모순적인 자유민주주의가 불확실하고 비현실적 이상주의인 사회주의(공산주의) 사상보다는 보다 현실적이고 인간의 본성에 맞는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러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공허하고 비현실적인 공산주의를 중세의 종교적, 역사적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탄생한 이상향 유토피아의 개념에 비유한다. 아니 비유를 넘어 단순히 현실도피를 위해 꾸며진 환상의 세계인 유토피아 보다 이러한 환상의 세계를 타인에게 강요하는 공산주의를 유토피아 사상과 비교해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글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역사에, 공산주의를 유토피아에 비유한다. 나아가 현실에 발을 딛지 못하는 이상향인 사회주의(공산주의)보다는 자유민주주의가 실제 불합리한 세상과 치열하게 부딪히며 살아온 인간의 본성(실질적인 역사)에 더 부합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이념적 갈등을 어느 한 쪽의 우위를 판단하여 결론짓지는 않는다. 그자는 이러한 갈등의 해소 혹은 결핍과 불행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사회적 이념이 아닌 인간 내면(자아성찰)에서 찾는다. 인간이 자기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인정하며 자아를 성찰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만이 자신의 불행을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필자는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1950년대 쓰인 이 글은 그 시대 지식인들이 향유한 철학적, 문학적 화법에 걸맞게 지나치게 복잡하고, 지나치게 비유적인 문장으로 글을 읽는 내내 독자로서 나를 힘들게 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만큼 풍부한 역사적 고찰과 작가의 깊은 철학적 사유로 인해 결코 가볍거나 지루하지 않았다.
이 글이 쓰인지 다시 70여 년의 세월이 흘러 이제는 작가의 시대인 1950년대를 휩쓸었던 사회적, 이념적 갈등도 시대의 막을 내리고 또다시 새로운 혼돈의 세계로 들어선 지금 모든 갈등과 결핍, 불행의 해소 방법을 어찌 보면 70년 전 이 글을 통해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는 작품으로 많은 이들이 이 책을 통해 혼돈의 세상에서 또 하나의 삶의 이정표를 만들면 좋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