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책 천권 이상을 소장하신 분에 대한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책도 책이지만, 그 책을 보관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점이 너무도 부러웠다. 일 이백권의 책을 보유하고 있지만, 장서라기에 부끄러운 수준이다. 학생 때부터 그러모은 책들이 쌓이고 쌓여 이제는 좁디 좁은 원룸의 주인으로 자리했다. 읽지 않는 도서나 비교적 가벼운 책들을 정리해야 하겠지만, 이 역시 쉽지 않다. 욕심이 과하다. 누울 자리나 옷가지를 침범하기 시작했다. 이사할때마다 짐의 대부분을 차지하다 보니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 책을 버리거나, 대안을 마련해야만 하는 지경에 이르러 e-book의 세계에 입문했다.
e-book 입문 초기 걱정이 많았다. 현물(종이 책)이 아닌 사이버 상으로 존재하는 책이라. 만약에 yes24가 망한다면 내 권리들이 보장될 수 있을까라는 걱정. 디지털은 뭔가 내 손에 잡히는 것이 없다보니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해보면, 어차피 집에 불이 나거나 사건사고가 생기면 책은 사라진다. 하지만 e-book은 기기가 고장 나도 새로운 기계를 구입한다면 언제고 다시 볼 수 있다. 다시 받을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결국 책을 보관할 장소가 부족하다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모든 것을 압도했다. 현재 대부분의 책은 e-book으로 구매해서 본다. 나름 만족스럽다. 일반 책보다 가격도 조금 싸다보니 가계에 도움도 되었다. 아직 구매와 대여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 대여가 아무래도 싸지만, 욕심 많은 나에게는 아직도 멀게 느껴진다. 책을 두 번 잘 읽지 않음에도, 읽을 여유가 부족함에도 꼭 구매로 사는 이유도 욕심이 이유겠다.
첫 시작은 크레마 샤인이었다. 밤에도 책을 볼 수 있다는 이유로 샀다. 사실 책을 읽다가 다시 일어나서 불을 끄면 잠이 달아나곤 했던 경험이 많다. 어두운 곳에서 이불을 덮고 책을 보다 스르륵 잠드는 로망을 충족하기에 샤인이 최적이었다. 다만, 액정이 너무나도 약해서 기계만 3번 사고, 수리만 2번 했다. 액정 수리비와 구매가격의 차이가 크지 않다는게 함정. 아직도 공 기계는 액정이 고장난 채 어느 서랍에 잠자고 있다. 아무튼 음주가무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니, 사고는 늘 함께했다. 프리징 현상도 잦았다. 그래서 다음 기계는 크레마 카르타로 샀다. 케이스를 사고 프리징이나 액정파손의 경우는 많이 줄었다. 비싸다보니 특별히 관리하기도 했지만.
e-book 장점 가장 큰 장점은 보관이 용이하다. 휴대하기 편하고, 더불어 e-book의 경우 가격도 종이 책보다 저렴하다. 어둠속에서 책을 읽다 잠드는 로망역시 충족시켜주니 내 집 없는 인생에게 최적화된 기기다. 하지만 단점 역시 무시하기 어렵다. 특히 제일 아쉬운 점은 종이책이 가지는 고유의 속성 구현 불가능하다. 마치 LP판을 찾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종이 책 고유의 냄새와 촉감을 기대할 수 없다. 여러 기능을 통해 동일한 효과를 얻고자 하지만, 수십년 이내에는 어려워 보인다. 그에 비해 메모나 북마크가 종이책 마냥 쉽지 않은 점은 비교적 극복 가능하다. 아직은 e-ink 특성상 빠른 페이지 전환이 어렵기 때문에 책을 훑어보면서 발췌독 하거나 긴 페이지를 넘나들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긴 호흡의 독서가 불가능하다. 아무리 e-ink라도 결국은 디지털 기기다. 아무리 집중해서 읽더라도 출력물로 보는 데 익숙하다보니 집중이 잘 안 된다. 결국 짧은 독서에 익숙해진다. 인스턴트 독서라고 해야 할까. 긴 책을 읽기 어렵다보니 짧은 간편한 독서에 치중하게 되었다. 공부를 위한 독서에는 적합하지 않다. 나에게만 해당할 수 있지만.
종이책 냄새를 맡으며 쌓아둔 책을 읽어야 할텐데... 제일 중요한 일인데 오늘도 욕심이 많다...